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그립던 하루였습니다. 다시 그리울 하루였습니다.”(김영희)
“서로 잊지 말고 또 보자. 그땐 헤어지지 말자.”(김원효)
“‘개그콘서트’는 아무것도 없던 내게 정말 많은 것을 줬다.”(김시덕)
“보잘것없던 나를 만들어준 곳. 나의 부모님이나 다름없던 ‘개그콘서트’”(안소미)
양상국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같은 꿈을 꾸면서 서로의 청춘을 바쳤던 꿈의 무대 함께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라며 ‘개그콘서트’ 마지막 녹화의 소감을 밝혔다. 사진=양상국 페이스북
6월 3일 진행된 KBS 2TV ‘개그콘서트(개콘)’ 마지막 녹화를 마치고 출연진들이 각자의 SNS에 남긴 소감이다. 아직 이날 녹화분의 방영이 남아 있지만 녹화는 이날로 모두 끝이 났다. 1999년 첫 방송된 ‘개콘’은 대학로 코미디 무대를 TV로 옮겨 온 극장식 개그 프로그램으로 오랜 기간 동안 엄청난 사랑을 받아왔다. 수많은 스타와 인기코너, 그리고 유행어를 쏟아냈고 SBS와 MBC에도 비슷한 극장식 개그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도록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오랜 기간 황금시간대를 지키며 큰 사랑을 받아 온 ‘개콘’은 한때 SBS ‘웃찾사’와 자웅을 겨루며 최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달라진 방송환경과 트렌드로 인해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SBS와 MBC가 이미 극장식 개그 프로그램을 폐지했음에도 힘겹게 그 명맥을 이어온 ‘개콘’은 지난해 12월부터 일요일에서 토요일, 지난 4월 다시 금요일로 방송 날짜를 옮겼다. 게다가 극장식 프로그램의 핵심은 방청객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방청객 없이 녹화를 이어오다 결국 잠정 휴식을 선언했다. 분명 ‘폐지’가 아닌 ‘장점 휴식’이다. 역시 잠정 휴식에 돌입하며 폐지설이 나돌았던 ‘1박2일’이 그랬듯 언젠가 ‘개콘’도 다시 방송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지만 마지막 녹화를 앞두고 불거진 KBS 연구동 화장실 몰카 사건이 치명타가 되고 말았다.
자수한 용의자는 KBS 공채 32기 개그맨으로 현재 KBS 희극인실 막내다. 1982년 1기 공채 개그맨을 선발한 KBS는 매년 공채 기수를 선발하다 2016년 31기부터는 2년에 한 번씩 공채를 하고 있다. 2018년에 32기가 들어왔고 올 상반기 33기 공채가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잠정 연기됐다.
당장의 문제는 ‘개콘’이 휴식기를 거쳐 다시 방영될지, 폐지 수순을 밟게 될지보다 과연 KBS 33기 개그맨 공채가 이뤄지느냐다. 지금까지의 KBS 공식 발표만 놓고 보면 잠정 연기로 하반기 내지는 내년 상반기, 다시 말해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공채가 이뤄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필 이번 논란이 “공채 막내 개그맨이 KBS 직원이냐”로 번지고 말았다. 실제 소극장 무대에서 개그를 이어가며 유일한 방송사 공채인 KBS 개그맨 시험을 준비 중인 한 지망생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KBS 공채까지 사라지면 나 같은 준비생들의 청춘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김시덕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개그콘서트’는 아무것도 없던 내게 정말 많은 것을 줬다”는 소감을 밝히며 박준형, 박성호와 함께 찍은 사진과 영상을 게재했다. 사진=김시덕 인스타그램
실제로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가 자수한 용의자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화제가 된 KBS 32기 개그맨 A 씨의 사연도 눈길을 끌었다. A 씨가 10년 넘게 매년 KBS 공채 시험을 준비해 겨우 합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랜 준비 끝에 KBS 개그맨 공채 합격으로 비로소 그 꿈을 이룬 개그맨 지망생들이 많다.
‘개콘’의 인력풀인 개그맨 공채가 끝난다면 방송 재개의 의미도 사라진다. 개그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오히려 이번 사건이 KBS에 호재가 될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개콘’ 폐지와 공채 개그맨 제도 폐지의 좋은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비록 ‘개콘’ 폐지는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 폐지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와 훨씬 더 크다. 우선 33기 공채 개그맨 선발이 취소될 경우 시험을 준비하던 무명 또는 신인 개그맨들의 꿈이 사라진다. 극장식 개그 프로그램 폐지는 대학로와 홍대 인근의 몇 남지 않은 개그 소극장의 존폐와도 연결된다. 부가적으로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즐거워하던 시청자들의 재미도 사라진다.
예정대로 휴식기를 끝내고 방송을 재개하면 ‘개콘’의 새로운 주축이 돼야 했던 KBS 공채 32기 개그맨들은 몰카 사건의 용의자로 자수한 한 명으로 인해 영원한 KBS 희극인실 막내가 될 위기에 내몰렸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