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전 세계 항공업계의 시름이 깊다. 이는 국내 여행객들의 향후 해외 여행길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해외여행 수요 줄어들면 항공사 문 닫고 항공료는 올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발표한 ‘향후 5년간 항공 수요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적 항공 수요는 지난해의 50% 수준에 그치는 반면 2021년엔 75%로 회복하고 2022년엔 90% 수준으로 올라서리라는 낙관적 전망을 하고 있다. 하지만 IATA는 “86%의 항공 이용객들이 여행 중 격리될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며 “69%는 14일간의 격리 기간이 있을 경우 해외여행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설문조사 내용을 밝혔다. 한편 항공수요가 지난해 수준으로 회복되는 시점은 2023년으로 내다봤다. 그 사이 항공사들이 버틸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세계관광기구(UNWTO)가 발표한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해외여행 리포트’에서는 2020년 해외여행객 규모가 예년 대비 60~80% 감소하면서 항공 수요도 1990년대 후반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 예측했다. 이 리포트에 따르면 세계 여행 시장은 전 세계 217개국이 해외여행 제한조치를 시행한 3월부터 본격적인 감소세에 들어섰다. 1분기 해외여행객은 전년 동기 대비 약 6700만 명이 줄어 22% 감소했고 관광수입도 약 800억 달러(약 98조 1520억 원)가 줄었다. 지역별로는 코로나19를 가장 먼저 맞닥뜨린 아시아가 35%의 여행객이 줄어들며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만약 9월부터 하늘길이 열린다고 가정해도 해외 여행객은 4억 4000만 명 수준으로 2019년 14억 6200만 명에 비해 70% 감소한 수치이며 이는 1990년대 수준이다. 관광업계와 직결된 일자리 120만 개도 함께 사라질 전망이다. 2009년 금융위기 때 전년 대비 여행객이 4% 줄었고 2003년 사스 때는 0.4% 줄어든 것과 비교해도 확연한 차이다.
UNWTO는 전 세계 해외여행 회복 시기를 2021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지만 아직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만큼 당분간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의 국제선 운항 재개나 여객 수요 회복은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국제선 수요는 최소 2024년쯤 돼야 2010년대 규모로 복구될 수 있을 거란 예측도 나왔다.
문제는 IATA의 우려대로 해외여행 시 도착 국가에서의 자가격리나 해외여행 후 국내로 돌아왔을 때 2주간의 자가격리 조치 때문에 당분간 긴급한 상용수요를 제외한 실질적 여행객의 수요가 좀처럼 늘지 않을 거라는 데에 있다.
해외여행 시 도착국가에서의 자가격리나 해외여행 후 국내로 돌아왔을 때 2주간의 자가격리 조치 때문에 당분간 긴급한 상용수요를 제외한 실질적 여행객의 수요가 좀처럼 늘지 않을 전망이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따라 항공사들도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최근 영국의 대표적 저비용항공사(LCC)인 이지젯은 4500여 명의 직원을 감원한다고 밝혔고 중동 최대 항공사인 에미레이트 항공은 약 3만 개의 일자리 감축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어 캐나다는 약 2만 명 감원에 들어갔고 미국 LCC 제트블루도 자사 직원 300여 명을 해고하고 외주로 돌릴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2개의 대형항공사(FSC)와 4개의 저비용항공사(LCC)에서 직원 413명을 감원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200여 개국이 해외여행 제한조치를 시행하고 있고 70%가 넘는 166개국에서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하늘 길을 닫아놓은 만큼 해외 여행길이 코로나19 이전처럼 열리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항공 수요 회복은 당분간 짧은 일정의 국내선이 이끌 것이며, 장거리 여행에 미치는 악영향은 좀 더 오래갈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인의 해외여행 기피 현상은 더 두드러진다. 항공권 가격비교 플랫폼인 스카이스캐너가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대만,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지역 6개국의 여행객 5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월 한국인의 국제 항공편 검색 증감률은 4월에 비해 -14.7%로 집계됐다. 이는 일본과 대만의 경우 국제 항공편 검색량이 4월에 비해 50%가량 증가한 것과 비교되는 수치다.
반면 한국인의 5월 국내 항공편 검색량은 40.5% 증가했다. 스카이스캐너는 “한국인의 해외여행 수요가 다른 아태지역 국가와 비교해 가장 낮았다”며 “한국인 여행객은 다른 국가의 여행객에 비해 안전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고 분석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코로나19 종식 이후 가장 하고 싶은 여가활동으로 국내관광이 56.1%, 친구·동호회 모임이 45%, 영화 관람이 40.4% 순으로 집계됐다. 해외여행은 33.6%에 그쳤다. 한 여행사 대표는 “상대국 여행 제한에다 여행 후 국내 자가격리 조치를 2주간 해야 하면 해외여행 하는 데 최소 3주가 필요하다. 누가 해외로 여행을 가겠느냐”고 토로했다.
#화물 운송이든 국내선 확충이든 버티는 자가 승리
코로나19에 대한 항공사들의 대응도 각각 노선이 다르다. 미주와 유럽 등 주로 장거리 국제선 운항을 통해 수익을 얻었던 대한항공 등 대형항공사(FSC)는 당분간은 화물 운송을 통해 상황을 극복한다는 입장이다. 국내선의 경우 FSC는 LCC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탓에 국내 노선 확충에도 큰 의미가 없다. 반면 올여름 휴가철 피서객이 제주와 부산, 강원도 등 국내에 몰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로 중국과 일본, 동남아 위주의 단거리 노선을 운행했던 LCC들은 경쟁적으로 국내노선과 부정기편을 확충하고 나섰다.
미주와 유럽 등 주로 장거리 국제선 운항을 통해 수익을 얻었던 대한항공 등 풀서비스항공사(FSC)는 당분간 화물 운송을 통해 상황을 극복한다는 입장이다. 사진=대한항공 제공
대한항공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노선의 경우 지난해 7월 예약률은 70%가 넘었지만 올해는 22%에 불과하다”며 “화물운임을 제외한 국제여객운임 매출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현재 국제선 항공편 운항률은 10% 미만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에도 공급 과잉 논란을 빚으며 출혈 경쟁을 벌였던 LCC도 국내선만으로 예전 같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국제선 비중이 높은 국내 항공업의 특성상 국제선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 한 항공업계의 정상화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국제선 수요 회복을 위해 국내 입국 시 2주 자가격리를 능동감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국내에서 코로나가 다시 기승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어렵게 됐다는 입장이다.
올 여름 휴가철 피서객이 제주와 부산, 강원도 등 국내에 몰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로 중국과 일본, 동남아 위주의 단거리 노선을 운행했던 저비용항공사(LCC)들은 경쟁적으로 국내노선과 부정기편을 확충하고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여행업계 전문가는 “정치적인 이유로 국내에 LCC를 너무 많이 허가해 줬다. 미국이나 캐나다 일본, 유럽, 중국 등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한국은 인구 대비 LCC 수가 너무 많다. 이참에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10년 동안 폭발적으로 항공권 공급을 늘렸지만 코로나19 이후 항공사들이 구조조정 돼 공급이 안정화되면 예전 같은 저가 항공권은 대거 사라질 것”이라 내다봤다. 공급량이 감소하게 되면서 가격이 인상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항공업 전문가는 “공급에 비해 수요가 다시 살아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단순히 공급이 많아져도 저가 항공권이 아니라 오히려 운항을 유지하기 위해 고가 항공권이 출연할 수 있다”고 말하며 “애초 항공사에서 내놓는 저가 항공권은 광고성에 지나지 않는다. 180석 소형 항공기 한 번 띄우는데 최소 1억 원이 드는데 저가 항공권만 팔아서는 마진 남기기 어렵다. 항공권 가격이 50% 이상 오를 것이다. 예전처럼 해외 항공권은 상용으로 인해 꼭 필요한 사람, 혹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만 이용하게 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공급이 줄어도, 공급이 늘어도 결국은 항공권 가격이 오른다는 얘기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회장은 “다시는 코로나 이전과 같은 항공권 가격은 만날 수 없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각국의 입국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지될 거라는 예측 아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해외여행은 여러모로 전처럼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