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의 효과를, 그리고 직원들 입장에서는 자율적인 시간 활용과 함께 출퇴근 시간의 절약 등 다양한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굳이 학교 때문에 멀리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고, 온라인 강의를 통해 전세계 어디서든 양질의 강의를 수강할 수 있다. 이렇게 비대면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최근 주목받고 있는 미국의 대학이 있다.
바로 미네르바스쿨(Minerva School)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적절히 뒤섞은 이 학교는 요컨대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오프라인 대학’이다. 미국 하버드대보다 입학하기 어렵다는 이 학교는 과연 어떤 곳일까.
미네르바스쿨의 학생들은 모든 수업을 컴퓨터 앞에서 듣는다. 강의는 자체 개발한 플랫폼인 ‘포럼’을 통해 진행되며, 스무 명 이하의 학생들이 그룹을 지어 참여한다. 사진=미네르바스쿨 홈페이지
홍콩 출신인 비앙카 뱅크스는 현재 미네르바스쿨 3학년에 재학하고 있다. 그가 기존의 대학 대신 미네르바스쿨을 택한 이유는 전통적인 고등교육의 결함, 즉 비싼 학비 때문이었다. 실제 미네르바스쿨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등록금과 수업료에 있다.
가령 하버드대학의 경우 수업료, 기숙사비, 그리고 기타 비용을 포함해 보통 학비로 6만 6900달러(약 8000만 원)를 지출하는 반면, 미네르바스쿨의 경우 2020-2021학년도 학비는 2만 6950달러(약 320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아이비리그와 차별화된 점은 입학 지원서에서도 나타난다. 모든 대학들이 SAT(대학입학자격시험) 성적을 평가기준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미네르바스쿨에서는 이런 자료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어떤 표준화된 시험 점수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미네르바스쿨은 지원서에 시험 점수나 봉사 및 과외 활동을 나열하도록 하지 않고 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온라인 면접’
대신 미네르바스쿨은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제작한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이 테스트에 정답이란 없다. 각자의 잠재력과 적성을 테스트하기 위한 용도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수험생들은 읽기, 쓰기, 수학적 능력을 측정하는 인지능력 테스트를 실시한 후 자기소개서인 에세이를 작성해서 제출한다.
온라인 면접도 실시된다. 뱅크스의 경우 면접에서 네 가지 질문을 받았다. 그 가운데는 ‘미네르바스쿨에 합격하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할 것인가?’ ‘누군가 당신에게 한 일 가운데 가장 나쁜 일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대처했는가?’ 등이 있었다. 현재 1학년에 재학 중인 한국 태생의 셰리 임 씨는 클레어몬트칼리지가 발행하는 대학신문인 ‘스튜던트 라이프’와의 인터뷰에서 “퍼즐과 회전하는 형상으로 이뤄진 공간사고 테스트를 받았다. 또한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갇히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대학 프로그램인 미네르바스쿨은 이처럼 기존의 대학들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 우선 캠퍼스나 강의실이 따로 없기 때문에 온라인(사이버) 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온라인 대학과 같지는 않다.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고, 배운 것을 실생활에서 활용하고 적용하는 등 현장 학습을 한다. 이를테면 온라인 플랫폼에 오프라인 대학의 특성을 결합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학인 셈이다.
미네르바스쿨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인물은 벤처사업가이자 전 ‘스냅피쉬’ 회장인 벤 넬슨이다. 사진=미네르바스쿨 홈페이지
미네르바스쿨은 지난 2012년 ‘미네르바 프로젝트’와 사립대학인 ‘케크대학원연구소(KGI)’의 공동 프로젝트로 설립된 비영리 학부 과정이다. ‘미네르바 프로젝트’는 미네르바스쿨에서 활용되는 온라인 강의 기술 플랫폼인 ‘포럼’과 관련 지적 재산권을 소유한 영리법인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인물은 벤처사업가이자 전 ‘스냅피쉬’ 회장인 벤 넬슨이었다. 설립 당시 넬슨은 실리콘밸리의 ‘벤치마크 캐피털’로부터 2500만 달러(약 300억 원)의 벤처 자금을 투자 받았으며, 스티븐 코슬린 전 하버드대 사회과학대학장, 비키 챈들러 전 오바마 대통령 과학정책자문위원 등을 영입했다.
넬슨은 2014년 ‘벤처비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사실상 완벽한 대학을 짓고 있다”고 자신했다. 또한 그는 기존 대학들의 높은 학비를 비판하고, 무료인데다 손쉬운 온라인 학습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은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위해 2만 달러(약 2400만 원)를 지불하고 있다. 그 돈이면 마드리드의 리츠 칼튼 호텔에 머물면서 한 달 동안 개인 과외 교사를 고용할 수 있다”고 비꼬았다.
#서울 포함 전 세계 일곱 군데 기숙사
미네르바스쿨의 교과 과정은 다른 대학에 비해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4년제 학부과정에는 사회과학, 인문예술학, 자연과학, 전산학, 경영학 등 5개 프로그램이 있으며, 모두 WASC 지역 인증(미국학력인증기관)을 받았다. 모든 학생들은 처음 1년 동안 동일한 네 과목을 수강해야 한다. 또한 굳이 선택과목이나 취미강좌를 수강할 필요도 없다. 전통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셰리 임 씨는 이 교과과정이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임 씨는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처음에는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미네르바스쿨이 신입생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였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78%는 미국 이외 지역의 출신이다. 이 역시 아이비리그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아이비리그의 경우, 전체 재학생에서 유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10~15%에 그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대학 프로그램인 미네르바스쿨은 온라인 플랫폼에 오프라인 대학의 특성을 결합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학이다. 사진=미네르바스쿨 홈페이지
입학정원이나 제한은 없지만 미네르바스쿨의 합격률은 1%대 수준으로 하버드대학보다 까다로운 편이다. 2016-2017년엔 1만 6000명이 지원, 최종 306명이 합격해 1.9%의 합격률을 나타냈으며, 2018-2019년의 경우에는 모두 2만 3000명이 지원해 276명이 합격했다. 합격률은 1.2% 수준이었다.
미네르바스쿨의 학교 시설이라곤 전 세계 일곱 군데에 있는 기숙사가 전부다. 스포츠팀도 없고, 체육관도 없으며, 도서관이나 학생식당, 심지어 강의실도 없다. 학생들은 처음 1년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고, 다음 3년 동안은 서울, 하이데라바드, 베를린, 부에노스아이레스, 런던, 타이베이 등 여섯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생활한다. 각각의 도시에는 모두 미네르바스쿨이 운영하는 기숙사가 있다.
어느 도시에 있든 학생들은 모든 수업을 같은 장소에서, 즉 컴퓨터 앞에서 듣는다. 모든 수업은 온라인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교수와 학생이 직접 만날 일은 없다. 강의는 자체 개발한 플랫폼인 ‘포럼’을 통해 진행되며, 스무 명 이하의 학생들이 그룹을 지어 참여한다. 교수와 학생들은 실시간 토론을 비롯해 자료조사, 퀴즈 등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한다. 모든 수업은 간단한 퀴즈로 시작해서 수업 후반부에 두 번째 퀴즈를 던지는 식으로 끝난다.
수업 중 발언을 많이 한 학생과 적게 한 학생을 자동으로 구분해주는 기능도 있다. 이를테면 토론에 참여하는 빈도에 따라 해당 학생의 아이콘 색깔이 바뀌는 식이다. 교수는 학생이 발언을 하도록 추가 질문을 던지거나 적극적인 참여를 하도록 유도한다. 교수와 학생들이 서로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한눈을 팔지는 못한다. 마케팅 책임자인 로빈 골드버그는 “아무도 모르게 눈을 깜빡일 수조차 없다. 또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물을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교수, 타이완 학생 ‘시차 적응 힘드네’
모든 시험과 과제는 오픈북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굳이 암기해서 시험을 볼 필요는 없다. 또한 강의는 성적을 채점하기 위해 자동으로 녹화되며, 이를 통해 교수는 학생들에게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해준다.
오프라인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는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며, 현장에서 만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각 도시에는 학생들을 돕는 담당자가 배치돼 있다. 담당자는 관련 기업 및 행정기관과의 연계 프로그램을 만들고,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와 관련, 미네르바스쿨 홈페이지에는 ‘끈끈한 동료애로 뭉친 동급생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면서 매주 과제를 수행하고 흥미와 활동에 기반을 둔 그룹을 조직한다’고 안내되어 있으며, 또한 ‘새로운 장소를 함께 탐험하면서 영원한 우정과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고도 소개되어 있다.
오프라인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한다. 사진=미네르바 스쿨 홈페이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학생들은 원격수업 모델에도 단점은 있다고 말한다. 임 씨는 “모든 게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수들과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한 가지 단점은 강의 스케줄이다. 가령 시차가 그렇다. 교수들이 모두 미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에 머물고 있는 학생들의 경우 시차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가령 타이베이에서 공부하는 고학년 학생들의 경우, 48개 봄학기 과정 가운데 8개 과정만이 오전 9시에서 오후 9시 사이에 진행됐다.
이 밖에도 임 씨는 캠퍼스가 따로 없는 미네르바스쿨의 특성은 긍정적일 수도, 또 부정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임 씨는 “학교 측은 도시 전체를 우리들만의 캠퍼스로 활용하라고 말한다. 때문에 더 의미있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 수시로 밖으로 나가 도시와 지역 주민들과 교류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다”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이런 기회와 공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임 씨는 덧붙였다. 또한 기숙사에서 가끔 ‘답답함’을 느낀다고 말하는 임 씨는 “이곳에는 개인 공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털어 놓았다.
학생들 간에 상호 교류가 부족하다는 불만을 해소해주기 위해 미네르바스쿨 측은 매년 3월, 미네르바 여신을 기리기 위해 열렸던 로마인들의 축제인 ‘퀸쿠아트리아’에서 따온 독특한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1년에 한 번씩 전체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모여 서로 교감을 나누자는 취지에서다. 이에 뱅크스는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친구들과 함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라고 평하면서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졸업 후의 진로는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학교 측은 과학, 교육, 기술,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거나 혹은 정부 단체에서 일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창업을 꿈꾸는 학생이 많은 것도 물론이다.
학생들의 취업과 진로 문제에 초점을 맞춘 채용 전문팀은 재학생과 동문들을 위해 흥미롭고 생산적이며, 또 전공과 관련 있는 취업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다양한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학생들은 아마존, 애플, 후지츠, 구글, 트위터, PwC컨설팅, 국제앰네스티 등 유명 기업이나 연구기관, NGO 등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받았다.
다만 올해 처음 졸업생을 배출한 만큼 앞으로 미네르바 출신의 인재들이 각 사회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싶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