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KBS2 드라마 ‘학교2013’으로 데뷔한 신혜선은 8년 만에 첫 스크린 주연을 맡아 배종옥, 허준호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신혜선은 10일 개봉한 영화 ‘결백’에서 치매에 걸린 엄마 ‘화자’(배종옥 분)가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자 엄마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엘리트 변호사 ‘정인’ 역을 맡았다. ‘스크린 첫 주연’, 그것도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무죄 추적극’의 완결편을 이끈 주역으로서 부담은 온전히 배우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긴장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번 역은 특히 어렵고 난해”
“개봉을 기다리는 마음이, 떨리고 긴장되는 걸 넘어서서 무섭더라고요(웃음). 사실 분량에 대한 부담감보다 (주연으로서) 그걸 이끌고 가는 감정선을 제가 잘 잡을 수 있을까, 라는 부분에서 걱정이 더 많이 됐어요. 시나리오를 여러 번 읽으면서 부담감도, 긴장감도 많았지만 놓치기엔 이 작품이 너무 매력 있더라고요. 특히 배종옥 선배님이 ‘엄마’ 역을 해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부터 긴장이 막(웃음). 어렸을 때부터 우러러 보던 선배님이셨거든요. 거기다가 허준호 선배님까지 같이 해주신다고 하니 너무 떨렸어요.”
영화 ‘결백’은 화자와 정인 모녀의 시선으로 대부분 이야기가 전개된다. 고향 땅을 단 한 번도 자의로 벗어난 적 없이 시들고 말라가는 치매 환자와 지긋지긋한 집과 가족을 집어던지다시피 해서 마침내 홀로서기에 성공한 유명 로펌의 엘리트 변호사. 극과 극일 수밖에 없는 두 여자가 모녀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겹쳐지는 ‘접견실 신’은 이 영화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장면이다. 두 배우가 감정을 폭발시키듯 터뜨리는 이 장면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오랫동안 여운처럼 뇌리에 맴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백’에서 신혜선은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엄마 ‘화자’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엘리트 변호사 ‘정인’ 역을 맡았다.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앞선 작품들에서도 인상적인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지만, ‘정인’은 신혜선이 연기했던 인물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역으로 꼽혔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철한 변호사에서 어머니로 인해 무너지고, 또 일어서야 하는 딸로. 그 급격한 변화를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부분이 특히 어려웠다는 게 신혜선의 이야기다.
“어떤 역을 하더라도 다 어렵다고 느끼는데 이번엔 특히 정말 어렵고 난해했어요. 감독님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정인이는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애가 아니더라고요(웃음). 그 지옥 같은 집에서 뛰쳐나왔는데 엄마가 사건에 휘말렸다고 해서 자기 일을 다 내팽개치고 엄마한테 간다든가, 그렇다고 엄마를 막 그리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저랑은 다른 점이 많아서 이해하기가 좀 어렵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하지만 어려웠어도 제게 주어진 대본이라는 길이 있고, 이해가 안 될 땐 해답을 내려주시는 감독님이 계셨고, 감정적인 부분에서 이해가 힘들 땐 도와주시는 배우 분들도 계셔서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어요.”
신혜선은 ‘결백’에 이어 tvN 새 드라마 ‘철인왕후’로 다시 한 번 안방극장의 문을 두드린다.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본인의 연기 이야기 이상으로 신혜선의 인터뷰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함께한 배우들에 대한 칭찬이었다. “제가 감히 선배님들을 칭찬해도 될까요?”라며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상대들의 좋은 점을 꼽으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촬영한 배종옥과 마지막 ‘결전’을 함께 한 허준호에 대한 이야기가 단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배종옥 선배님은 정말 순수한 열정을 가지시고 옆에 있는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주세요. 제가 듣기로 선배님은 분장하실 때부터 집중 모드에 들어가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이 저는 되게 신기했어요. 처음에 ‘정인’이가 ‘화자’를 만나기 전에 선배님이 분장을 못 보게 하셨던 것도 나중에 제가 연기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던 걸 보고 ‘와 역시 선배님은 경험치가 다르구나’ 했죠(웃음). 선배님이 연기해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이 작품을 아마 못 찍었을 거예요. 그 정도로 정말 큰 도움을 받았어요.”
“허준호 선배님은 예상을 다 빗나가는 분이셨어요(웃음). 전날에 제가 대사 연습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대사를 치면 선배님이 이런 맥락에서 받아 치시겠지’ 하고 예상했는데 현장에서 호흡을 맞출 땐 제 생각하고 다 다른 거예요(웃음). 추 시장을 연기하실 때 제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비릿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연기를 보여주셔서 제가 순간 연기하면서 속으로 얼었어요. 무섭더라고요. 아, 허준호 선배님이 무섭다는 게 아니라 추 시장이란 그 인물이 굉장히 무섭게 느껴졌어요. 선배님은 여유롭게 대사를 치시는데도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무섭더라고요.”
두 베테랑 배우와 첫 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신혜선은 tvN 새 드라마 ‘철인왕후’로 다시 한 번 안방을 찾을 예정이다. 2012년 KBS2 드라마 ‘학교2013’으로 데뷔 후 8년간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는 그다. 어느덧 스크린과 TV를 누비며 주연으로 ‘소처럼’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신혜선에게 그래도 아주 가끔은 쉬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평상시 진짜 아무 것도 안 해요. 그냥 먹고 자고, 굉장히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살거든요(웃음). 그래서 여가 시간이 크게 필요가 없어요. 사실 제가 이 일을 시작하기 전 배우지망생으로 꿈을 꿨던 시간이 너무 오랜 기간이었고, 백수였던 때 일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컸거든요. 쉬는 건 옛날에 평생 쉬고 남을 정도로 쉬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쉬고 싶지 않아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연기자를 꿈꾼 뒤 한 번도 변하지 않고 그 꿈이 쭉 이어졌는데, 연기에 대한 갈망이 점점 커졌던 것 같아요. 약간 ‘보상심리’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 갈망을 아직 충족하지 못했거든요. 연기를 쉬지 않고 계속 하고 싶은 것도 그런 이유이지 않나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