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신부인 홍 아무개 씨는 자신이 당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홍 씨가 전세금 사기에 걸려든 건 지난해다.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에 근무하는 홍 씨는 결혼을 앞두고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한 신축 오피스텔을 점찍었다. 홍 씨는 해당 오피스텔을 직접 방문해 확인하고 2019년 7월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
홍 씨는 한국자산신탁으로부터 퇴거 명령을 받으면서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인중개사의 말을 듣고 안심한 홍 씨는 해당 오피스텔 1층 입주지원센터에서 계약을 진행하고 전세금의 10%인 1300만 원을 계약금으로 입금했다. 입주지원센터는 오피스텔을 판매하고 계약을 진행하는 곳이었다. 지난해 8월 홍 씨가 요청한 전세자금 대출 승인이 떨어져 은행이 김 씨에게 돈을 보냈다. 홍 씨도 나머지 잔금을 보내면서 계약이 완료됐다. 홍 씨는 공인중개사에게 전세금을 보냈으니 등기말소된 것을 확인해달라고 전했다. 부동산 측에서는 이후 별 다른 연락이 없었지만 ‘잘 됐겠지’라는 마음으로 이사를 진행했다.
달콤한 신혼 생활도 잠시, 지난 3월 홍 씨는 한 통의 등기우편을 받게 된다. 한국자산신탁이 보낸 등기우편에는 홍 씨가 불법주거를 하고 있으므로 퇴거를 요청한다는 내용이었다. 1주일 뒤 다시 한 번 퇴거를 요청한다는 2차 등기우편을 받게 된다. 홍 씨는 집주인 김 씨에게 연락해 ‘이상한 등기를 받았다’고 말하자 김 씨가 ‘걱정 말라. 알아보고 해결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 뒤 다시 연락이 없자 홍 씨가 김 씨에게 재차 연락을 한다. 이때 김 씨는 이상한 말을 한다. 김 씨는 “사장님에게 연락해 뒀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면서다. 홍 씨는 그때서야 김 씨가 명의를 빌려줬을 뿐 전세금을 받은 당사자는 입주지원센터를 운영하던 서 아무개 사장임을 확인했다. 결국 홍 씨는 1층 입주지원센터로 방문해 서 사장을 만나게 된다.
홍 씨가 서 사장에게 전세금이 어떻게 됐느냐고 따지자 오히려 서 사장은 벌컥 화를 냈다. 서 사장은 ‘전세금 전액 환불을 원하냐, 전세계약 유지를 원하냐’며 선택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곧바로 이사하기도 어려웠던 홍 씨는 ‘큰 문제가 아니라면 전세계약 유지를 원한다’고 답했다. 서 사장은 ‘이틀 안에 해결됐다는 완료 서류를 주겠다’면서 걱정 말라고 답한다.
3월 26일 퇴근하고 집으로 향하던 홍 씨는 1층 입주지원센터가 사라진 것을 보게 된다. 그 앞에서 여러 사람이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통화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던 홍 씨는 서 사장에게 전화해 ‘입주지원센터가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서 사장은 ‘이사한 것뿐이다’라고 답했다. 이에 홍 씨는 ‘계약 유지 안한다. 전세금 전액 환불해 달라’고 요구했고 서 사장도 ‘그렇게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홍 씨는 곧 자신뿐 아니라 여러 주민이 오피스텔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홍 씨는 지역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상담을 하면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변호사는 ‘서 사장이 사기와 공문서위조로 감옥을 다녀온 전과자이며 홍 씨 외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사기를 당했다며 고소를 넣은 사람이 많다’고 설명하며 ‘서 사장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피해액이 수십억 원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알고 보니 서 사장은 신탁회사의 명의로 된 오피스텔을 판매하는 영업권을 획득한 뒤 영업을 하지 않고 임차인을 구해 전세금만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전세계약자들이 오피스텔 판매 기간엔 피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판매 기간이 끝나 신탁회사의 퇴거 명령을 받으면서 피해를 인지하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신탁회사 이름으로 등기가 돼 있는 경우 개인이 아닌 신탁회사로 입금하는 방식을 취해야 안전하다고 조언한다. 이미지컷으로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없다.
홍 씨는 결국 고소를 했고 현재 이천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 홍 씨 외에도 서 사장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단톡방이 만들어질 정도로 피해자들이 많은 상황이다. 서 사장은 일부 피해자들에게 돈을 꼭 돌려주겠다는 확약서를 써주기도 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 사장은 자신을 고소한 피해자들에게 고소를 취하하면 돈을 돌려주겠다고 요구한 뒤 고소를 취하하면 나몰라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피해자들 대부분이 사회 초년생인 신혼부부가 많아 경제적 타격이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는데 빚을 1억 원 이상 지고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부동산이 잘못된 계약을 진행했다며 주는 보상금도 3000만 원 정도밖에 안 될 것 같다. 꼭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발생했을까. 전문가들은 신탁회사 이름으로 등기가 돼 있는 경우 개인이 아닌 신탁회사로 입금하는 방식을 취해야 안전하다고 조언한다.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의 설명이다.
“실제로 신축아파트의 경우 소유주가 신탁회사 이름으로 등재돼 있는 경우가 꽤 있다. 특히 아파트나 오피스텔 모델하우스를 방문해 집 계약을 할 경우 명의자가 신탁회사 이름으로 돼 있는 경우가 많다. 모델하우스가 꾸며질 정도로 규모가 큰 경우 신탁회사 직원이 상주하면서 계약을 체결해 문제가 터지는 경우가 적다. 하지만 오피스텔 한 동 정도로 소규모일 때는 신탁회사가 상주하지 않아 사고가 터지는 경우가 있다. 최소한 신탁회사 직원과 전화 통화를 해 정당한 대리권인지 확인하거나 신탁회사 등기를 먼저 말소시킨 뒤에 계약을 진행해야 한다. 나 역시 신탁회사 직원과 통화한 뒤에 몇 번 계약을 진행한 적이 있지만 그래도 찜짐했다.”
홍 씨는 신탁회사에 ‘집을 구할 보증금이 없어 퇴거를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요청했고 신탁회사 측도 ‘사정이 딱하니 한 달 정도 더 기다려주겠다. 하지만 이미 퇴거 소송을 진행한 만큼 소송비는 돌려받아야 배임 문제 등이 발생하지 않는다. 소송비만 달라’고 답한 상태다. 홍 씨는 “당장 월세 보증금도 없는 상황인데 소송비도 물어줘야 해서 마음이 무겁다. 서 사장 부인은 카카오톡 프로필에 화려한 삶을 자랑하는 듯한 사진을 올렸다. 사기를 친 사람은 잘 사는데 피해자만 당장 집도 없이 쫓겨날 상황이다”라고 호소했다.
일요신문은 서 사장에게 현재 제기된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물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