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원 씨가 출간한 옥중 회고록 ‘나는 누구인가’ 표지. 사진=교보문고 제공
그는 ‘국정농단 사건’은 기획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핵심 인물로 고영태 씨를 꼽았다. 최 씨는 “어떻게 나를 국정농단자로 만들 수 있었을까? 고영태의 입에서 나온 얘기들은 누군가 힘 있는 배후에 의해 기획과 각본이 짜 맞춰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최 씨는 “고영태와의 만남은 나에게는 최악의 삶이 되었고 나의 운명조차 바꿔 놓았다. 지금도 생각하면 고영태를 소개한 후배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지갑을 사라고 해서 나간 것이 발단이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 출신이지 하는 것은 당시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펜싱을 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최서원 씨는 “어느 날 의상에 맞는 가방을 원하셨는데 원하는 색깔을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가방 공장에 알아보니 하나씩은 제작하지 않고 몇 십 개를 주문해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한다. 마침 고영태가 지갑을 팔던 생각이 나서 문의하니 아는 공장을 연결해 주어 가방을 맞출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입었던 한복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최서원 씨는 “이취임식 날 입으셨던 한복에 대해서도 비선실세 1위가 해준 옷이라는 등 여러 논란이 있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니 챙겨드릴 가족이 없는 박 대통령께 측근이 한복 한 벌을 해드리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지 묻고 싶다”고 주장했다.
‘국정농단 사건’을 밝히는 데에 핵심 증거로 꼽혔던 태블릿 PC를 두고서는 “나는 애초에 JTBC 태블릿 PC 조작설에서도 얘기했듯이 그것 자체를 쓸 줄을 모른다. 이렇듯 가족을 이용한 특검의 플리바게닝과 꾸며진 기획은 여론에 급속히 퍼져 걸러지지도 않은 채 여과 없이 보도됐다”고 썼다.
최서원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만남을 회고하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그는 “나는 1970년대 20대 학창 시절 봉사활동에서 박 대통령을 처음 뵈었다. 인연인지 악연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죄 없는 박 대통령이 구속되어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이 나의 잘못임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법정에 출석하기 위해 구치소를 나서는 최서원 씨. 사진=박정훈 기자
최서원 씨는 “사실 그분과 동행하는 것은 매우 어색하고 어려웠다. 어릴 때부터 청와대 생활을 해서인지 철저하게 절제된 언행으로 내공이 깊은 분이어서 뵙고 오는 날이면 긴장이 확 풀려서 온몸이 축 늘어질 정도였다”면서도 “공식적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이들도 있고 국내 최고의 의료진들이 잘 보살펴 드리겠지만 곁에서 가족처럼 수발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가족도 없는 그분의 허전한 옆자리를 채워 드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딸 정유라 씨에게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서원 씨는 “눈물로 밤을 새우다 유라에게 남기는 유서를 썼다. 이런 무지막지한 의혹 속에서 더 이상 살아서 무엇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참으로 이런 삶이 싫었다. 박 대통령 곁에 있다는 이유로 고통 받아온 세월에 지치고 지쳐 이제는 매일 기자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 삶을 내려놓고 싶었다”며 “엄마는 절대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뇌물을 받은 적도 없으니 결백하다고 그런 넋두리 같은 말도 남겼다. 그때 검찰에 가지 말고 그냥 죽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삼성 특혜 지원 의혹으로 구속된 장시호 씨가 2017년 1월 서울 강남구 박영수 특검사무실에 조사받기 위해 소환되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조카이자 ‘특검 도우미’로 불렸던 장시호 씨를 향한 분노를 회고록에 담기도 했다. 최 씨는 “언니는 나에게 빌면서 언니의 딸 장시호의 혐의를 나더러 다 안고 가달라고 했다. 그날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 실신할 것 같았다. 언니는 딸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나를 죽이고 있었다”며 “(2018년 8월 28일) 장시호를 동부구치소에서 마주쳤다. 생각지도 못했다. 보는 순간 풀썩 주저앉았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법정에서, 검찰에서, 특검에서 자기 살겠다고 이모인 나를 밟아 버린 아이. 용서할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최서원 씨는 자신이 먹고 있는 약 때문에 수차례 치매에 걸릴까 두렵다고도 했다. 그는 “씻지도 못하고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다. 그런데 의외로 약이 나를 살리고 움직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때부터 먹기 시작한 약은 이제 허용된 용량을 넘게 삼켜야 겨우 견딜 정도가 됐다. 살이 10kg 이상 빠지고 근육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몸은 점점 더 쇠약해졌다”며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해지는 것이 이러다 마음에 중병이 들어 나의 몸이 어디까지 망가질지 걱정이 된다. 아침에 약을 먹었는지 뭘 했는지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린다. 딸에게 나이 먹어 부담 주기도 싫고 여기서 치매에 걸려 병원에서 살기도 싫다”고 했다.
최 씨는 “좀 더 나를 위해 열심히 살 걸 하는 후회가 된다. 박 대통령의 곁에서 투명인간으로 살지 말고 내 삶을 즐기면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 것을, 나만을 위해 평범하고 멋있게 살다 죽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 믿음과 신의 때문에 나의 인생이 곤두박질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최서원 씨는 자신의 변호를 맡았던 이경재 변호사의 권유로 틈틈이 육필로 자신의 기억을 기록했다. 이경재 변호사가 최 씨의 원고를 받아 정리해 출판사 하이비전과 계약을 맺고 책으로 펴냈다. 출판에 든 비용은 최서원 씨가 부담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