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선공에 나선 건 ‘코로나 정국’에서 몸값이 급상승한 이재명 경기도 지사다. 이 지사는 연일 기본소득 이슈를 거론하고 있다. 이 지사는 2017년 대선 경선에서도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6월 6일 이 지사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본소득은 피할 수 없는 경제 정책이며 다음 대선 핵심 의제일 수밖에 없다”면서 기본소득 어젠다 선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지사는 2012년 대선을 언급하며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한다는 당시 박근혜 후보의 공약은 대선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했다.
이재명 지사는 “당시 민주당에서도 노인기초연금을 구상했지만, 포퓰리즘 비난에 망설이는 사이 박 후보에게 선수를 빼앗겼다”면서 “필요하고 가능한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몰거나 포퓰리즘 몰이가 두려워,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것이 진짜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2012년 대선 당시 박 후보의 경제 교사였던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기본소득을 치고 나왔다”면서 “어느새 기본소득은 미래통합당의 어젠다로 변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6월 8일 이 지사는 “기본소득은 현재 재원에서 복지대체나 증세 없이 가능한 수준에서 시작해 연차적으로 추가 재원을 마련하며 증액하면 된다”면서 기본소득 재원 조달 관련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국민 고용보험 정책’을 들고 나왔다. 동시에 기본소득제를 언급한 이재명 지사와 대립각을 세웠다. 6월 7일 박 시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국민 고용보험 적용이 기본소득제보다 더 정의로운 일”이라고 했다. 박 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실직자 82%가 고용보험 미가입자”라면서 “반대로 대기업 노동자나 정규직 노동자는 모두 4대보험이 적용돼 끄떡없다”고 꼬집었다.
박 시장은 “24조 원의 예산이 있다고 가정해보면, 전국민 기본소득제의 경우 실직자와 정규직 노동자들 모두 월 5만 원을 받을 수 있으며 연 60만 원이 지급되는 것”이라며 “전국민 고용보험의 경우엔 실직자들에게 월 100만 원씩 연 1200만 원을 지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더 큰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지원과 도움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서울시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 곳곳에선 현역 지방자치단체장인 두 잠룡이 여권 차기 대선 주자 경쟁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기본소득 및 고용보험 정책을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추진 중이라는 것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재명 지사, 박원순 시장이 기본소득 또는 고용보험과 같은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친문 세력 지지를 얻으려는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민주당 권리당원 중 25%가량이 친문계”라면서 “이 지사와 박 시장 모두 친문계가 아니기 때문에 친문 쪽 지지층을 유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신 교수는 차기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전 총리도 친문계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결국 이낙연-이재명-박원순으로 이어지는 잠재적 대권주자들 가운데, 친문 세력의 마음을 얻는 후보가 민주당 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부겸 전 의원. 사진=박정훈 기자
2위 싸움은 장외뿐 아니라 장내에서도 뜨거워지고 있다. 21대 총선 출마 선언과 함께 대권 도전을 선언했던 김부겸 전 의원, 경남 양산 험지에 출마해 승리한 ‘리틀 노무현’ 김두관 의원, 여권 내에서 ‘이낙연 견제론’ 적임자로 주목받고 있는 정세균 국무총리 등이 차기 셈법 계산에 분주한 상황이다. 친문 핵심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다크호스로 꼽힌다.
이들의 ‘공공의 적’은 이낙연 의원이다. 이재명 지사와 박원순 시장이 정책 공방을 벌이는 사이 이들은 당권-대권 분리론에 집중했다. 이낙연 의원이 8월 전당대회와 2022년 대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당헌엔 당권-대권 분리 규정이 있다. 이에 따르면 대선 출마 희망자는 대선이 치러지기 1년 전 당 대표를 그만둬야 한다. 대권 주자가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직을 거머쥘 경우, 7개월 만에 다시 당대표를 뽑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김두관 의원은 6월 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대권 주자가 당대표에 당선될 경우 ‘7개월짜리 당대표’에 머물게 된다”면서 “코로나19 등 국난 극복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발언은 대권과 당권을 모두 노리고 있는 이낙연 의원뿐 아니라 김부겸 전 의원까지를 조준한 것으로 읽혔다.
6월 9일엔 4선 홍영표 의원도 ‘당권-대권 분리론’에 힘을 실었다. 홍 의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를 통해 “과거 당권과 대권을 같이 가지고 있어서 줄 세우기나 사당화 시비, 대선 경선 불공정 시비로 당이 갈등을 겪은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낙연 의원은 당 안팎의 견제를 뚫고 독주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사진=박은숙 기자
그러자 김부겸 전 의원은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당권을 잡을 경우 대권은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6월 9일 김 전 의원은 우원식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8월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의원은 “당대표가 되면 임기를 다 채우겠다”는 의사를 전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서 “임기를 다 채우겠다”는 말은 사실상 대권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놓고 정가의 해석은 분분하다. 이낙연 의원의 전당대회 승리가 유력한 상황에서 김 전 의원이 명분을 쌓기 위해 계산된 발언을 했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전당대회 후에 펼쳐질 대권 레이스를 노렸다는 얘기다. 민주당 한 친문 의원은 “김부겸 전 의원의 정치 일정은 차기에 맞춰져 있다”면서 “김 전 의원이 이낙연 의원을 향해 견제구를 날린 모양새가 됐다. 이는 향후 김 전 의원과 친문 진영 간 관계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김 전 의원 결정을 두고 “이낙연 독주체제를 향한 견제가 물꼬를 틀 것으로 보인다”면서 “유력 대권 주자로 거론되면서 당권 주자로도 꼽히는 이낙연 전 총리가 느낄 부담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채 연구위원은 “김 전 의원이 대권 도전 의사를 내려놓음으로써 ‘반NY(이낙연) 연대’의 합종연횡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김 전 의원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맡으면서 이낙연 독주체제를 견제할 활로를 모색하는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6월 2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2020년 5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낙연 전 총리는 34.3% 지지를 받으며 독주체제를 유지했다. 다만 지지율은 4월 조사와 비교해 5.9%포인트 하락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4.2%로 2위를 차지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2.8%(9위), 박원순 서울시장은 2.3%(11위), 김부겸 전 의원은 1.8%(12위)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