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번성하던 2월 중순경부터 시작해 사실상 해외로 나가는 항공이 막힌 3월부터는 아웃바운드 여행업의 미래도 암담해졌다. 코로나19의 국내 사정이 아무리 좋아진다고 해도 해외 상황을 예단할 수 없는 터라 함부로 미래를 예측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사실상 해외로 나가는 항공이 막힌 3월부터는 아웃바운드 여행업의 미래도 암담해졌다. 최근 인천국제공항의 한산한 모습. 사진=일요신문DB
미주지역을 주로 판매하는 소형 여행사 A 대표는 “사실상 올해까지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당장이라도 휴업이나 폐업을 하는 게 맞다. 다만 직원 5명의 고용유지지원금을 타 주기 위해 아직 휴업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여행사들도 이런 이유 때문에 휴업이나 폐업을 안 하고 있을 뿐, 고용유지지원금이 끝나는 시점이 되면 줄줄이 휴업에 들어갈 것이라 예측했다.
유럽패키지 위주로 판매하는 다른 여행사 B 대표도 동의했다. “빠른 곳은 2월부터, 늦은 곳도 3월 말부터는 다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기 시작했다. 고용유지지원금 6개월에 고용유지의무 1개월이 끝나는 9~10월에 여행업 전체적으로 실업대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함께 자리한 몇몇 여행사 대표들도 “하나투어나 모두투어, 노랑풍선 등 대형 여행사들도 그 시점이 되면 딱히 방도가 없을 것”이라며 “대형사들 위주로 먼저 정리해고에 들어가고 중소형 여행사들도 무더기로 휴업 수순에 들어갈 것”이라 내다봤다.
#회사 부담 인건비 10% 자진 반납
동남아패키지 전문인 여행사 C 대표는 “사실 정부에서 인건비의 90%를 받고 있어 10%는 회사에서 줘야 하지만 수입이 아예 없는 실정이라 직원들이 회사에서 나간 10%의 임금을 다시 회사에 반납하는 형국”이라고 토로했다. 그 돈으로 회사가 휴업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임대료를 내며 버틴다는 것이다. 그는 “직원들 당장 먹고 살길을 생각해 폐업 안 하고 임대료 감수하며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데 10%의 임금을 다시 회수한다고 누가 비난할 수 있나”고 되물었다. 현재의 제로(0) 수익으로나 근거리 미래를 보면 당장 정리하는 게 낫지만 일단 직원들 정부지원금 타주려는 명목으로 업체와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모펀드로 주인이 바뀐 하나투어 역시 사정이 녹록지 않다. 코로나19 상황이 시작되기 전에도 이미 대규모 정리해고설이 돌았으나 오히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고용유지지원금이 나오면서 정리해고가 잠시 유예됐다는 후문이다. 평소 유동자금이 넉넉했던 모두투어와 노랑풍선 역시 기약 없는 해외여행 불가 상황에서 언제까지 대규모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특히 패키지사의 경우 단순 예약상담 인원이 인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터라 인력 정리가 불가피해 보인다. 유동성 문제로 고민일 때마다 홈쇼핑을 통한 대량판매로 현금 먼저 확보할 수 있었던 전략도 지금은 엄두조차 내지 못내는 상황이다.
대형 패키지사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는 D 씨는 최근 무급휴직을 하면서 국가지원금으로 모자란 생활비를 쿠팡맨을 뛰며 채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대학 때도 안 해본 택배 일을 마흔 가까이 돼서 처음 해본다. 아이가 둘이라 놀고 있을 수만은 없고 휴직 중이라 다른 직업을 찾기도 애매해서 조건을 따지지 않고 단기로 할 수 있는 쿠팡맨을 한다”면서 “남자들은 대부분 알바로 쿠팡맨이나 대리운전을 많이 하는데 회사에서도 알면서 봐주는 눈치”라고 전했다. 여행업계 커뮤니티에서는 이 시기에 어떤 알바 자리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나 정보도 자주 오간다.
대형 패키지사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는 D 씨는 최근 무급휴직을 하면서 국가지원금으로 모자란 생활비를 쿠팡맨을 뛰며 채우고 있다고 전했다. 물류현장 사진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이종현 기자
다른 대형 패키지사 직원 E 씨는 “고용유지지원금 다음은 실업급여 순이 될 것”이라며 “여행사들이 휴업하거나 폐업하게 되는 마지노선 격인 10월엔 여행업종에 있던 근로자들이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올 텐데 이들이 다 어디로 가겠나. 실업급여 6개월까지 다 받고 나면 그야말로 살길이 막막하다”며 “아직 이후의 상황은 생각할 수 없고 그저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인솔자·가이드는 고용지원 사각지대
그나마 여행사 정규직으로 고용유지지원금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경우는 나은 편이다. 인솔자나 가이드는 대부분 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고용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다. 프리랜서 스루가이드 F 씨는 “원래도 기본 월급이나 수당은 거의 없고 손님들이 옵션이나 쇼핑을 해준 만큼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였기 때문에 고용유지지원금이나 실업급여도 남의 얘기”라며 새롭게 실업자로 추가되지도 않는 자신들을 ‘늘 실업상태의 숨겨진 노동자’라 칭했다.
해외 각국 현지에 있는 일명 ‘랜드사’의 고충도 크다. 현지 여행사인 랜드사는 보통 한국의 패키지사들로부터 미수금이 깔려 있다. 이번 여행 경비를 받아 지난 여행 경비를 결산하는 방식으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물려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한국 여행업계의 고질적 병폐로 여러 번 언론에 소개됐지만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랜드사는 현지에서 결제해 줘야 하는 돈이 있지만 한국으로부터 돈은 들어오지 않아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베트남 랜드사 G 대표는 “한국 여행사들마다 물려 있는 돈이 있어서 당장 여행객이 없어도 폐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현지 호텔과 식당들에 지불한 지난 단체의 경비를 받으려면 한국에서 다음 여행객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어 더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동남아로 가던 2030세대의 귀환을 비롯해 가족 여행과 허니문 수요로 국내 여행 업계는 차츰 재개를 노리고 있지만 해외 상품을 주로 취급하는 대부분의 여행사들은 지금 폭풍전야다. 업계에서 10~20년 잔뼈가 굵은 여행사 대표들 역시 수개월 내에 일어날 대규모 폐업 사태와 실업대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다며 고심하는 분위기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