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4일 서울 동작구 서울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 이희호 여사의 추모식에 참석한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오른쪽)과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임준선 기자
주간조선에 따르면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2019년 12월 김홍걸 민주당 의원을 상대로 서울 동교동 사저에 대한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동교동 사저는 김 의원 명의로 돼 있다. 김대중기념사업회(이사장 권노갑)도 김 의원에 ‘인출해간 노벨평화상 상금 8억 원을 재단에 돌려달라’고 내용증명을 수차례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 측은 법원이 부동산처분가처분을 인용하자, 지난 4월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분쟁의 발단은 2017년 2월 이희호 여사가 생전 남긴 것으로 알려진 유언과, 이에 따라 재산을 처분하겠다고 삼형제가 서명한 ‘확인서’다. 유언장은 김성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이사장 및 변호사 1명, 삼형제 입회하에 작성된 것으로 전해진다(1남 김홍일 전 의원의 경우 지병으로 아내 윤 아무개 씨가 참석).
유언장에는 △노벨평화상 상금 8억 원을 김대중기념사업회에 전부 기부해 김대중 대통령의 뜻을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 △동교동 사저를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사용할 것이란 내용이 적혀 있다. 동교동 사저를 지자체나 후원자가 매입해 기념관으로 사용할 경우 보상금 3분의 1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부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삼형제가 균등하게 상속한다는 조항도 있다. 또한 삼형제는 “이희호 여사 유언 취지를 받들어 성심성의를 다하여 유지하고 사용할 것임을 합의한다”는 합의서도 작성하고 날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홍업 이사장 측은 “김 의원이 합의서에 서명까지 하고도 이희호 여사의 생전 유지와 형제간 약속을 어기고 유산을 가로챘다”고 주장한다.
이에 김홍걸 의원 측은 김 의원이 이 여사의 유일한 법적 상속인이라 자연스럽게 상속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한다. 김홍걸 의원 측 관계자는 “유언장 효력이 발생하려면 법원에 검인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김대중기념사업회나 김홍업 이사장 측에서 이희호 여사 사후 그 과정을 진행하지 않았다”며 “민법에 따라 이 여사의 유일한 법적상속인인 김홍걸 의원에게 자연스럽게 상속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형제 중 첫째 김홍일 전 의원과 둘째 김홍업 이사장은 김 전 대통령과 첫째 부인 차용애 여사 사이의 소생이다. 김홍걸 의원만 이희호 여사가 낳은 아들이다. 민법에 따르면 부친이 사망할 경우 전처 출생자와 계모 사이의 친족관계는 소멸, 계모자 관계에서는 상속권이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 사망 후 이 여사와 김홍일·홍업 형제의 상속관계는 이어지지 않는다. 김 의원 측이 강조하는 부분도 이 지점이다.
김홍업 이사장 측도 법원에 유언장 검인을 청구하지 않을 점을 인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변호사가 실수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늦게라도 검인 청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민법에서는 유언자 사망 후 증서나 녹음을 보관하거나 발견한 사람은 ‘지체 없이’ 법원에 제출해 검인을 청구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보통은 3개월 내에 절차를 신청한다. 하지만 ‘지체 없이’라는 표현에도 알 수 있듯 기한이 따로 없다. 이희호 여사 사후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하면 된다”며 “다만, 유언장에도 여러 형식이 있기 때문에 이 여사의 유언장이 어떻게 작성됐는지 봐야 한다. 유언장에 검인을 청구하기 어려운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김홍걸 의원 측은 민법에 따라 이 여사 유산을 받았지만, 모친의 유지를 지키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었는데 김홍업 이사장 측이 뒤늦게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 측 관계자는 “김 의원도 이 여사 유지를 따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동교동 사저도 국가나 지자체 매각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유산을 균등하게 상속하려 해도 사저를 매각해야 가능하다”며 “그런데 김 이사장 측이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을 냈다. 팔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김홍업 이사장은 “김 의원이 의지가 있었다면 사저 소유권 이전이나 상금 인출 과정에서 이 여사 유언대로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증하는 등의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변호사도 “소유자가 사망했다고 바로 알아서 상속자에 이전되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은 상속자가 등기소에 가서 접수해야 한다. 예금도 은행에 필요한 서류를 첨부해서 인출해야 한다”며 “김홍걸 의원의 경우 유산을 자신의 명의로 하겠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동교동 사저 부동산등기부를 보면 김홍걸 의원은 지난해 6월 10일 상속에 따른 소유권 이전을 이희호 여사 별세 4개월 후인 같은해 10월 29일 접수했다.
현 상황에서는 김 의원이 유산을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증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높다. 앞서 서초동의 변호사는 “동교동 사저와 예금을 상속 받으며 상속세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 유산을 김대중기념사업회에 넘기면 증여세까지 내야 한다”며 “그 세금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홍걸 의원은 지난 2월 납세 담보로 동교동 사저 및 토지에 대해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유산에 대한 상속세로 추정된다. 채권최고액은 18억여 원에 달한다. 김 의원은 국세청에 분할 납부를 약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부부가 생전 머물던 서울 동교동 사저 전경. 사진=이종현 기자
이번 분쟁이 김홍업-홍걸 형제간 문제가 아니라 김홍걸 의원과 재단법인 김대중기념사업회의 문제라는 해석도 있다. 김대중기념사업회의 이사장은 권노갑 전 의원이고 김홍업 이사장은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홍업 이사장도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이번 문제가 형제간 분쟁으로 그려져 김대중 전 대통령 명예가 실추돼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홍걸 의원도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형제들의 재산 분쟁은 말이 안 된다”며 “형제끼리 다투는 모습이 집안과 두 분 어른 명예를 실추시킬까봐 구체적 입장문을 낼 생각은 없다. 조만간 변호사를 통해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만 해명할지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의 경우 김홍업 이사장이 제기했지만, 김 의원에게 보내는 내용증명 및 통지서 등은 대부분 김대중기념사업회 명의로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김대중기념사업회는 노벨평화상 상금과 동교동 사저 1차 용처를 기념사업회로 명시한 이 여사 유언장을 근거로 이 여사 별세 후 서울시 측과 사저 기부를 놓고 구체적으로 논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김홍걸 의원이 소유권을 이전하면서 문제가 불거지자 서울시가 가족간 협의를 해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고 전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김대중기념사업회나 김홍걸 의원 등으로부터 동교동 사저 매입 요청 및 기념관 조성과 관련해 공식적 요청이 온 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홍걸 의원은 5월 17일 언론을 통해 “사단법인 ‘김대중·이희호 기념사업회’ 발족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새 사업회의 이사장은 김 의원이 직접 맡을 예정이며,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도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 김 전 대통령 관련 사업을 주도한 김대중평화센터 및 김대중기념사업회와 별도로 또 하나의 법인 설립 의사를 내비친 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사업에 대한 이견이 이번 갈등으로 번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