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관중이 들어차던 수원과 서울의 ‘슈퍼매치’가 이제는 흥행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과거의 영광 잊은 라이벌
팀당 27경기로 운영되는 2020시즌 K리그1, 현재 7경기를 치르며 시즌의 약 25%가 진행된 현재 리그 순위표에서 수원과 서울의 위치가 낯설다. 19일 현재 이들의 순위는 각각 8위(수원)와 10위(서울)다. 항상 우승 후보로 꼽히는 이들이 이제는 하위권 탈출에 힘을 써야 할 처지다.
수원과 서울의 리그 우승 횟수는 합해서 10회(서울 6회, 수원 4회)에 이른다. 서울은 4년 전인 2016시즌 K리그1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전반기까지 선두권 경쟁을 펼치다 최종 순위 3위를 기록했다. 수원은 비록 정규리그에서는 8위에 머물렀지만 FA컵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수원과 서울은 언제나 스타플레이어가 모인 팀이기도 했다. 이들이 맞붙은 2008 K리그 챔피언결정전 출전 명단에는 에두 조원희 송종국 이정수 이운재(수원), 정조국 데얀 김치우 기성용 이청용 김진규(서울)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사령탑은 차범근 감독과 세뇰 귀네슈 감독이었다. 이들은 경기 내용과 결과, 두 마리 토끼를 잡아냈다.
스타 군단이기에 자연스레 팬들이 모였다. 수원과 서울의 맞대결인 일명 ‘슈퍼매치’는 K리그의 가장 큰 히트상품이었다. K리그 역대 1경기 최다관중 기록 상위 5위 중 3경기가 슈퍼매치다. 이에 시즌 초반이나 어린이날 등 분위기를 끌어올려야 할 시점에는 대부분 수원과 서울의 라이벌전 일정이 잡혔다. 하지만 최근 동반 부진으로 이 같은 흥행몰이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수원은 부진한 상황에서 스타 선수의 유출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가대표 수비수 홍철.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스타 유출까지 걱정해야 할 수원
먼저, 수원의 부진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됐다. 수원은 2014시즌과 2015시즌 연속 준우승 이후 우승권과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2016시즌과 2019시즌, FA컵 우승으로 체면을 살렸지만 이번 시즌엔 좋은 성적을 내는 곳이 없어 팬들의 탄식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개막 이후 우승 후보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를 상대로 무기력한 2연패를 당했다. 연초부터 이어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일정을 더하면 4연패였다. 이후 리그 최하위 인천을 상대로 페널티킥 골로 1-0 신승을 거뒀지만 이어 약체로 평가받는 부산 아이파크, 광주 FC를 상대로 승리하지 못했다.
최근 2경기, 강원 FC와 성남 FC에 모두 승점을 따냈지만(1승 1무) 그 사이 이적설이 불거지며 팬들의 시름을 더하게 만들었다. 수원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인 왼쪽 수비수 홍철이 울산과 연결된 것이다. 약 6억 원의 바이아웃이 책정돼 있기에 개인 협상만 이뤄지면 울산이 홍철을 데려갈 수 있는 상황이다.
홍철은 현재 국내 최고 왼쪽 수비수로 평가받는 선수다. 2019년 10월 국가대표팀의 북한 원정(월드컵 지역예선 일정)에 나선 유일한 수원 소속 선수기도 하다. 2013시즌부터 수원 유니폼을 입은 홍철에 대한 팬들의 사랑과 신임은 각별하다. 그의 이적설에 동요가 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수원의 선수 유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즌에 앞서 2019시즌 득점왕 아담 타가트(20골)의 이적설이 터지자 이임생 감독은 “잡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그는 이번 홍철과 관련한 소식에 대해서도 “구단에 잔류를 요청하려고 한다”고 했지만 팬들의 불안감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의 기록적인 0-6 패배와 4연패는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잊지말자 2018’ 악몽 떠오르는 서울
서울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7경기에서 2승 5패, 승점 6점으로 10위에 처져 있다. 특히 최근 4경기 연속 패배하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중엔 대구 FC를 상대로 한 충격의 대패(무득점 6실점)도 포함돼 있다. 4연패는 구단 역사상 17년 만의 기록이다. 6골차 패배 기록은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서울의 자랑이던 단단한 수비는 7경기에서 16골을 내주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2018시즌의 악몽이 떠오를 법하다. 당시 서울은 부진을 거듭하다 최종 순위 11위를 기록, 승강플레이오프를 치른 끝에 가까스로 1부리그에 살아남았다. 이듬해 3위로 반전을 만들었지만 또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4연패를 당하던 상주 상무와 원정경기에서 일부 팬들은 경기장 인근에 ‘잊지말자 2018’이라는 걸개를 내걸었다.
서울의 부진은 이번 시즌 구단이 각종 논란에 휘말리며 더 큰 질타를 받고 있다. 해외에서 뛰던 스타 선수들이 국내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연이어 친정팀 서울이 아닌 다른 팀 유니폼을 입었다. 고명진과 이청용은 나란히 울산으로 향했다. 기성용의 복귀까지 불발됐다.
시즌 개막 직후에는 축구 외적인 논란으로 홍역을 앓기도 했다. 빈 관중석에 마네킹으로 응원전을 펼치려 했지만 성인용품을 가져다 놓았다는 눈총을 받았다. 결국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제재금 1억 원이라는 중징계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구단 내부적으로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김성재 수석코치, 윤희준 코치가 팀을 떠나고 U-18팀(오산고)을 지도하던 김진규 코치를 불러들였다. 시즌 중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수원과 서울이 동반 부진을 겪는 사이 ‘K리그 최고 라이벌전’이라는 타이틀도 빼앗기는 모양새다. 구단의 지속적인 투자와 공격적인 경기 운영으로 울산과 포항 스틸러스의 ‘동해안 더비’가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 수원과 서울이 만들어내는 스토리가 더 이상 팬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것이다.
한 축구계 인사는 “양팀의 지금 모습을 보면 구단 입장에선 차라리 무관중 경기가 열리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라며 “관중들이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든 구단에 항의 의사를 표현했을 것”이라는 우려를 남겼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