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이춘재 8차 사건 현장에서 경찰이 채증한 체모는 총 10점이다. 당시 국과수가 8점을 감정에 사용했고, 남은 2점을 보관해왔다. 2018년께 국과수 유전자 분석실장이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에 이관한 사실이 2019년 12월 경찰과 검찰의 재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8차 사건 현장 체모는 국과수와 국가기록원을 거치며 30년 동안 보관돼 왔다. 사진=박준영 변호사 제공,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체모는 8차 사건 관련자료 첨부물에 테이프로 부착된 상태로 보관돼 있었다. 첨부물엔 1989년 1월 30일 인수됐다는 내용과 함께 발견된 위치가 기재돼 있다. 6점은 혈액형 분석에 사용됐고 4점은 보존했다는 메모도 보인다. 최종적으로 4점 가운데 2점이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에 사용됐던 만큼 분석 전에 기록한 메모로 추정된다.
현장 체모 2점(빨간색 원). 사진=박준영 변호사 제공
그 밖에 화성경찰서가 작성한 감정의뢰서와 국과수의 혈액형 감정결과 등도 함께 보관돼 있었다. 사건 발생 하루 뒤인 1988년 9월 17일 화성경찰서가 국과수에 보낸 감정의뢰서엔 체모를 피해자 신체와 주변에서 채취했으며, 혈액형 감정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과수는 감정서를 통해 체모가 B형으로 반응한다고 답했다.
사건 발생 직후 화성경찰서가 국과수에 보낸 체모 감정의뢰서와 국과수가 회신한 감정서. 사진=박준영 변호사 제공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재판부로부터 영장을 발부 받은 검찰은 5월 28일 국가기록원을 압수수색해 체모 2점을 확보했고(관련기사 [단독] 검찰, 국가기록원 압수수색 ‘이춘재 8차 사건’ 현장 체모 2점 확보) 6월 15일 열린 재심 2차 공판에서 증거조사를 마쳤다. 검찰은 현장 체모와 윤 씨의 모발, 대검찰청이 보관 중인 이춘재 DNA 데이터를 함께 국과수에 보내 감정을 의뢰할 계획이다. 국과수는 현장 체모와 윤 씨 모발에 대한 동일성, 현장 체모와 이춘재 DNA의 동일성을 각각 확인하게 된다.
이번 공판에선 현장 체모가 30년 전 증거물인 점을 감안해 대검찰청에 보관된 이춘재 DNA 데이터 외에 구강상피세포나 체모 등 추가 증거를 확보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재판부는 다만 이춘재가 이번 재판의 피고인이 아닌 만큼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해선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국과수 감정 진행 상황에 따라 대검과 협의해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감정인은 국과수 소속 10년 차 직원이 선정됐다. 통상 문서로 감정촉탁을 하지만 이번엔 재판부가 선서를 받고 직접 선정했다. 과거 8차 사건 국과수 감정과 관련해 조작과 신뢰성 문제가 있었던 만큼 이번에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감정을 약속해달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선서를 마친 감정인에게 ‘사안의 엄중함’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감정해 달라”고 당부했다.
감정 결과는 통상 30일가량 뒤에 나온다. 이에 따라 현장 체모 결과는 한 달 후인 오는 7월 중순께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 아무개 씨 집에서 13세 딸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듬해인 1989년 7월 범인으로 지목된 윤 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항소하면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항소심과 대법원 모두 기각했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 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