산은은 최근 코로나19 위기 대응과 구조조정을 위해 체제를 바꿨다. 기간산업안정기금본부를 신설하고 본부장 및 부점장 인사를 단행했다. 코로나19발 위기 대응과 관련한 최대 60조 원 규모의 자금 운용을 위해서다(관련기사 ‘경제 응급실’ 산업은행, 몰려드는 환자들 감당할 수 있을까). 본격 업무에 돌입한 산은은 향후 항공과 해운을 중심으로 조선과 자동차 등 7대 기간산업 지원에 기금을 투입한다.
정책금융기관의 맏형 KDB산업은행이 최근 기업 구조조정실을 확대 개편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산은은 구조조정 부문 조직도 확대 개편했다. 그동안 2개 실 체제로 운영되던 구조조정 본부가 3개 실로 전환됐다. 본부에 있던 기존 기업경쟁력제고지원단을 ‘기업구조조정3실’로 확대한 것. 이곳에 과거 금호그룹 구조조정 등을 맡았던 전문 인력을 집중 배치했다.
그동안 산은은 이동걸 회장 취임 직후부터 구조조정 기능을 축소해 왔다. 산은의 핵심 업무 가운데 하나로 통하는 대기업 구조조정은 최대한 시장에 맡기고, 가능성 있는 기업을 키우고 중소 벤처에 기회를 주는 성장금융과 디지털 혁신 등 비구조조정 역량을 강화한다는 취지였다. 산은이 구조조정 ‘부문’을 ‘본부’로 격하하고, 2019년 8월 구조조정 전문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를 새로 설립한 것은 모두 체제 전환 작업의 일환이었다.
구조조정에 다시 힘을 실은 이유는 기업 개선과 경쟁력 제고가 필요한 기업을 집중 관리하기 위해서다. 현재 관리가 필요한 기업에 이어 코로나19 후폭풍으로 병상에 눕는 기업들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도다.
기업구조조정3실의 수술대에 가장 먼저 오른 곳은 두산중공업이다. 3실의 전신 격인 기업경쟁력제고지원단 자체가 두산중공업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새롭게 편성된 조직이었다. 3실장은 배석희 전 인수합병부 팀장이 맡았다. 배 실장은 기업개선M&A실에서 인수합병 업무를 담당하다가 두산중공업 위기가 불거지면서 기업경쟁력제고지원단으로 파견돼 두산 구조조정 업무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동시에 산은은 대주주 투자 철회로 벼랑 끝에 몰린 쌍용차 건도 구조조정3실로 이관했다. 당초 쌍용차는 지난해 말까지 투자금융부에서 담당하다가 올해 1월부터 기업금융1실이 맡아왔다. 산은이 조직개편과 함께 구조조정3실로 쌍용차를 다시 이관한 건 더 이상 ‘정상기업’으로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만 두 기업에 바라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산은은 두산중공업과 협상을 통해 이미 정상화 방안, 자금 지원 방안 마련 등을 구체적으로 마련했다.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동시에 그룹 전반에 강도 높은 자구안을 요구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쌍용차의 경우엔 문제 해결 방향을 두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산은의 한 관계자는 “신설된 구조조정실로 옮겼다고 해서 무조건 지원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쌍용차 지원 ‘명분’ 두고 고심
쌍용차가 올해 산은을 포함해 금융권에 돌려줘야 하는 돈은 약 2500억 원이다. 지난해 쌍용차 노사는 복지 축소와 급여 삭감 등을 통해 1000억 원을 마련했고, 여기에 대주주인 마힌드라 추가 투자자금 2300억 원을 더해 총 3300억 원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올해 초 마힌드라가 돌연 투자 계획을 철회하면서 모든 계획이 무산됐다. 여기에 최근 쌍용차 외부 감사인인 삼정회계법인이 올해 1분기 분기보고서에 대해 “정상기업으로 계속 영업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감사의견을 거절하면서 외부에서의 자금 조달도 힘들어졌다.
다급해진 쌍용차는 지난 4월 부산물류센터를 263억 원에 팔고, 6월 1일엔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위치한 서울 서비스센터를 1800억 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일단 급한 불은 껐다. 그러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 자산 매각으로 만든 자금을 다 차입금 상환에 써도 400억 원이 부족하다. 신차 연구개발 등은 시도조차 못한다. 신차 출시는 자동차업계 생존의 필수 요건이다. 쌍용차는 경영정상화를 위해 3년간 약 500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결국 정부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본사. 사진=쌍용자동차 제공
문제는 산은 입장에서 자금을 투입할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산은이 기업에 투입하는 돈은 전부 세금이다. 공적자금을 투입하려면 국민을 설득할 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두산중공업에 고강도 자구안을 내놓으라며 연일 압박 수위를 높여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쌍용차 대주주는 자구 노력 대신 손을 빼고 있는 모양새다.
2018년 한국GM 위기 당시 산은의 지원 사례는 쌍용차에 적용되지 않는다. 당시에도 산은은 명분을 두고 고심하다가 2대 주주(지분율 17.02%) 자격으로 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그러나 쌍용차에 대해서는 채권자일 뿐이라 먼저 나서 지원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쌍용차는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조성된 ‘기간산업안정기금’으로 지원 받길 원한다. 그러나 기안기금은 코로나19 탓에 일시적으로 위기를 겪는 기업에 지원한다는 취지다. 쌍용차의 위기는 코로나19 전부터 불거졌다. 적자는 2017년부터 최근까지 매 분기 이어지고 있다. 매출은 줄어드는데 고정비용은 계속 늘어나면서 차를 팔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일시적 위기라기보다 구조적 문제에 가까운 셈이다. 산은 입장에선 쌍용차 경쟁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산은이 쌍용차를 완전히 외면할 순 없다. 최근 정부가 내놓는 강도 높은 기업 지원 정책의 우선순위에 고용안정이 있다. 쌍용차는 직원만 4900여 명이고, 하도급 업체는 200여 곳이다. 노동자만 4만~5만 명, 가족까지 포함하면 20만 명에 달한다. 쌍용차가 무너지면 개별 기업 문제 수준을 넘어선 지역,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될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산은에 쌍용차 문제를 모두 떠넘긴 상황이다. 코로나19 이전에 부실해진 기업은 이번 기안기금으로 지원하지 않고, 대신 주채권은행 중심의 기업회생 프로그램을 활용하도록 선을 그었다. 산은은 쌍용차의 주채권은행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단기 차입금 3900억 원 가운데 1900억 원이 산은의 몫이다.
쌍용차는 지난해부터 이어온 자구노력과 최근의 자산 매각 등을 앞세워 정상화를 진행하고 있음을 산은에 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완성차 업계에선 쌍용차가 고용안정을 목적으로 기안기금을 신청해 설득에 나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산은은 아직까지 쌍용차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고 있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쌍용차가 일단 성의를 보이고 있고, 산은도 무조건 등을 돌리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만약 산은이 지원을 한다면 대규모 자금 투입보다는 일단 차입금 상환유예가 먼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위기 때마다 공적자금 투입…이제는 남은 카드도 없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신문 한쪽에 쌍용차의 탄생을 알린 광고가 게재됐다. 2년 전인 1986년, 동아차를 인수한 쌍용그룹이 사명을 쌍용차로 변경했다고 알렸다. 대표 차종인 ‘코란도’가 이때 처음 출시됐다. 이후 ‘무쏘’와 ‘체어맨’ 등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쌍용차는 10여 년간 현대차와 기아차를 위협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무쏘가 등장한 시기 쌍용차는 메르세데스-벤츠와 기술 제휴도 맺었다. 1995년 출시된 무쏘에는 2300cc 벤츠 엔진을 탑재했다. 이듬해에는 경남 창원에 엔진 공장을 설립했다. 연간 1만 대 규모의 대형 디젤엔진이 이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당시 쌍용차의 과감한 투자와 신차 개발은 결과적으로 회사에 독이 됐다. 대규모 자금이 투자 명목으로 빠져나가는 사이 1997년 외환위기가 불거졌다. 한보철강이 부도를 내고 쓰러지자 제2금융권 차입 의존도가 높았던 대기업들이 잇따라 무너지기 시작했다. 종금사 등 제2금융권 차입이 많았던 쌍용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쌍용차는 58개 채권금융기관에 3조 4000억 원의 채무가 있었지만 총 매출은 1조 4000억 원 수준이었다. 이를 우려한 제2금융기관들이 한꺼번에 자금회수에 나서면서 위기를 맞았다. 쌍용차의 빚은 그룹 전체로 번졌다. 1997년 12월 대우그룹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우차의 사세를 확장할 목적으로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던 쌍용차를 전격 인수했다. 3조 원이 넘는 쌍용차의 빚을 쌍용그룹과 대우그룹이 반을 나눠 떠안았다. 그러나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대우그룹이 무너졌다. 12개 대우그룹 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쌍용차도 1999년 12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1차 워크아웃을 받았다. 2001년 말엔 워크아웃이 2년 더 연장됐다. 이 과정에서 주채권은행이었던 조흥은행을 중심으로 한 쌍용차 채권단은 1조 원을 출자 전환했고, 2억 달러의 신규자금을 투입했다. 노조 파업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을 시기에는 1500억 원가량의 자금을 추가로 수혈하기도 했다. 경기도 평택시 쌍용차 평택공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원을 받은 쌍용차는 국내 SUV 활황에 힘입어 2001년부터 3년 연속 흑자를 냈다. 2004년에는 워크아웃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당시 정부의 공적자금 회수 명령에 다급해진 조흥은행이 쌍용차 지분을 중국 상하이차에 전량 매각했다. 당시 인수액은 약 5억 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상하이차가 낸 인수금액은 온전히 지분 인수에만 쓰였다. 쌍용차 회생을 위해 사용된 자금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상하이차 인수 이후 쌍용차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판매대수가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2008년 상반기부터 시작된 경유 가격 급등은 디젤과 중대형 SUV가 주력이었던 쌍용차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이후 연간 2274억 원의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회사의 존립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결국 상하이차 경영진은 자신들의 주식까지 포기한 채 2009년 2월 법원의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고 한국을 떠났다. 상하이차가 휩쓸고 간 자리는 참담했다. 쌍용차 최악의 흑역사가 시작됐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평택공장에서 항의하던 노조를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큰 논란을 빚었다. 동시에 상하이차 측에 쌍용차 기술이 아무런 대가 없이 전해졌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기술 먹튀 의혹까지 불거졌다. 2600여 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이 과정에서 긴급경영자금 등의 명목으로 또 다시 1300억 원의 공적자금이 쌍용차에 투입됐다. 2011년 지금의 대주주 마힌드라가 새 주인이 됐다. 당시 법정관리를 받던 쌍용차는 존폐의 기로에 놓인 상황이었지만 법원이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강제 회생계획안을 인가하면서 새로운 기회가 얻었다. 마힌드라는 5225억 원을 제시했다. 쌍용차 빚을 100% 보존했던 상하이차와 달리 마힌드라의 돈은 지분 인수와 함께 일부 채무 변제에도 쓰였다. ‘강성 노조’ 이미지가 박혀있던 쌍용차 노조도 회사 회생에 적극 협조하고 있었다. 앞서의 파업을 주도했던 민주노총에서 2009년 탈퇴한 뒤 올해까지 단 한 차례의 노사 분규 없이 사측과 임금 및 단체 협상을 타결했다. 그러나 현재의 쌍용차 상황은 2008년 경영위기 당시보다도 심각하다. 글로벌 공급 불안정으로 원가가 치솟았는데, 다른 경쟁업체와 달리 고정비용 지출을 줄이지 못한 게 치명적이었다. 최근 공시된 쌍용차의 1분기 보고서를 보면, 빚을 갚을 능력을 나타내는 유동비율이 40.97%다. 부채비율은 755%다. 200%가 넘으면 재무 부문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으로 평가된다. 자본잠식률은 71.98%다. 2008년 유동비율은 70%, 부채비율 540%, 자본잠식률 58%였다. 이 성적표는 쌍용차가 지난해 이미 자구안을 마련해 정상화 노력을 한 이후 나온 결과라 더욱 뼈아프다. 이제는 사실상 남은 카드가 거의 없다. 문상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