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채송화는 음치지만 이 역할을 맡은 전미도는 잘나가는 뮤지컬 배우다. 사진=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홈페이지
최근 큰 사랑을 받으며 종영한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전미도의 변신도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물론 전미도를 모르던 대중이 상당수였던 터라 어떤 변신인지 체감하지 못한 이들도 많을 수 있다. 그저 전미도를 ‘처음 본 배우인데 연기를 참 잘하더라’ 내지는 ‘연기는 잘하는데 노래는 참 못하더라’ 정도로 받아들인 시청자들도 많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정말 잘나가는 뮤지컬 배우다. 2006년 뮤지컬 ‘미스터 마우스’로 데뷔해 ‘라이어’ ‘김종욱찾기’ ‘영웅’ ‘스위니 토드’ 등 수십 편의 뮤지컬에 출연하며 더뮤지컬 어워즈, 한국뮤지컬어워즈 등에서 3번이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배우 가운데 한 명이다.
기본적으로 그가 뮤지컬 무대를 벗어나 TV 브라운관으로 활동 영역을 옮겨 단 번에 스타덤에 오른 것 자체도 큰 변신이다. 그렇지만 최근 이런 변신은 하나의 유행처럼 굳어져가고 있는 트렌드라 그리 대단할 건 없다. 눈여겨 볼 점은 뮤지컬계에서 검증된 가창력의 소유자가 ‘음치’인 채송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는 점이다. 외모도 손쉽게 변신시킬 수 있는 기술의 세상이지만 노래를 잘하는 배우가 완벽하게 음치 연기를 소화해내는 것은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 마지막 노래가 된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같이 부르는 과정에서도 전미도는 완벽히 음치 채송화로 분해 살짝 음이탈을 하는 귀여운 모습을 선보였다. 그런데 음원 시장은 전미도의 진면목을 바로 알아봤다. 전미도 버전으로 출시된 ‘다시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가 음원 시장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인 조정석의 ‘아로하’가 오랜 기간 음원차트 1위 자리를 독주하고 있는 가운데 전미도의 ‘다시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역시 음원차트 1위에 올랐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은 조정석 전미도 등 뮤지컬 배우 출신을 대거 기용해 드라마는 물론이고 음원 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우선 5명의 주연배우 ‘99즈’가 밴드 ‘미도와 파라솔’이라는 아티스트 이름으로 음원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5명의 ‘99즈’ 가운데 4명이 뮤지컬 배우다. 앞서 언급한 조정석과 전미도는 물론이고 김대명도 연극과 뮤지컬 배우로 연기를 시작했다. 유연석은 뮤지컬 배우 출신은 아니지만 드라마와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뒤 뮤지컬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맹활약 중이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은 조정석 전미도 등 뮤지컬 배우 출신을 대거 기용해 드라마의 성공은 물론이고 음원 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우선 5명의 주연배우 ‘99즈’가 밴드 ‘미도와 파라솔’이라는 아티스트 이름으로 음원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5명의 ‘99즈’ 가운데 4명이 뮤지컬 배우다. 사진 출처=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홈페이지
조연급 배우들 가운데에도 뮤지컬 배우가 대거 배치됐다. 신경외과 치프 레지던트 용석민 역할의 문태유, 흉부외과 치프 레지던트 도재학 역할의 정문성, 산부인과 레지던트 2년차 추민하 역할의 안은진, 그리고 조정석의 여동생 이익순 역할의 곽선영 등이 모두 유명 뮤지컬 배우들이다. 이 정도 라인업이면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는 뮤지컬 드라마로 만들어도 될 정도이며, 지금 당장 시즌1을 뮤지컬로 재편집해 무대에 올려도 무방하다.
최근 몇 년 새 뮤지컬계는 드라마와 영화 등 연예계가 가장 믿는 배우 공급처 역할을 수행해왔다. 과거 연극배우 출신들이 대거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해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큰 사랑을 받아왔다면 뮤지컬 배우들은 연기력에 가창력, 그리고 스타성까지 겸비했다. 연극계가 오랜 침체기를 겪고 있는 데 반해 뮤지컬 무대에는 꾸준히 관객들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인기 뮤지컬 공연은 티켓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일 정도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성공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드라마는 시청률이라는 본연의 목표 외에도 음원 수익까지 바라보고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주역인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 라인은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시리즈를 통해 OST도 음원 시장에서 엄청난 저력을 뽐낸 바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주연 배우들이 취미로 밴드 활동을 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직접 음원을 만들어 대박을 내는 성과까지 일궈냈다. 바로 여기서 뮤지컬 출신 배우들이 큰 역할을 해냈다.
현재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시즌2를 준비 중이다. 이제 막 시즌1이 종영됐지만 벌써부터 얽히고설킨 율제병원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시즌2에선 어떻게 펼쳐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나온다. 과연 시즌2가 종영될 때까지 채송화 교수는 음치를 벗어날 수 있을까다. 일부 네티즌들은 목디스크 치료 등 잠깐의 휴식을 위해 속초 분원으로 떠난 채송화 교수가 거기서 어떤 귀인을 만나 제대로 노래를 배워 음치를 극복하게 될 수도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냥 재미를 위해 음치 설정으로 방치하기엔 채송화 역할 전미도의 가창력과 이미 검증된 음원 시장의 니즈가 아쉽기 때문이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