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축빌라를 분양받은 사람들의 흔한 하소연이다. 어떻게 된 걸까. 또한 분양을 막 마친 한 빌라의 세대별 우편함마다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전단지들이 끼워져 있다. 전단지에는 “하자보수 전문! 예치금을 찾아드립니다” “하자보수만은 제대로!” 등의 문구가 강조되어 있다. 하자보수예치금이라니? 의아하다. 하지만 신축빌라를 분양받고 몇 개월만 지나도 이 같은 하자보수 전단지의 이유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신축빌라를 분양받고 몇 개월만 지나도 하자보수 사례가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진=연합뉴스
빌라나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에는 하자보수예치금제도가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건축주는 대지가격을 제외한 총 공사비의 3%에 해당하는 하자보수보증금을 보증기관(서울보증보험, 건설공제조합 대한주택보증사)을 통해 보증하거나 은행에 예치하도록 되어 있다. 건축주의 하자보수책임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다. 즉 공동주택에 하자가 생겼을 때 건축주가 하자보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입주민이 하자보증금을 청구해 직접 하자보수를 할 수 있다.
애초 건축주의 고의 회피나 부도 등의 이유로 하자보수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입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지만 오히려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빌라 건축비에 하자보수예치금이 추가로 들어가다 보니 건축주가 처음부터 시공사와 이를 상의해 건축의 마무리 단계에서 부실하게 시공을 끝내버려 건축비를 줄이는 꼼수를 쓰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지만 3개월~1년 이내에 하자가 날 수 있는 부분을 뻔히 알고서도 마무리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분양을 시작하는 것이다.
분양 후 각 세대가 건축주에게 건물 하자에 대한 항의를 하면 건축주는 하자보수예치금을 찾아 하자를 보수하도록 처리한다. 보통 완공 마무리 단계에 하게 되는 옥상 방수 등의 설비를 하자보수예치금으로 충당하겠다는 속셈이다. 하자보수예치금으로 들어가는 3% 금액만큼 공사를 덜한 채 분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축비가 10억 원이 들고 그에 따른 하자보수예치금이 3000만 원 든다면, 건축비에 소요될 3000만 원을 예치금으로 넣고 9억 7000만 원으로 부실공사를 해서 분양 후 하자보수예치금 3000만 원을 찾아 공사를 마무리 짓는 식이다. 눈 가리고 아웅, 조삼모사지만 빌라를 분양받는 사람들에게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신축빌라가 많은 인천 서구 경서동 빌라지구에서 17평형의 D 빌라를 분양받은 A 씨는 “신축분양을 받아 이사온 지 3개월 만에 거실 천장에서 비가 새서 어이가 없었다. 또 다른 층에서는 베란다 배수로가 잘못돼 세탁기를 돌리면 매번 아래층으로 물이 새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건축주에게 항의하니 건물을 올렸던 시공업체에서 무상으로 하자를 수리해 줄 테니 협조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하자보수예치금을 찾아 하자보수를 하는 방식이었다.
D 빌라를 분양받은 B 씨는 “새집으로 이사를 하자마자 줄줄이 하자가 생기는 것도 사기를 당한 거 같아 억울한데 처음부터 건축주와 시공사가 짜고 친 패라는 것을 알게 되니 더 화가 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D빌라에는 모두 16세대가 분양을 받아 살고 있는데 이들은 처음 내 집 마련을 한 서민이거나 신혼부부가 대부분이었다. 반상회에서 직접 만난 집주인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들어온 집에서 맞닥뜨린 건물의 하자와 예치금에 대한 건축주의 꼼수에 대해 억울함과 분노를 표했다. 그러면서 처음엔 사이가 좋았던 위·아래층 이웃끼리도 빌라 하자로 인해 심한 말이 오가면서 갈등이 생겼다며 안타까워했다.
신축분양을 받은 지 3개월 만에 천장에서 비가 새거나 배수로가 잘못 돼 세탁기를 돌리면 아래층으로 물이 새는 등 신축빌라의 하자 상태가 심각한 경우가 많다. 사진=네이버 지식인 캡처
하자보수예치금을 받으려면 공동주택 과반 이상 혹은 전체 가구가 동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하자가 많은 집과 없는 집 사이에는 다툼도 일어난다. 옥상과 연결된 꼭대기 층이나 결로가 심한 외벽 쪽 집 등은 더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건물 전체의 문제가 특정 집에 더 부각해서 드러날 수 있는데 하자보수예치금은 빌라 전체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돈이라 어느 한 집에만 집중적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갈등의 요소다. 또 초반에 예치금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나면 나중에 하자가 생기는 집에 들어갈 예치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예치금 사용처에 대한 빌라 주민들 간의 갈등이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건물에 아무런 문제가 없거나 입주민들이 예치금 제도를 몰라 하자보수금을 청구하지 않으면 입주자의 동의 없이도 매년 건축주에게 예치금이 귀속된다. 때문에 멀쩡한 집에 하자예방공사를 하거나 편의시설 등에 예치금을 쓰기도 한다. 2~3년 뒤 빌라를 팔고 이사할 계획이 있는 경우 매매 전 하자보수예치금을 최대한 찾아서 쓰려는 경향도 나타난다.
신축분양 빌라에 전단지를 돌리던 하자보수 전문 업체의 영업부장은 “하자보수예치금을 찾아서 공사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개인이 하기는 어렵고 건축사무소 등 전문 업체에 맡겨서 서류부터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지급률이 낮아져 청구할 금액이 줄어드니 빨리 찾는 게 이익”이라며 하자보수예치금에 대한 설명에 열을 올렸다. 또 입주민들이 하자보수예치금을 찾아가지 않을 시 예치금이 건축주에게 다시 귀속된다는 점으로 입주민들이 최대한 빨리 예치금을 청구하도록 유도했다.
건축주는 건축사무소 및 시공사 등과 손잡고 하자보수예치금 청구를 통해 건축비의 일부를 충당하는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실제로 하자보수예치금의 소멸률은 해마다 달라지는데 완공 후 1년까지 10%, 2년까지 25%, 3년까지 20%, 4년까지 15%, 5년까지 15% 등 5년 이내에 85%가 소멸된다. 또 각각의 연차마다 예치금으로 할 수 있는 하자보증범위가 정해져 있다. 미장, 타일, 지붕방수, 기둥 균열, 배수, 단열 등 각각의 항목마다 기한이 정해져 있어 그 기한을 넘기면 하자보수를 보장받을 수 없다. 반대로 말하면 기한별로 찾아갈 수 있는 예치금이 한정적인 탓에 예치금의 50% 이상을 쓸 수 있는 1~3년 동안은 살면서 지속해서 하자보수공사를 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자공사를 경험한 다른 신축빌라의 입주민은 “제대로 하는 업체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예치금을 찾는 것에만 열을 올리고 공사를 제대로 해주지 않은 채 또 다시 부실 보수를 한다는 것이다.
인천 서구 소재 건축사무소의 하자보수팀에서 근무하는 C 씨는 “최근 건물관리 업체에서 하자보수예치금을 청구 대행하는 것으로 안다”며 “자격을 보유하고 진행하는 업체도 있는 반면 건축 관련 면허를 대여해 청구 진행을 하기도 한다. 때로 터무니없는 공사비가 청구되는 경우가 있으니 꼭 비교견적을 하고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고 권했다.
또 건축 관련 전문 변호사는 “하자보수예치금으로 편의시설이나 치장시설에 투입을 하면 실제 발생한 하자에 대해 투입할 금액이 부족해져 추후 필요한 보수공사를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이로 인해 세대 간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며 “하자보수예치금 사용 시 처음부터 하자보수업체를 끼고 예치금을 청구할 경우 업체의 영업 논리로 예치금 사용이 논의될 확률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눈으로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신축빌라 하자로 인해 겨우 내집 마련을 한 서민들의 고충이 가중되고 있어 신축빌라 매매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