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차 단장은 자신의 개인 SNS에다 LG 팬을 자처하는 이가 여러 차례 구단 운영 관련 불만 섞인 글들을 올리자 잠실구장에서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날짜와 시간을 정해 만나기로 했지만 글을 남긴 이는 나타나지 않았고, 자신의 계정을 삭제한 채 사라졌다. 팬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차 단장은 그럼에도 그를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두산 베어스와의 홈경기가 있던 19일 잠실야구장 인근의 둔치에서 차 단장을 만나 최근 팀 운영 관련 이슈들을 놓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차명석 단장(오른쪽)은 여전히 팬들과의 ‘소통’ 의지를 드러냈다. 사진=연합뉴스
#정우영의 혹사 논란
18일 대전 한화전에서 9-7 승리를 거둔 LG는 4연승을 질주하며 선두 NC 다이노스에 1.5경기차로 따라 붙었다. 그러나 18일 밤 일부 LG 팬들은 야구 커뮤니티에서 연승의 기쁨보다 정우영의 혹사를 걱정하는 글들을 올리며 류중일 감독의 선수 관리에 대해 설전을 벌였다. 정우영은 18일 현재 18경기에 등판해 22.1이닝 1승 무패 4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점 2.01을 기록했다. 소방수 고우석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이상규까지 부진을 거듭하자 류중일 감독은 임시 마무리 투수로 정우영을 필승조로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 단장은 정우영의 혹사 논란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현재 우리 팀 사정상 필승조가 정우영밖에 없다. 고우석이 복귀할 때까지는 필승조로 정우영이 마운드에 자주 올라가는 상황이지만 류중일 감독님 말씀대로 투수는 이닝 수가 아닌 투구 수를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총량의 법칙’에 따라 정우영의 등판 간격을 조절하게 될 것이다. 고우석이 돌아오면 정우영에게 좀 더 많은 휴식을 부여할 예정이다. 팀 성적을 고려해야 하는 감독님 입장에서는 승리를 목전에 두고 정우영 카드를 외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차 단장은 지난해부터 내부적으로는 정우영의 투구 수를 1000개가 넘지 않도록 조절했다고 말한다.
“팬들은 자꾸 이닝 수를 이야기하는데 현대 야구에서 이닝은 무의미한 부분이다. 5이닝 던진 투수가 40구의 공을 던질 수도 있고, 3이닝에 80구를 소화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코칭스태프는 투수들을 관리할 때 투구 수를 체크한다. 이기는 경기가 많을수록 필승조 등판은 불가피한 부분이고, 고우석이 무릎 수술로 이탈한 상황에서 지금은 정우영이 고우석 복귀시까지 잘 버텨줘야 한다.”
#정근우를 보는 두 가지 시선
올 시즌을 앞두고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한 정근우는 정주현과 교대로 출전하고 있지만 일부 LG 팬들은 수비 실책이 잦은 정근우에게 너무 많은 기회를 주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차 단장은 외부에서 보는 것과 내부에서 보는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근우가 선발 출장했을 때 좋지 않은 결과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끝내기 안타로 승리를 이끈 경기도 있었다. 현장의 보스인 감독이 유일하게 터치하지 못하는 게 클럽하우스다. 클럽하우스 분위기는 베테랑 선수들이 이끌어 가는데 우리 팀은 박용택, 이성우, 정근우, 김현수, 김용의가 역할을 정말 잘해주고 있다. 정근우의 존재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걸 간과할 수 없다. 정근우는 2차 드래프트 때 류중일 감독님이 강력하게 영입을 희망하셨다. 연봉이 높은 선수라 구단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는데 감독님뿐만 아니라 데이터 분석팀장도 정근우를 영입하자고 이야기하더라. 에이징 커브로 하향세를 보이는 베테랑 선수지만 정근우가 합류하면 주장 김현수를 적극 도와 팀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감독님도, 데이터 분석팀장도 영입하기를 희망하는데 반대할 수만은 없었다.”
차 단장은 일부 팬들이 정근우의 성적에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을 이해하면서도 숫자로만 정근우의 가치를 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뒤따른다고 말했다.
“‘메기 효과(막강한 경쟁자의 존재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라는 말이 있지 않나. 정근우 덕분에 정주현까지 더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사실 경쟁 구도에 놓인 선수들은 한쪽이 잘하면 다른 한쪽은 슬퍼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근우는 정주현이 안타를 치거나 호수비를 보이면 누구보다 좋아하며 박수를 보낸다. 자신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정근우의 마인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LG가 잘나가는 이유는 바로…
LG가 2위를 내달리고 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군데군데 허점이 보인다. 타일러 윌슨과 케이시 켈리는 자가격리 후유증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이형종, 로베르토 라모스, 김민성까지 부상으로 빠져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LG가 잘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시즌에는 우리 팀 공격력이 하위권을 맴돌았다. 그런데 지금은 타선의 응집력이 엄청나다. 류 감독님은 투수가 어느 정도 실점해도 교체하지 않는다. 타선의 뒷받침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선발 투수가 모두 6이닝 이상을 소화하고 내려온다. 또 한 가지는 LG에서도 ‘화수분 야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천에 있는 2군 선수들 중 지금 당장 1군에 올려도 손색없는 선수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백업이 단단하니까 어떤 선수가 빠져도 금세 채울 수 있다.”
#팬들과의 소통은 계속 된다
차 단장은 최근 해프닝으로 끝난 팬과의 만남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차 단장에게 만나자고 약속한 이가 계정 삭제 후 사라진 듯했지만 또다시 다른 계정으로 글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팬을 만나려 했던 건 대화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지적한 내용 중에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있었고, 오해하는 부분도 있어 직접 만나서 설명을 드리려 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내 SNS에 다른 계정으로 글을 올린다. 본인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글 내용을 보면 그가 썼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그는 지금의 성적에 만족하지 말고 팀의 미래를 위해 신인 선수들을 더 많이 기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묻고 싶다. 그렇게 팀 운영을 했다가 성적 안 나면 어떻게 할 건가. 그 사람만 LG 팬이 아니지 않나. 다른 팬들은 올 시즌 LG의 우승을 위해 지금처럼 팀을 운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단장은 욕먹는 자리다. 그래서 내가 욕먹는 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단, 선수들한테 그 비난을 옮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개인 SNS에 올린 내 딸 사진에도 악플을 달지 말아 달라. 비난의 글은 다른 사진에 남겨주길 바란다.”
차 단장은 최근 카를로스 페게로의 보류권을 풀지 않아 키움이 페게로 영입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에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페게로에게 다른 구단에서 영입 제안이 오면 보류권을 풀어 줄 테니 가라고 했지만 올 시즌에는 코로나19로 외국인 선수 영입에 어려움이 있는 데다 현재 부상 중인 라모스의 복귀에 문제가 있다면 페게로를 활용해야 하는 터라 어쩔 수없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단장은 팀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늘 대기 상태다. 외국인선수를 비롯해 국내 선수들의 몸 상태가 어떤지, 부상 선수라면 언제 복귀할 수 있을지, 현장에서 구단에 바라는 사항이 무엇인지 등등 세심하게 체크해야 한다. 이런 일들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LG가 우승할 수만 있다면 단장인 내가 무엇을 못하겠나. 남은 시즌 동안 잘 준비해서 유광 점퍼 입고 ‘가을야구’를 멋지게 했으면 좋겠다. 그때는 관중석에 팬들도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요즘에는 야구 할 때마다 관중석에서 선수들 응원가를 목 놓아 부르던 팬들의 함성이 그리워진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