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조커가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앞서 통합당 비대위원장 후보로 유력시된 상황에 가진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차기 대권주자 조건으로 ‘1970년대생’ ‘경제 전문가’를 내걸었다. 이른바 ‘40대 경제 기수론’이다. 당 안팎에서는 1972년생으로 서울대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한 김세연 전 의원과 헤럴드미디어 회장을 지내고 미국에서 공부한 1970년생 홍정욱 전 의원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취임 이후 ‘젊은 정당’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두고 대선 후보를 ‘젊은이’로 내세우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분석이 꼬리를 문다. 김 위원장은 6월 3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통합당 초선 의원 22명과 마주했다. ‘초선 공부모임’의 강사 자격으로였다. 여기엔 모임을 주최한 허은아 의원을 비롯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으로 들어온 비례대표 초선들이 다수 참석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 모임에서 김 위원장은 나이가 많게는 두 배 차이 나는 초선 의원들에게 “겁먹지 말라. 국회의원으로서 뭐 하나 남기고 가겠다는 각오를 가져달라”고 조언하며 당내에서 뒤로 숨지 말고 적극적 역할을 해달라는 당부를 내놨다.
이어 “지금부터 대통령 선거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여러분이 용기와 희망을 갖고 의정 활동을 해주면 가능하다. 2022년 3월 9일(차기 대선일)이 통합당이 정당으로서 생명을 이어갈지 결정되는 날”이라고 강조했다. 정당의 궁극적 목표는 집권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계획을 세워야 하고 초선들이 적극적으로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진취적 정당’ ‘파괴’ 등 단어를 사용하며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6월 1일 국회에서 열린 첫 비대위 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통합당을 진취적인 정당이 되게 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회의에 앞서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 자리에서도 방명록에 “진취적으로 국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통합당 대선 후보가 진취적이고 파괴적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진취적 정당’이라는 표현에 대해 “진보보다 더 국민 마음을 사는 것” “진보보다 더 앞서가는 것”이라는 분명한 설명을 달았다.
통합당 한 재선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이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총선 승리로 이끌었으면서도 2017년 대선이 치러지기도 전에 당을 박차고 나온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대선에서 자기가 맘에 드는 인물을 내세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에 통합당으로 온 만큼 반드시 자신의 잣대에 맞는 인물을 대선주자로 내세우려 할 것이다. 단순하게 통합당을 개조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당의 지상과제인 집권에 성공하려는 계획을 갖고 왔다. 그러니 그의 마음속에는 ‘점지해둔 대선주자’가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임기를 시작하고 발언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선 준비’를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 의미가 바로 대선 준비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6월 2일 통합당 의원총회에 처음으로 참석, 또다시 “파괴적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한 뒤 “이 당이 정상궤도에 올라 다음 대선을 치를 수 있는 체제를 갖출 수 있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대선에 적절하게 임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치면 내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해, 자신은 대선을 위해 비대위원장이 됐음을 재확인했다.
20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야인으로 돌아간 통합당의 한 전직 다선 의원은 “오랫동안 정치를 해보면 경험이 쌓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인으로서의 자기 확신을 갖는다. 김 위원장은 정치 현장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자기 확신이 누구보다 강하고 그 확신의 바탕 위에서 특정 후보를 반드시 세우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7년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한 홍준표 의원(왼쪽)과 바른정당 후보 유승민 전 의원. 사진=국회사진취재단
#그냥 뻥카?
김종인 위원장은 5월 22일 비대위원장을 수락한 직후 본인의 개인 사무실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기자들이 ‘차기 대권 40대 기수론이 여전히 유효하냐’고 묻자 “40대 기수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40대 기수론을 무조건 강조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한발 물러섰다. ‘유승민 의원 등 2017년 대선 후보로 나섰던 정치인들은 시효가 끝났다’고 했던 자신의 언론 인터뷰에 대해서도 “2년 전부터 하던 얘기를 새삼스럽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김 위원장의 이날 발언을 두고 ‘40대 경제통’은 실체가 없는 속임수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이 이후 “40대가 없으면 50대에서 찾으면 된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하자 “40대 경제통은 없다”는 해석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40대 경제통 대선주자는 속임수’라는 말을 하는 이들은 김 위원장의 노림수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통합당 한 의원은 “김 위원장이 취임 전부터 군불을 땠던 ‘40대 경제전문가 차기 대선주자론’은 실체가 없는 언론플레이다. 생각해본 사람은 있겠지만 실제 해당되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이 이슈가 이미 목표 달성을 했다. 통합당이 총선에서 참패하며 언론 주목도가 확 떨어졌는데 차기 대선주자 이슈가 나오면서 지금까지도 언론의 주목이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현역 의원 분석도 비슷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당내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기존 대선주자들이 당을 흔드는 상황을 막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40대 대선주자 카드를 꺼내 활용한 것 같다. 비대위원장이 당 장악력을 높이는 차원의 전술이지 실제 후보를 만들기 위한 작업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속임수를 내며 이슈 선점 효과는 달성했지만, 불필요한 불씨를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취임 초기 당내 대권 잠룡들과 ‘허니문’ 기간을 가지며 당 장악력을 높이면 됐는데 초반부터 너무 많은 적을 양산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작은 실수 하나만 해도 십자포화를 맞아 조기에 강판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뒤를 따른다.
실제 통합당 내 대권 잠룡들은 김 위원장과 사사건건 맞붙고 있다. 선두에는 21대 의원으로 돌아온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있다. 홍 의원은 김 위원장의 ‘좌회전 정책’을 집중적으로 성토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대기업·성장 위주의 당 경제정책 기조를 기본소득 도입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전면 개조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홍 의원은 5월 29일 자신의 SNS를 통해 “보수 우파의 진정한 가치는 자유, 공정, 서민에 있다. 보수 우파 진영의 과만 들추어내는 것이 역사가 아니듯이 한국 사회의 현재가 있기까지 보수 우파의 공도 제대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좌파 2중대 흉내 내기를 개혁으로 포장하면 우리는 좌파 정당의 위성정당이 될 뿐”이라고 김 위원장을 몰아세웠다.
홍 의원에 대한 엄호 사격도 나오고 있다. 장제원 통합당 의원은 6월 2일 SNS에 “보수의 소중한 가치마저 부정하며 보수라는 단어에 화풀이해서는 안 된다. 보수가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하는 것뿐이다. 당 지도부는 보수가 사랑받기 위해 개혁하는 것이지, 보수를 없애기 위해 개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2022년 대권 도전을 선언한 바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은 직격탄이 아닌 우회적으로 김 위원장을 겨냥했다. 자신의 전매특허인 ‘개혁보수’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며 김 위원장과 거리두기를 한 것. 그는 6월 4일 자신의 팬클럽 유심초 유튜브 방송을 통해 “한국 보수가 망한다는 것은 결국 무능하고 깨끗하지 못한 진보 세력에게 나라 운영의 권한과 책임을 다 넘겨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보수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것을 두고는 “통합당이 추구할 핵심가치는 바로 보수”라고 재확인하면서 보수정당의 적자는 바로 자신임을 드러냈다.
통합당에서 오래 일한 한 당직자는 “국민들이 통합당에 대해 갖는 인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너무 싸운다’인데 김종인 체제가 출발하자마자 다투는 기색이 또 역력하다. 김 위원장은 경제 전문가로서 정책에 치중하면 된다. 대선주자 지명자 역할을 하거나, ‘보수는 없다’ 식의 거대 담론을 꺼내면 성과보다 출혈이 더 클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미처 챙기지 못한 정책을 집중 발굴해 보수의 가치와 연결시켜 내놓으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