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임금보다 더 선정을 베풀고 백성을 사랑한 광대 하선이 광해군에 의해 죽임을 당해 “진정으로 백성들이 원하는 리더가 탄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강조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또 다른 의견으로 도승지가 도망가는 가짜 광해였던 하선에게 공손히 절을 하면서 언젠가 이 나라에도 백성을 사랑하고 국익을 보살피는 진정한 리더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영화 ‘신과 함께’의 시나리오를 쓸 때 말기 암에 아무 희망도 없이 고통만 겪는 어머니를 살해하려는 주인공의 행동을 두고 격렬한 의견충돌이 있었다. 먼저 “아무리 고통받는 어머니라 해도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려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주인공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이며 이는 관객에게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으로 비칠 것”이란 의견이 있었다. 관객들이 의식도 없이 매일매일 고통받는 어머니를 위한 행동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 실행한 것도 아니고 미수에 그쳤으며 그 일로 인해 주인공이 평생 죄책감을 갖고 어머니와 동생을 위해 헌신하기 때문에 관객들도 이해할 수 있는 행동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우리는 후자를 택했고 실제 관객들도 이러한 주인공의 행동을 이해해 줬다.
하지만 제작자인 나는 영화를 개봉하고 관객들이 정말 이해해줄까 매일매일 노심초사했으며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불면의 밤을 견뎠다. 영화를 만들다 보면 우리는 이처럼 극명하게 의견이 나뉘는 상황에 직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모두 일리가 있으며 그들의 논리는 나름 정연하다.
그러나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우리는 우리가 결정한 방향에 반대하는 작가나 프로듀서가 있다 해서 그들을 회의에서 배제하지 않는다. 영화는 만들기 전에는 결과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말 두려운 것은 영화는 만들고 나면은 고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촬영이 끝나고 극장에 걸리게 되면 그때 우리가 문제를 발견했다고 해서 수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우리의 선택이 항상 옳을 수만은 없으며 우리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이해와 우리의 선택에는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는 소수의견을 내는 작가나 스태프를 매우 존중하고 또 존중한다. 그들의 의견이 우리의 선택을 되돌아보게 하고 우리의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를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표결에서 당론과 다르게 기권한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당이 강제당론으로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안에 기권한 금 전 의원을 당으로서는 불가피하게 징계를 한 것이라는 언론보도를 접했다.
당의 입장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론 참 씁쓸했다. 소수의견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치인들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소수의견이 있음으로 ‘우리의 선택에는 어떠한 문제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무엇일까. 나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를 고민할 계기가 생긴다. 이런 고민이 당내 소수의견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을 정치인들은 과연 모를까.
일개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들도 소수의견을 내는 사람을 존중하고 그 의견에 대해 고민하는데, 국가를 이끄는 분들이 좀 더 포용력 있게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봐 주고 그리고 설득하고 또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에 마음이 아팠다.
‘광해: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에서 하선은 역모 혐의로 잡혀온 광해의 처남 유정호에게 “무슨 역모를 꾸몄느냐”고 묻는다. 유정호는 “아무런 역모도 꾸미지 않았다”고 답한다. 그러자 하선이 “그런데 너는 왜 여기에 끌려와 있느냐. 도대체 무슨일을 한 거냐”고 되묻는다. 유정호는 대답한다. “나는 그저 귀를 열고 들으시라, 그저 들으시라고 했다.”
그러자 하선은 하명한다. “이 자는 아무 죄가 없다. 이 자를 풀어주라.”
원동연 영화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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