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통합당 내에선 사전투표제 개정 추진이 일부 보수 강경세력이 주장하는 ‘사전투표 조작 의혹’ ‘총선 불복’ 등과 맞물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추진하는 당 혁신과의 충돌 가능성도 제기된다.
6월 2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왼쪽)과 정진석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미래통합당이 선거제도 개선 특별위원회 구성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특위는 사전투표 제도를 손보는 게 목적이다. 특위 위원장에는 정운천 의원, 위원으로 김기현 의원 등이 거론된다.
당초 통합당은 선거제도 개선 특위를 6월 중순 출범시킬 예정이었다. 통합당 한 의원은 “특위 구성 논의가 있었다”면서도 “21대 국회 원구성 상임위원장 배분 과정에서 여야가 충돌해 주호영 원내대표가 사의를 표하는 등 이번주 원내 지도부 공백이 생겼다. 이에 특위 구성 논의가 진전이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사전투표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는 공식석상에서 나왔다. 원내 최다선이자 국회부의장으로 내정된 정진석 의원은 6월 10일 비대위원회 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사전투표 제도가 이번 총선을 치르면서 여러 가지 허점이 제기돼 합리적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의원은 “선거일에 불가피하게 투표하지 못하는 유권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오히려 사전투표율이 당일 투표일에 육박하는 추세가 이어져 본말전도 되고 있다. 문제는 공직선거운동기간은 투표일 전날까지 13일을 보장하고 있는데, 사전투표를 하면 4~5일이나 축소된다. 그 사이 중요한 변수가 발생한 경우 막판 상황까지 민심이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을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사전투표일에 맞춰 후보 측에서 각종 모임을 만들어 다른 지역에서 투표하도록 동원하는 등 관권·금권 허점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박형준 전 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도 같은 날 초선 모임 강연에서 “사전투표제는 반드시 점검이 필요하다”며 “거의 일주일 전에 사전투표하는 것은 일주일간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 유권자 선택을 교란시킬 수 있는 게 많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당 내에서는 개선 방안으로 ‘선거일을 3일로 늘리고 사전투표 없애기’ ‘사전투표 제도를 본 선거일과 최대한 근접시키고, 선거운동 기간을 사전투표에 맞추기’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합당이 사전투표 제도를 손보려는 이유는 지난 4·15 총선 참패 원인 중 하나가 현 선거 제도에 있다는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본 투표일인 4월 15일에는 1701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했는데, 통합당 782만 표(46.0%)에 민주당 774만 표(45.6%)로 통합당이 근소하게 앞섰다. 하지만 사전투표에서 민주당이 652만 표(56.3%)를 득표해, 404만 표(34.9%)를 얻은 통합당을 압도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총선에서 대승을 거뒀다.
특히 2014년 6회 지방선거에서 처음 도입돼 실시된 이후 사전투표 투표율은 점차 늘고 있다. 이번 총선 사전투표율은 26.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른 총선 총 투표율은 66.2%였다. 코로나19 사태 감염 우려에도 지난 1992년 치러진 14대 총선 이후 28년 만에 최고 투표율이었다.
결국 사전투표 제도로 인해 투표율이 높아지면서, 통합당이 최근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하지 못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통합당이 사전투표 제도 개선 논의를 본격화하면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제1야당이 자신들에 불리하니 사전투표 제도를 고치려 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당이 투표율을 낮추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취지에 벗어난다는 반발도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민주주의에서 투표율이 매우 중요해 여야 합의로 사전투표를 도입한 것인데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지적했다.
특히 통합당의 사전투표 제도 개정 추진이 민경욱 전 의원 등 보수진영 일부에서 제기되는 ‘부정선거 의혹’과 더해져, 통합당이 선거에 불복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물론 통합당은 ‘사전투표 선거 조작 의혹’에 대해 공식적으로 선을 긋고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 출범과 동시에 당의 환골탈태를 선언하며 ‘보수색채 빼기’에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당내 일부 보수 강경세력은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전투표 제도 변경도 그들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특위 출범이 사전투표 조작 의혹과 맞물리면서 통합당 혁신 노력을 빛바래게 하고 오히려 역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 분위기가 감지되는 이유다. 당내 김종인 위원장과 강경 세력 간 갈등도 배제할 수 없다.
통합당 의원들이 특위를 출범시키려면 김종인 위원장 승인이 필요하다. 김종인 비대위 관계자는 “선거제도 개선 특위는 당내 비공식적으로 검토 중인 사안으로 알고 있다”며 “공식적으로 정해지지 않아 비대위에서 따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4월 10일 서울 서울역에 차려진 21대 총선 남영동 사전투표소 전경. 사진=박정훈 기자
하지만 실제 사전투표 제도가 개선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전망이 높다. 사전투표 제도 변경을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인데,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에서 동의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 통합당 한 관계자는 “특위 구성부터 현실성 없다고 본다”며 “어차피 사전투표제 법 개정을 통과시키기 쉽지 않다. 그런데 괜히 특위를 만들어 사전투표 제도 개선 주장을 하면 국민적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지지율만 떨어뜨리는 행위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
통합당 중진 의원은 “선거제도 개선 특위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선거제도 변경 논의가 된다면 최소한 일부 후보들이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 법원 재검표 이후에 가능하다. 지금 논의를 하면 선거조작 의혹과 이슈가 혼돈된다. 제도 개선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 만큼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전선거는 투표율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현 제도를 유지하는 게 낫다고 본다”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