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패 탈출 효과를 기대하는 ‘선수단 삭발’에 대해 한 선수는 “가장 효과없는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한 선수는 “연패가 슬슬 길어지기 시작하면 팀 전체가 위축되는 게 느껴진다. 1회에 선취점만 내줘도 ‘오늘 또 지는 것 아닌가’ 싶은 부정적인 기운이 더그아웃에 엄습해 온다”며 “평소보다 플레이도 소극적으로 변한다. 과감한 플레이로 수훈을 세우는 것보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이럴 때는 ‘내가 해결해야지’ 하는 생각보다 ‘누군가 잘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어떻게든 1승을 해내야 끝난다. 연패를 벗어나는 비법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그냥 이겨야 한다. 그래서 더 조급해진다. 이 선수는 “연패 기간에는 5점을 앞서도 안심을 할 수 없다. ‘이러다 또 뒤집히지 않을까’ 싶어서 오히려 더 불안하다”고 했다. 또 다른 선수는 “조금씩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불안감이 떠나지 않는다. 더 놀라운 건, 그런 마음이 실제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다”고 했다.
과거에는 온갖 미신도 횡행했다. 한 야구 코치는 “연패를 끊기 위해 상대팀 더그아웃에 몰래 소금을 뿌린 적도 있다”고 털어 놓았다. “우리 팀이 유독 상대 전적에서 약한 팀이 있었다. 그 팀을 상대로 10연패를 넘게 했다”며 “그래서 그 팀과 홈 경기를 할 때 더그아웃에 소금이나 팥 같은 걸 뿌렸다. 이른바 ‘부정 탄 기운’을 몰아내자는 의미였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코치는 “예전에는 연패 중에 회식을 많이 했다. 다 같이 모여서 ‘한번 잘해보자’고 밥도 먹고 술잔도 부딪히면서 의기투합했다”며 “그러나 다음 날 야구장에 나와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순간,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면서 다시 패배의 구렁텅이에 빠진다”고 회고했다.
과거 긴 연패 때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은 선수단 전체의 ‘삭발’이다. 2010년부터 팀 성적이 꾸준히 안 좋았던 한화는 아마 최근 10년간 가장 삭발을 많이 한 팀일 것이다. 2013년 개막 13연패 때도 삭발을 했다. 지금은 한화 코치가 된 외야수 정현석은 눈썹까지 모두 밀고 나타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수도권 구단의 한 선수는 “세상에서 가장 효과가 없는 연패 탈출 방법이 삭발”이라고 했다. 실제로 삭발한 당일 경기에서 연패를 끊은 팀은 많지 않다. 어쩌다 한 번씩 일치했던 사례가 널리 알려졌을 뿐이다.
물론 연패 기간의 삭발이 그저 ‘전시용’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나이 30대 중반에 삭발을 경험해 본 한 베테랑 선수는 “그때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삭발을 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뜻을 하나로 모으고 싶은 절박한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스타킹을 유니폼 무릎까지 올려 신는 일명 ‘농군 패션’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마음가짐을 바꾸고 싶을 때 주로 활용하던 방법이다. 2018년엔 LG 선수단 전원이 농군 패션을 하고 출전해 8연패를 끊은 적도 있다. 이 선수는 “팬들이 자칫 ‘저 선수들은 이길 의지도 없고 무기력하게 지기만 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 않나. 선수들도 누구보다 이기고 싶고, 그만큼 단합하려고 노력한다는 의지를 그렇게라도 표현하는 것”이라며 “동료들의 삭발한 머리나 어색한 유니폼을 보면서 투지를 불태우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