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덕 전 감독은 결국 계약 기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사진=연합뉴스
그 충격의 여파는 거셌다. 한용덕 전 한화 감독은 6월 7일 대전 NC 다이노스전에서 14연패로 구단 창단 이래 최다 연패 기록을 경신한 뒤 지휘봉을 놓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구단은 ‘한 감독이 경기 후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야구계는 경기 전 이미 구단이 한 감독과 결별을 확정한 상태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전날 벌어진 코칭스태프 교체 관련 물의와 한 전 감독의 중도 퇴진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겨서다.
#감독 퇴진 징조를 알린 코칭스태프 귀가 조치
징조는 하루 전 확실히 드러났다. 야구장에 출근한 코치들을 감독이 귀가시키고, 투수코치와 타격코치 없이 경기가 진행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팀 성적이 바닥을 찍은 상황에서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이한 감독과 구단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어수선한 팀 분위기가 가장 좋지 않은 방식으로 표면화됐다.
한화는 6월 6일 대전 NC전에 앞서 코치 4명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장종훈 수석코치와 김성래 타격코치, 정민태 투수코치, 정현석 타격 보조코치가 모두 빠졌다. 부진한 팀들이 1군과 2군 코치들을 대거 맞바꿔 분위기 쇄신을 꾀하는 장면은 그리 낯설지 않다. 논란이 된 것은 그 과정과 그 후의 결과다.
1군 엔트리 등록과 말소 소식은 통상적으로 전날 경기 종료 후 당사자에게 알린다. 그러나 엔트리에서 제외된 코치 4명과 불펜 코치로 1군에 동행하던 박정진 코치는 모두 평소처럼 야구장에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를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심지어 이 코치들은 1군 대신 가야 할 행선지가 2군인지 혹은 육성군인지도 듣지 못한 채 자택에서 대기해야 했다. 이들을 대체할 코치가 2군 혹은 육성군에서 아무도 올라오지 않아서다.
결국 휑한 더그아웃에는 한 전 감독 외에 작전코치, 수비코치, 주루코치, 배터리코치만 남았다. 프로야구 경기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장면. 투수를 교체할 때는 늘 올라가던 투수코치 대신 한 전 감독이 마운드로 향했다.
더 황당한 촌극은 불펜 코치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투수 교체 타이밍과 교체 투입 선수는 한 전 감독이 결정한다 해도, 더그아웃과 멀리 떨어져 있는 불펜에서 전화로 벤치의 지시를 받고 선수들을 준비시킬 코치 한 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날은 코치 없이 베테랑 투수 정우람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팀의 마무리 투수가 더그아웃의 지시를 받고 불펜 투수들을 관리하다 자신의 차례가 오자 직접 몸을 풀고 마운드로 향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가뜩이나 등판 간격이 불규칙해 컨디션 조절이 어려운데, 뜻밖의 ‘플레잉 코치’ 역할까지 하게 된 정우람은 이날 2-8로 크게 뒤진 9회 1사 1루서 마운드에 올랐다가 2루타-3루타-몸에 맞는 볼-중전 적시타를 연이어 내줬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간신히 잡고 교체된 뒤에는 다음 투수 윤대경이 지석훈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해 정우람의 자책점이 4점으로 늘었다. 정우람은 한화 불펜의 기둥과도 같은 투수다. 그가 이런 경기에서 이런 방식으로 난타당하는 장면이 팀 사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자명한 일이다. 한화는 이날 2-14로 대패해 연패 수를 ‘13’으로 늘렸다. KBO 리그 역대 단일 시즌 최다 연패 타이 기록이었다.
일단 일련의 과정에는 구단이 아닌 한 전 감독의 뜻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화 내부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들은 “코치들이 야구장에 출근한 상황에서 한 감독이 갑작스럽게 주요 보직 코치들에게 ‘모두 귀가하라’는 통보를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주위에서 감독에게 ‘조금 더 기다렸다가 경기를 끝낸 뒤 코칭스태프 교체를 진행하자’고 만류했지만 한 감독의 뜻이 워낙 완강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구단과 소통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인 한 전 감독이 감정적인 방식으로 반발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한 전 감독은 다음날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코칭스태프 교체는 엔트리 제외 통보 당일이 아니라 전날(6월 5일) 경기 후 이미 결정했던 사항”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정 직후가 아닌 당일 경기 전 갑작스럽게 이 사실을 통보한 까닭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 상황과 관련한 질문이 쏟아지자 무거운 표정으로 거듭 “그 부분에 대해선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했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로 읽혔다.
한화는 감독 교체라는 극약 처방에도 17연패라는 수모를 당했다. 사진=연합뉴스
#경기 후 결국 물러난 감독, 고개 숙인 영구결번 단장
한화는 10년 넘게 약팀이었다. 감독 한 사람에게 ‘해결사’ 역할을 기대하기엔 근본부터 개선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다. 한용덕 전 감독에게 주어진 3년의 계약 기간 역시 한화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고 강팀으로 끌어올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한 전 감독은 부임 첫 해인 2018년 그런 한화를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으로 이끈 성과를 이뤘다. 대전이 들썩거렸다.
그러나 빛이 밝았던 만큼 이후 그림자는 더 짙었다. 구단도, 감독도, 팬들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한화를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됐다. 모두 “나는 행복합니다”를 부르며 1승, 1승에 기뻐하던 인내심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왜 더 잘하지 못하느냐”며 누군가에게 날선 책임을 묻는, 뾰족한 창만 남았다. 위태로운 리더십, 갈등이 얽히고설켜 혼란스러운 구단, 이기는 법은 둘째 치고 투지마저 잊은 선수단. 잘 풀리지 않는 팀의 전형이자 한화의 현실이었다.
한화는 이렇게 ‘야구를 못하는 것’보다 더 기본적인 문제가 한화 구단과 선수단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최악의 방식으로 공개하고 말았다. 감독이 이례적으로 초강수 반발을 했는데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선수들은 6월 7일에도 결국 NC에 2-8로 패했고, 그 경기는 결국 한 전 감독이 지휘하는 마지막 게임이 됐다. 한화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오래 몸담은 한 전 감독은 정든 고향팀과 가장 참담한 방식으로 작별했다.
감독의 자진 사퇴가 발표되자 정민철 한화 단장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 전 감독과 선수 시절과 지도자 시절을 함께 보낸 후배라 더 그랬다. 정 단장은 한 전 감독의 중도 퇴진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팬분들께 여러 모로 면목이 없다. 감독님께서 노력하신 부분에 단장으로서 많은 도움을 못 드린 점을 인정하고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감독님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내게 돼 당황스럽다. 지금 연패가 길어지고 있는 것은 감독님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구단 전체의 과오라고 생각하니, 빠른 시간 안에 자성해서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다만 코칭스태프 교체 상황과 관련한 질문에는 한 전 감독과 마찬가지로 말을 아꼈다. “단장으로서 면목이 없는 일이다. 감독님이 떠나시는 상황에서 일련의 여러 과정에 대해 상세한 말씀을 드리기 어려운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며 “지금 구단도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단장으로서 책임을 다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방법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감독님이 안 계신 상황을 빠르게 추스르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다”며 “한시라도 빨리 감독님의 자리를 대신하실 분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잔여 시즌 최원호 2군 감독대행 체제로
재정비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화는 그날 밤 곧바로 최원호 퓨처스(2군) 감독(47)을 잔여 시즌 감독대행으로 내정하고 다음날 오전 공식 발표했다. 한화 사정에 정통한 한 야구 관계자는 “한화가 남은 시즌을 최 감독대행 체제로 마무리한 뒤 시즌 종료 후 다양한 후보군을 신중하게 물색해 신임 감독을 영입한다는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말이 ‘감독대행’이지, 올 시즌을 아직 114경기나 남겨 놓은 시점이라 결코 쉽지 않은 임무다.
최 감독대행은 현대와 LG에서 선수 생활을 한 뒤 LG 2군 투수코치와 SBS스포츠 해설위원, 2019 프리미어12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를 두루 거치며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단국대에서 운동역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야구에 관해 과학적·학문적 접근을 시도하는 야구인이기도 하다.
한화는 지난해 11월 “최 감독의 다양한 경력이 우수 선수 육성을 추구하는 구단 기조에 부합한다”며 2군 사령탑으로 전격 영입했고, 올해 2군 선수단 성적이 부쩍 좋아지자 최 감독의 육성 능력을 주목해왔다. 이 때문에 올 시즌이 끝나고 1군에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더라도 최 감독의 2군 감독 자리는 그대로 남겨 놓을 계획이었다.
최 감독은 선임과 동시에 1군 선수단을 대대적으로 재편하는 파격적인 행보로 관심을 끌었다. 경기가 없던 6월 8일 월요일에 투수 장시환 이태양 안영명 김이환, 포수 이해창, 내야수 송광민 이성열 김회성, 외야수 최진행 김문호 등 현역 선수 10명의 등록 말소를 요청했다. 대부분 올 시즌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던 이름값 높은 선수들이다. 시즌 중 한 팀이 1군 선수 10명을 한꺼번에 교체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 그만큼 확실한 분위기 쇄신과 목표 의식 재정비가 절실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타율이 2할대 초반에 머물고 있던 베테랑 타자 송광민(0.217)과 이성열(0.226)은 물론이고, 선발 투수로 6경기에 나서 평균자책점 7.48로 부진한 장시환도 엔트리 제외 명단에 포함됐다. 나란히 7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인 불펜 안영명(7.59)과 이태양(7.27)도 2군행을 피하지 못했다. 젊은 선발 투수 김이환은 선발 로테이션 재정비와 한 차례 숨고르기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2군에서 컨디션 재정비를 마치고 다시 불러올리기로 했다.
한화는 이들 대신 2군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투수 윤호솔 문동욱 황영국 강재민, 포수 박상언, 내야수 박한결 박정현, 외야수 장운호 최인호 등을 불러 올렸다. 주전들이 대거 빠진 틈을 타 1군에서 기량을 펼칠 기회를 주겠다는 복안. 최 감독대행에게 1군 지휘봉을 맡긴 한화의 의도와 목표가 첫날부터 확고하게 드러난 셈이다. 최 감독대행과 2군에서 호흡을 맞추던 코치들이 대부분 함께 1군으로 이동한 점도 이 같은 방향성을 시사한다.
최 감독대행은 오자마자 1군 엔트리를 대거 조정한 이유를 묻자 “오히려 처음에는 그냥 싹 다 바꿀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다만 “베테랑 선수들을 문책하거나 무리하게 무조건적인 세대교체를 강행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팀 분위기가 연패로 워낙 가라앉아 있으니 선수단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바꿀 필요도 있고, 그동안 많이 지쳐 있던 선수들이 몸과 마음을 추스를 필요도 있었다”는 얘기다.
#첫 3연전에 신예 선수들 대거 기용
2군으로 간 선수 10명은 대부분 올 시즌 주전으로 활약하던 선수들이다. 반면 새로 합류하는 유망주들 가운데는 1군 성적이 아예 없는 선수도 많다. 최 감독대행은 이 기회에 그들을 평가하기 위한 ‘스탯’을 쌓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기록이 없으면 선수를 자꾸 ‘스타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타일이 좋은데 게임 때 못하는 선수들이 있고, 반대로 스타일은 그저 그렇지만 의외로 게임 때 잘하는 선수들도 있다”며 “2군에서도 코치들에게 올 시즌은 일단 폼을 많이 고치려 하지 말고 선수들이 하고 싶은 야구를 하게 놔둬보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스탯이 쌓이면 그걸 토대로 방향을 잡아줘야지, 눈으로 훈련하는 것만 봐서는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다”고 역설했다. 2군에서 좋은 성적을 내던 선수들이 1군에서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가능성이 보이는 유망주들에게 앞으로 폭넓은 기회를 주겠다는 의지는 확고하다. 그러나 ‘못해도 무조건 젊은 선수를 쓴다’는 의미는 더욱 아니다.
최 감독대행은 “이렇게 주전들을 한꺼번에 내려 버리고 젊은 선수들로 채워서 팀이 운영될 수 있느냐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선수들이 잘하고 있었다면, 애초에 그 선수들이 2군에 가고 이렇게 2군 유망주들에게 기회가 올 이유도 없었다”며 “새로 온 젊은 선수들이 1군에서 기존 선수들보다 더 못한다면 다시 원래 있던 선수들에게 기회가 가는 것이고, 반대로 그들이 잘한다면 (주전들을 밀어내고) 계속 1군에서 자리를 잡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는 프로다. 못하는 선수는 계속 경기에 나갈 수 없고, 잘하는 선수는 경기에 나가야 한다”는 원칙이다.
실제로 최 감독대행은 지휘봉을 잡은 첫 3연전에 신예 선수들을 대거 기용했다. 특히 감독대행 첫 경기였던 6월 9일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 선발 라인업은 9명 가운데 6명이 25세 이하 타자로 구성돼 화제를 모았다. 이 가운데 20세 이하가 4명이고, 1군 기록이 없는 선수도 셋이나 됐다. 이튿날인 6월 10일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유망주들을 중요한 타순에 중용한 선발 라인업으로 분위기 쇄신을 꾀했다. 2년차 내야수 노시환이 두 게임 연속 4번 타자를 맡았고, 첫 경기에서 멀티 히트에 성공한 신인 최인호가 역시 두 게임 연속 3번 타순에 배치됐다.
그러나 첫 술에 배가 부르기란 무척 어렵다. 4번 타자로 육성해야 할 노시환은 부담감에 시달리다 첫 두 경기에서 연속 4타수 무안타 1삼진으로 소득 없이 돌아섰고, 첫날 활약했던 신인급 선수들도 두 번째 경기에선 좀처럼 만족스러운 활약을 하지 못했다. 믿었던 워윅 서폴드와 국내 선발 김민우는 대량 실점으로 타선의 어깨를 더 무겁게 했다.
그렇게 연패 수가 ‘16’까지 늘어나자 최 감독대행은 결국 부산 3연전 마지막 날인 6월 11일 경기를 앞두고 “불펜 에이스인 마무리 투수 정우람을 조기 투입하는 등 비정상적인 경기 운영을 해서라도 일단 연패를 끊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정우람은 한화 이적 후 다섯 시즌 만에 처음으로 이날 6회부터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한화 타선은 1·2·4회 세 차례 찾아온 만루 기회를 득점 없이 날리면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경기를 이어 나갔고, 끝내 2000년 이후 최다이자 현존 구단 최다 연패 기록을 작성하고 말았다.
성적을 포기할 수 없는 프로야구단. 그러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한 최약체 팀. 지금 한화가 직면한 현실이자 딜레마다. 최 감독대행이 이끄는 한화는 올 시즌 그 사이에서 현명한 시소게임을 해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