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수사팀 안팎에서 나오는 소리는 사뭇 다르다. 수사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할 만큼의 증거를 확보했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삼성 계열사의 주식시장 상장부터 이미 ‘승계’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는 게 수사팀의 판단이었다. 그런 만큼 구속영장 청구 결정 때 내부에서도 이견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삼성도 적극 대응했다. 수사심의위원회를 통한 ‘기소 여부 판단’을 내려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하며 여론전을 동원했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월 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검찰 내부 분위기 살펴보니…
당초 시민단체와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이 문제 삼은 부분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둘러싼 회계 분식 의혹이다. 2015년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과정에서 기업 가치 평가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를 조작하는 등 불법을 저질렀다는 내용이다.
삼성 측은 고발 초기부터 “분식회계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항변했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 결과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삼성 측의 계획은 가치 평가가 아니라, 그보다 앞선 상장부터 승계를 의도에 뒀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은 철저하게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진행됐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실제 이 부회장이 지분율을 많이 확보한 삼성SDS와 에버랜드를 중심으로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2014년에는 삼성SDS와 제일모직으로 이름을 바꾼 에버랜드가 상장됐다. 그 후 이뤄진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 평가 극대화 및 상장이 모두 ‘승계를 염두에 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들을 보면 검찰이 판단한 ‘주도 세력’을 알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 외에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소속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김종중 전 미래전략 기획팀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검찰은 이들이 이 부회장에게 관련 사안을 보고하며 승계를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은 관련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검찰 수사 내용에 밝은 법조계 관계자는 “원래 고발 내용은 삼성물산을 통한 합병 과정의 비율 등이지만 검찰은 2012년 이후 이뤄진 삼성그룹 계열사 상장부터 승계를 위한 전초 작업이었다고 봤다”며 “구속영장 청구는 이미 확정된 사안이었었다”고 귀띔했다. 범죄 발생 시점을 넓게 보고, 상장 자체도 의도성이 있었다고 보는 만큼 죄질이 나쁘다는 판단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는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처음 의혹이 제기된 순간부터 삼성은 “모두 사실 무근”이라고 항변하고,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시사할 만큼 억울함을 토로했다. 검찰 내 구속영장 청구 기류를 읽고, 매우 이례적인 대응에 나섰다. 두 차례 소환조사 전부터 ‘영장 청구 방침’을 조심스레 확인한 삼성은 구속영장 청구 전에 기소 여부를 외부 법조 전문가들에게 판단해달라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검찰이 기소는 당연하고, 구속영장까지 검토하는 상황에서 “기소조차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외부에 알리는 여론전을 선택한 것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원래 기업들은 검찰 수사를 받을 때 국민 여론에 기대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해 자중하는 편이지만, 이번에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또 구속될 경우 국정농단 때 나온 집행유예 형이 실형으로 바뀌게 돼 최소 5년 이상의 장기 구속이 불가피했다”며 “여론까지 동원한 전략을 펼친 게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삼성의 이 같은 판단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검찰은 잠시 고민했지만, 곧바로 ‘일정대로’ 사건 흐름 진행을 선택했다. 수사심의위원회 소집과 함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 등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면 기소의 타당성에 대한 수사심의위의 심의의견은 사실상 무의미해질 수 있었다. 구속영장이 기각돼 기소 여부를 다퉈야 하더라도, 검찰은 ‘구속할 만큼 죄질이 중하다고 본다’는 점을 분명히 알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검찰 수사 회의론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면서, 이제 비판은 검찰로 향하기 시작했다. 특히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너무 관행적인 게 아니냐는 설명이다.
6월 8일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재용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략팀장 등 3명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동안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선 소명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인 범죄 혐의는 이미 입증됐지만 구속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뒤이어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며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도 봤다.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간부급 검사는 “인지수사를 하는 부서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수사 실패’ 사인을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실패한 수사여도 특수수사 과정에서 늘 이뤄지는 검찰의 관행이 책임자 영장 청구 아니냐. 다만 이번 사건은 경제도 좋지 않고, 검찰수사심의위까지 소집됐다면 영장 청구 전후로 조금 더 신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다시 기소 여부부터 다툴 삼성과 검찰
영장이 기각되자 자연스럽게 검찰수사심의위 소집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영장 기각으로 한 차례 제동이 걸린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를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죄질이 좋지 않다’는 점을 심의위에서 강조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삼성 측은 영장 기각 결정으로 나온 여론을 바탕으로 “검찰수사심의위에서 수사를 계속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거나 불기소가 맞다”는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당장 삼성 이재용 부회장 변호인단 역시 “향후 검찰 수사 심의 절차에서 엄정한 심의를 거쳐 수사 계속과 기소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기소 여부에서도 유리한 판단을 이끌어낸다는 전략이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은 구속영장 청구와는 별개로 검찰수사심의위 소집 절차를 밟고 있다. 6월 11일 부의심의위원회를 개최해 검찰수사심의위 소집 여부를 결정한다. 부의심의위에서 검찰수사심의위 소집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리면 서울중앙지검은 대검찰청에 소집 요청을 전달하고 검찰총장은 즉시 검찰수사심의위를 소집해야 한다.
사건관계인이 요청해 소집된 검찰수사심의위에서는 △수사 지속 여부 △공소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 △공소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된 사건의 수사 적정성·적법상 등에 대한 논의가 가능한데, 구속영장까지 결정한 서울중앙지검이 소집 필요성을 거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구속영장을 승인한 서울중앙지검이 기소 여부조차 만일 삼성에게 패배한다면, 1년 8개월 동안 이뤄진 수사는 ‘타깃 수사’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면서도 “수사팀 내부에서는 확보한 증거들이 있기 때문에 기소는 문제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라고 귀띔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