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키친은 당뇨, 암 질환 등을 앓아 식이요법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맞춤 식단을 밀키트 형태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밀키트는 손질된 식재료와 섞인 소스를 이용해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상품으로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다. 닥터키친은 이 밀키트를 구독형 서비스로 만들어 구매한 환자에게 식단을 정기적으로 제공해준다.
예를 들어 닥터키친에 28일 동안 매일 2끼를 구독하면 수요일과 토요일에 정기 배송해주고 55만 원을 받는 식이다. 환자는 자신의 병에 맞는 식단의 밀키트를 배송 받아 그대로 볶거나 끓여서 먹으면 된다. 닥터키친은 병원이나 연구소 등과 협업을 통해 식단을 짠다고 홍보하고 있다.
2019년 2월 닥터키친은 이 같은 사업모델을 통해 카카오벤처스, 옐로우독, 미레에셋벤처투자 등에서 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신생벤처기업(스타트업) 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닥터키친이 투자 받은 투자금은 총 100억 원으로 알려졌다. 직접 투자 외에도 AIA, 보령 등 대기업이나 삼성서울병원, 서울대학교병원 등 유수의 종합병원들과 협업하며 성공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닥터키친이 여론 조작 의혹에 휩싸였다. 사진=닥터키친 홈페이지
이처럼 화려하게 비상하는 것처럼 보이는 닥터키친이 과거 당뇨나 암환자 커뮤니티에서 조작된 게시글을 조직적으로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닥터키친 측은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하지만 과거 닥터키친이 관련 팀을 운영할 때 만들어진 문건이 발견되면서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이 문건은 과거 닥터키친에서 근무했던 A 씨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A 씨는 “불법 행위를 하던 내부 직원이 고민 상담을 하다 우연히 보내줬다”며 “혼자서는 도저히 작성할 수 없는 방대한 내용일 뿐만 아니라, 여론 조작에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는 각 아이디와 비밀번호까지 있고 게시글마다 링크가 달려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엑셀 파일에 적혀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접속해보니 접속이 됐다. 이 아이디 사용자의 활동 기록과 실제 게시판 작성 댓글이 일치했다.
엑셀 파일로 정리된 문건은 여론 조작 마케팅을 종합적으로 관리한 업무일지로 보인다. 이 문건은 커뮤니티 조작 게시글을 어떻게, 얼마나 올렸는지 작성 글에 번호를 매겨 정리돼 있었다. 문건은 카페 주간정리·작업내역·댓글관리·주간플랜 등으로 나눠 구성돼 있다. ‘카페 플랜참고’ 탭을 보면 이들이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목적이 나타나 있다.
해당 문건에는 ‘다양한 주제로 닥터키친이 많이 언급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불만토로, 고민상담, 질문형 등 여러 주제로 글을 올리면서 닥터키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어 ‘일반 식단과 닥터키친 식단을 꾸준히 비교하며 인증’하고 ‘수술에서 항암까지 각 단계마다 질문글과 고민들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침투’한 뒤 ‘여러 콘텐츠에 닥터키친이 위화감 없이 포함되고 자연스럽게 노출’되도록 하겠다는 계획까지 작성돼 있었다.
문건에는 닥터키친이 만든 수십 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다. 아이디를 공유하면서 여럿이 작성하기 때문에 아이디별 구체적인 전달사항 및 특징을 적어뒀다. 기업이 커뮤니티에 침투하기 위해 아이디마다 직접 페르소나(잠재고객)를 만드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한 것은 그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은 주간 게시글에 목표를 정해 놓은 뒤 ‘글을 올린 뒤에는 초반 작업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글을 올린 직후 닥터키친이 보유한 아이디로 좋아요와 댓글을 달며 화력 지원을 해주자는 얘기였다. 닥터키친은 ‘글을 올리고 댓글과 답글이 많이 달리면 자연스럽게 조회수가 높아진다’며 ‘BEST(베스트) 게시글에서 불만을 토로한 글의 평균 조회수가 가장 높다. 구체적인 사연으로 글의 길이가 긴 편’이라며 작성 과정에 대한 세밀한 요구도 덧붙였다.
더욱 충격적인 점은 이들이 각 아이디에 병명과 병의 진행 상황, 병원 담당 교수를 정해뒀고 여기에 페르소나까지 부여해 관리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 아무개 계정은 ‘위암 1기 / 2018년 8월 발견 / 연세대암병원 김 아무개 교수 / 2018년 8월 진단 후 선항암 중 / 12월 수술 예정, 남동생과 같이 사는 누나, 닥터키친 이용 중’으로 적어두는 식이다. 또 다른 환자는 페르소나에 ‘다이어트 관심 많음. ^_^ 사용, TMI형. ~습니다, 처음이라 잘 몰라 임당에 대해 정보를 얻고 완치하고 싶습니다, 느낌표를 많이 쓴다’고 적혀 있다. 또 다른 환자 페르소나에는 ‘워킹맘, 부유한 집안, 놀러다니는 거 좋아함, 몸과 아이에 투자를 많이 함’이라고 쓰여 있다.
닥터키친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에는 여론 조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사진=닥터키친 문건 캡처
닥터키친은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디와 페르소나를 기반으로 카페 조작 게시글과 댓글을 달았다. 이들은 여론 조작 글을 작성하면 카페명, 작업글 아이디, 등급, 콘텐츠 분야, 소재분야, 조회수, 총 댓글 수, 조작이 아닌 댓글 수, 게시글 주소, 강조 포인트 등으로 분류해 작업 현황을 공유했다. 이들은 강조 포인트 탭에 ‘식단은 혼자 관리하는 게 낫냐, 닥터키친으로 관리하는 게 낫냐’, ‘식단 인증을 하면서 닥터키친을 언급함’ 등이 적혀 있었다.
작업 현황 분류 중 ‘등급’은 홍보의 강도를 의미한다. 등급0은 확실하게 닥터키친을 인지시키는 글로 닥터키친을 주제와 내용과 댓글에 언급하는 글이다. 등급1은 글의 주된 주제가 닥터키친이지만 등급0보다는 강조가 덜 되는 글이다. 등급2는 글 주제는 닥터키친이 아니지만 내용에는 언급이 되는 글로 이들 스스로 ‘기승전닥터키친’이라고 표현했다. 등급3은 닥터키친이 글 내용에도 언급이 안 되거나 되더라도 그 비중이 낮은 글을 의미했다.
문건에는 2018년 11월부터 2019년 1월 7일까지 작성한 게시글 현황이 집계돼 있다. 이 기간 동안 닥터키친이 작성한 게시글과 댓글은 1206개에 달했다. 이 이후 게시글을 작성하지 못한 이유는 ‘아름다운동행(암환자 커뮤니티 카페)’ 측에서 닥터키친 작업 아이디를 파악하고 이들이 여론 조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지에 올리면서부터다.
지난해 1월 7일 아름다운동행은 ‘닥터키친이라는 회사가 10개 이상의 아이디를 이용해 암환자 식단을 홍보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암환자 본인이거나 보호자를 가장해 거짓 게시글을 게시하고 교묘하게 닥터키친을 홍보, 추천하는 게시글과 댓글을 10개 아이디로 주고받으며 회원들을 기망했다는 점에서 가히 최악이라 할 수 있다’면서 아이디 10개를 공지했다. 아름다운동행 측은 10개의 아이디를 공지했지만, 일요신문이 입수한 문건을 통해 조작 아이디가 7개 정도 더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공지를 본 카페 회원들은 “홍보를 위해 아픈 사람들의 간절함을 악용하다니 참 나쁜 사람들이다”, “아픈 사람 상대로 그러고 싶나”, “아내가 식사를 안 해 힘들다는 글에 ‘본인이 제일 힘들 거다’라며 댓글을 달았던데 아픈 사람을 봉으로 아는 사람들이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아름다운동행 측은 이후 판단을 보류하겠다고 공지를 올렸다. 아름다운동행 측은 “당시 닥터키친 측에서 일부 직원의 일탈로 설명했고 납득해 판단을 보류했다”고 설명했다.
닥터키친이 대규모 여론 조작까지 나선 배경으로 매출액을 늘려 투자를 받기 위해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월까지 조작 마케팅을 한 뒤 다음 달인 2월 50억 원 투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닥터키친 여론조작 문건에도 인터넷 카페를 통해 확보한 매출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적혀 있어 이 같은 지적을 뒷받침한다. 특히 항암 식단은 일시적으로 카페 매출액 비중이 47%에 달했을 정도로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었다.
닥터키친 측은 이 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닥터키친 관계자는 “여론 조작을 조직적으로 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아름다운동행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힘든 부분이 뭔지 알아야 하기에 가입해서 보거나 궁금한 것을 물어본 적은 있다”며 “엑셀 파일은 아무나 작성하면 그만이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작성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문건을 작성한 적이 없다. 현재 아름다운동행과는 행사 있을 때 식단 후원을 보내는 등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