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트롯’을 통해 전성기를 맞은 트로트 가수 영탁의 히트곡 제목이다.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났을 때 쓰는 표현이다. 이는 요즘 방송가를 이끄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말 방송인 유재석이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 자격으로 KBS 1TV ‘아침마당’에 깜짝 출연한 이후, 스타들의 ‘영역 파괴’ 등장이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걸그룹 트와이스는 6월 3일 KBS 1TV 교양 프로그램인 ‘6시 내고향’의 코너 ‘오!만보기’에 등장했다. 특히 정연은 마을 이장에게 “모내기 영재”라는 칭찬까지 받았다. 사진=KBS ‘6시 내고향’ 방송 화면 캡처
#트와이스·엔플라잉의 ‘특별한’ 외출
최근 신곡 ‘MORE&MORE’로 컴백한 걸그룹 트와이스는 6월 3일 KBS 1TV 교양 프로그램인 ‘6시 내고향’의 코너 ‘오!만보기’에 등장했다. 트와이스의 멤버 정연, 모모, 사나, 미나, 채영 등은 서툰 실력으로 모내기에 도전하며 마을 어르신들을 도왔다. 정연은 마을 이장에게 “모내기 영재”라는 칭찬을 받았고, 미나는 트로트곡 ‘사랑의 배터리’의 한 소절을 부르며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들은 2주일 분량의 촬영을 마쳐 10일 방송되는 ‘오!만보기’에도 등장한다.
이런 트와이스의 행보는 소속사 JYP의 전략이라 볼 수 있다. 기존 트와이스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통해 주목도를 높이는 동시에 다양한 연령층에 어필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JYP 측은 “트와이스는 현란한 무늬의 고무줄 바지를 입은 채 장난기 가득한 포즈와 환한 미소를 짓는 등 한껏 신난 모습을 보여줬다”며 “대규모 공연장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펼칠 때와는 또 다른 반전 매력을 발산해, 마을 사람들은 물론 시청자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고 자평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일에는 트와이스 다현이 종합편성채널 JTBC 뉴스 ‘아침&’에 일일 기상 캐스터로 참여했으며, JYP 소속 아이돌 밴드 데이식스는 지난해 이미 ‘6시 내고향’에 등장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6월 10일 미니 7집 앨범 ‘소, 통(So, 通)’을 발표하는 아이돌 밴드 엔플라잉 역시 독특한 컴백 퍼포먼스를 준비 중이다. 그들은 최근 KBS 1TV ‘TV쇼 진품명품’ 녹화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프로그램에 젊은 아이돌 가수가 출연한 건 이례적이다. 엔플라잉은 그들의 새 앨범 타이틀곡 ‘아 진짜요’의 뮤직비디오에 ‘TV쇼 진품명품’을 패러디한 장면이 담긴 것을 계기로 컴백에 맞춰 실제로 이 프로그램 출연을 추진하는 신선한 기획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아이돌 가수들이 의외의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건, 결국 컴백을 알리며 화제를 모이기 위한 하나의 이벤트라 볼 수 있다”며 “0%대 시청률을 기록하는 지상파 순위프로그램 출연은 이미 일상적이기 때문에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한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에 나타난 그들의 모습은 팬들과 시청자 모두에게 신선함을 준다”고 말했다.
그룹 슈퍼주니어는 2017∼2018년 CJ ENM 오쇼핑에서 그들의 그룹명에 빗댄 ‘슈퍼마켓’을 진행했다. 사진=CJ ENM 오쇼핑 방송 화면 캡처
#니가 ‘또’ 거기서 나와?
아이돌 가수들의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그룹 위너는 SBS ‘모닝와이드’와 ‘동물농장’ 등에 출연한 바 있고, 몇몇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뉴스 프로그램에 등장해 인터뷰를 나누기도 했다.
이런 시도는 홈쇼핑에서 먼저 시작됐다. 그룹 슈퍼주니어는 2017∼2018년 CJ ENM 오쇼핑에서 그들의 그룹명에 빗댄 ‘슈퍼마켓’을 진행했다. 특히 그들의 리패키지 앨범 발매에 맞춰 기획된 마스크팩 세트 판매 방송은 30분 만에 매진을 기록했다. 이날 슈퍼주니어가 판매한 마스크팩의 매출은 무려 9억 원이었다. 그들은 “매진되면 신곡 무대를 최초로 선보이겠다”는 공약대로 공연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걸그룹 오마이걸의 승희가 출연한 롯데홈쇼핑 역시 론칭 두 달여 만에 누적 조회수 500만 건을 넘길 정도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처럼 홈쇼핑을 비롯한 여러 교양, 시사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챌린지는 간간이 이어져 오다가 유재석의 ‘아침마당’ 출연 이후 다시금 불이 붙었다. 뜻하지 않은 유재석의 등장으로 관련 키워드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석권했고,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최근에는 방송인 김신영이 부(副)캐릭터인 ‘둘째이모 김다비’ 자격으로 ‘아침마당’의 문을 두드렸다.
아이돌 가수들의 이런 도전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선 10∼20대를 주요 타깃으로 삼던 아이돌 가수들이 그들의 팬 층을 늘릴 기회라 할 수 있다. 아이돌은 신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최근 트로트 열풍 속에 중장년층이 젊은 트로트 가수들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계층이라는 것이 증명됐다. 아이돌 가수와 중장년층의 접점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본 셈이다.
또한 교양,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모습은 SNS 상에서 화제가 된다. 스마트폰 세대인 10∼20대들은 TV를 많이 보지 않는다. 아이돌을 대상으로 하는 TV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극히 낮은 것이 그 방증이다. 하지만 눈길을 끄는 장면은 소위 ‘짤’로 만들어져 SNS에서 SNS로 빠르게 확산된다.
가요계 다른 관계자는 “‘뮤직뱅크’, ‘쇼 음악중심’ 등의 시청률이 1%도 되지 않는 데 비해, 중장년층이 즐겨보는 ‘아침마당’, ‘6시 내고향’, ‘TV쇼 진품명품’ 등의 시청률은 5∼10%나 된다. 그만큼 노출도가 높다는 의미”라며 “또한 이 같은 이례적인 활동을 통한 홍보도 용이하고, 그들의 색다른 모습에 팬들도 열광하기 때문에 향후 아이돌 가수들의 이색 행보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