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지휘봉을 잡았던 김인식 전 감독이 친정팀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견해를 남겼다. ‘은퇴선수의 날’ 행사에 나선 김인식 전 감독과 이승엽. 사진=임준선 기자
―올 시즌 한화가 이토록 처참한 상황에 처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언론도, 구단도 팀 연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연패가 중요한 게 아니다. 연패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또 다시 연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선수단 분위기는 완전 다운됐다. 이겨도 그 승리가 오래 지속될 것 같지 않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연패 신기록을 세울까봐 초조해하지 말고 설령 그 연패가 계속 이어지더라도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적응하고 자리를 잡아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부분도 필요하다. 구단과 현장이 손을 잡고 선수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보듬어가야 한다.”
―연패가 길어지면 선수들의 의식이나 그걸 지켜보는 팬들 때문에라도 코칭스태프는 연패를 끊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연패 끊었다가 다시 연패에 빠지면 어떻게 하나. 한화에 시급한 것은 연패 탈출이 아니다. 요즘 지도자들은 행동으로 보여줄 생각은 안 하고 왜 말부터 앞세우는지 모르겠다. 최원호 감독대행도 마찬가지다. 베테랑 선수들의 2군행을 두고 ‘머리 식히는 차원에서 내려 보낸다’고 표현하더라. 베테랑들을 데리고 이길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예를 들어 김태균을 2군으로 내려 보냈다고 해서 그 선수가 각성 후 정신 차리고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팀의 중심 선수, 중심이 돼야 할 선수들은 안고 가는 게 진정한 리더십이다.”
―한화 사령탑 시절 충격 요법을 단행한 적은 없었나.
“당연히 있었다. 나이 먹은 선수를 2군으로 내려 보내면 은퇴하라는 메시지처럼 받아들인다. 야구에만 집중해도 할까 말까 한데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할지 여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충격 요법은 젊은 선수들한테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더 효과가 있다.”
김인식 감독은 2005~2009년 한화 지휘봉을 잡았다. 사진=연합뉴스
―잘나가는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이라고 보나.
“예를 들어 지난해 우승팀 두산 베어스를 보자. 두산도 선수들의 노쇠화라는 고민을 안고 있지만 선수들이 해결사의 능력을 갖고 있다. 즉 야구를 풀어가는 능력이 뛰어나다. 1, 3루에 주자가 있을 경우 타석에 있는 타자가 어떻게 경기를 풀어가야 더블 플레이 안 당하고 득점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지도자는 입으로만 야구하지 말고 선수들의 경기 운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
―연패에 빠졌을 때 지도자들은 어떤 리더십을 보이는 게 중요한가.
“감독이 초조해 하면 선수들은 흔들린다. 경기하면서도 자꾸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감독, 코치들이 조바심 내는 순간 팀이 어려워진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얼마 전 한용덕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 야구계 선배로서 아쉬움이 컸을 것 같다.
“아쉬움보다 화가 났다. 한 감독을 비롯해 지도자들이 명심해야 할 게 있다. 그들도 선수 시절에는 1년이라도 더 선수 생명 이어가려고 얼마나 아등바등거렸나. 만만하면 베테랑 선수들을 밀어내려고 한다. 언론플레이하면서 질책하고, 책망하고. 감독은 선수와 기 싸움하는 존재가 아니다. 감독 손짓 하나에 선수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팀을 이끌어야 한다.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 있는 감독이라면 가만히 서 있어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팀의 감독은 경기 운영 능력이 필요하다. 경기가 꼬일 때 벤치에서 선수들에게 답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말이다.”
―야구팬들은 한화 감독 자리를 놓고 ‘독이 든 성배’라고 표현한다.
“한화 감독이라서 문제 있는 게 아니다. 결국은 구단 시스템의 문제다. 냉정히 말해 스카우트부터 잘못됐다. 선수들 스카우트에 허점이 드러났다. 유망주라고 해서 입단시킨 선수 중 제대로 성장하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되나. 그리고 이전에 FA(자유계약) 선수들을 데려오면서 가능성 있는 유망주들을 다른 팀에 내준 것도 팀에 어려움을 안겨줬다.”
―한화는 구단 고위층의 야구 관심이 크다고 알려졌다.
“회장님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야구단에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감독이란 무엇인가.
“패배를 통해 승리할 수 있는 직업이다. 패배해봐야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 알게 되는 것 아닌가. 감독은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잘리더라도 자신이 세운 철학을 밀고 나가야 한다. 믿음의 리더십, 소통의 리더십도 철학이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닌가. 감독이 메이저리그 방식대로 팀을 이끌면 뭐하나. 선수가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아닌데.”
인터뷰 말미에 김인식 전 감독은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야구계 어른으로서 후배 지도자들을 향한 고언이다.
“프로야구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감독들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도중에 물러났다. 그러나 장수는 물러나면 입을 닫아야 한다. 내가 잘못 가르쳐서 그렇다고, 내 능력 부족 때문이었다고 말하면 된다. 어떤 선수를 잡았어야 했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그냥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떠나면 된다. 젊은 지도자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공부 많이 한 지도자들이 늘어나는 게 반갑지만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플레이하는 선수다. 즉 선수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지도자는 자격 미달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