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동 부지. 사진=일요신문DB
서울시는 6월 18일 대한항공 소유의 종로구 송현동 부지 3만 6642㎡(약 1만 1103평)를 매입해 공원화할 계획을 밝혔다. 전희선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대한항공과 지난해 말부터 부지 매입 관련 실무 협상을 하고 있다. 우선 올해 안에 도시계획시설공원으로 지정하고 2022년에 매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구체적인 부지 개발 계획은 시민과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남은 대규모 미개발 토지다. 대한항공은 2008년 삼성생명에 2900억 원을 주고 이 땅을 샀다. 7성급 관광호텔 건립을 계획했다가 여론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대한항공은 2019년 2월 재무구조 개선 대책으로 송현동 부지를 매각하겠다고 발표했고 1년이 지난 올 2월 이사회에서 매각을 의결했다. 현재 약 5000억 원에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송현동 부지 매입가가 4000억~4500억 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송현동 부지 가격을 두고 대한항공을 비판하는 견해가 나왔다.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는 한겨레 칼럼을 통해 “기업이 2900억 원에 산 땅을 10년 만에 5000억 원에 팔겠다는 자세는 옳지 않다. 대한항공은 우리의 세계적 기업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국가와 국민의 도움이 컸다. ‘대한’이라는 나라 이름의 상호와 태극문양이 자랑스러웠다. 그게 혼자 힘으로 큰 게 아니다. 그런데도 꼭 땅 장사를 해야겠다는 잡상인적 사고가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미술계와 건축계 일각에서는 김원 대표 칼럼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재 협상 가액으로 알려진 5000억 원이 시세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5000억 원 기준으로 보면 송현동 부지는 3.3㎡(약 1평)당 4500만 원이다. 이는 현재 송현동 인근에 있는 매물 시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송현동 부지 인근에 매물로 나온 370㎡ 토지는 3.3㎡당 약 9454만 원에 올라와 있다. 송현동보다 입지가 좋지 않은 경복궁 인근 서촌 토지조차 3.3㎡당 6500만 원에서 7100만 원 수준이다.
김원 대표가 이런 시선을 받는 이유는 그의 과거 행적과 무관하지 않다. 김 대표는 서울시 주요 공공개발 사업의 이해관계자 집단에 포함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지난해 논란이 있었던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대표적이었다. 김 대표는 2016년 광화문포럼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여론 조성에 나섰다. 2018년 서울시는 광화문시민위원회를 구성했고, 김 대표는 위원장이 됐다.
김원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10년 전부터 함께 도시개발을 논해온 사이로 알려졌다. 박 시장은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이던 시절부터 김 대표와 함께 공공건축에 큰 관심을 보였다. 2010년 11월 도시개발 관련 모임인 ‘인간도시컨센서스’라는 단체의 창립총회에도 참여했던 박 시장이었다. 인간도시컨센서스 수장은 김 대표였다. 2013년 경복궁 인근 서촌 종합관리방안이 나올 때도 김 대표는 굵직한 토론회의 중심에 서며 서울시 사업 방향 설정에 큰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김원 대표는 일요신문에 “난 서울시 사업과 관련해 별로 입김이 있지 못하다”고 운을 띄운 뒤 “5000억 원으로 책정된 송현동 부지가 난 비싸다고 생각한다. 인근 시세로는 따질 수 없다. 작은 평수보다 큰 평수의 평당 단가가 싸다. 어딘가를 개발할 때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좋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해관계가 다 다르다. 하지만 난 대한항공이 5000억 원을 받는 건 무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곳을 보존하자는 게 아니다. 경우에 따라 재개발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낙후된 지역이지만 역사성을 따졌을 때 옥인동처럼 보존을 하자는 가치를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김 대표가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사업의 한 축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승효상 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 대표 덕으로 전해진다. 박 시장에게 김 대표를 추천한 게 승 대표였다고 한다.
2014년 9월부터 2년간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이기도 했던 승효상 대표는 박원순 시장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치적 쌓기 논란에 휩싸였던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리모델링과 부실 공사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서울로 7017’ 등 굵직한 프로젝트는 모두 그의 지휘 아래 진행됐다(관련기사 [현장스케치] 날림 공사 흔적 가득한 ‘서울로 7017’…박원순 시장의 부실작 되나).
승효상 대표는 “서울시 공공개발의 전체적인 자문을 해주는 건 맞지만 서울시 사업을 직접 받지는 않는다. 서울시 사업을 받은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설계를 하는 게 내 직업이니 이건 민간의 영역”이라며 “건축을 했을 땐 어차피 조형물이 들어가야 한다. 건축주가 조형물을 만들 작가를 소개해 달라고 하면 내가 잘 아는 사람을 소개해 주는 게 맞다. 모르는 사람 소개했다간 무슨 조형물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현재 송현동 부지 매입을 추진하며 활용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2019년 6월 서울시의회 시정 질문 때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 옆 풍문여고를 매입해 공예박물관을 만들고 있는데 인근에 국립민속박물관이 옮겨오는 것도 좋겠다”며 정부 매입을 제안한 바 있었다. 광화문은 정치 공간으로, 돈화문로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하자는 구상의 일환이었다.
한편 지난 4·15 총선 전 이낙연 의원도 문화예술인과의 간담회에서 “국민청원이다. 송현동 부지에 국립민속박물관을 유치하는 걸 공약 사업에 넣어 달라”는 이종철 전 국립민속박물관장의 제안에 “그렇지 않아도 선거 공약 1호에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