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예능 ‘온앤오프’를 보고 있노라면 기시감이 강하게 든다.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간단하다. 카메라가 ‘온(ON)’ 됐을 때 연예인의 삶과, ‘오프(OFF)’ 됐을 때 그들의 사생활을 보여준다. 사진=tvN ‘온앤오프’ 방송 화면 캡처
#사생활 노출 예능, 어떻게 시작됐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예능은 ‘설정’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드라마가 주어진 대사대로 연기하듯, 예능 역시 주어진 설정 안에서 농담을 주고받았다. 2000년대 초반 30%가 넘는 시청률을 구가하며 숱한 유행어를 양산했던 KBS 2TV ‘개그콘서트’가 딱 그랬다. 각 코너는 일종의 상황극이었고, 희극인들은 연기를 했다. 스튜디오 예능의 경우 출연진들은 웃음을 유발시키는 말장난에 치중했다. 토크쇼 역시 게스트의 개인사를 들으며 저마다의 입담을 과시하는 것이 주된 포맷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예능은 스튜디오 밖으로 나왔다. MBC ‘무한도전’과 KBS 2TV ‘1박2일’로 대변되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열렸다. 기본적인 설정은 있지만, 나머지는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대로 담는 ‘리얼(real)’의 시대가 시작된 셈이다.
이후 육아 예능의 시대가 열리며 관찰 예능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밀어내고 방송가의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사생활이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던 연예인들이 빗장을 열고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육아’라는 전제가 달렸지만, 그 과정에서 출연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낱낱이 노출됐다.
MBC ‘아빠 어디가’를 시작으로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SBS ‘오 마이 베이비’ 등 각 방송사들은 앞 다투어 육아 예능을 내놨다. 연예인 2세의 귀여운 모습에 포커스를 맞췄지만, 연예인들이 사는 으리으리한 집과 그들이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가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최근 배우 송승헌과 유아인이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사진=MBC ‘나 혼자 산다’ 방송 화면 캡처
육아 예능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그 자리는 유명 연예인들이 차지했다. ‘나 혼자 산다’와 ‘미운 우리 새끼’는 여전히 두 방송사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출연하는 이들은 사생활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자 좀처럼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던 톱스타들도 하나둘 뛰어들었다. 최근에 배우 송승헌과 유아인이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MBC 관계자는 “결국은 ‘나 혼자 산다’의 인기가 가져온 결과라 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사생활 노출에 거부감을 보이는 스타들이 적지 않았으나 이제는 보편적인 예능의 형태로 인식이 된 것”이라며 “대중들도 호기심을 갖고 이를 지켜보면서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워너비(wannabe)’ 스타들의 삶을 엿보고 따라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생활 노출 예능, 어디까지 보여줄까?
이 같은 사생활 노출 예능은 점점 더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연예인은 더욱 대담해지고, 과감해졌다. 종합편성채널 MBN ‘우리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에 출연하는 배우 유혜정, 박은혜, 이지안 등은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아직은 이혼에 대한 다소 폐쇄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중에게 노출되는 여배우가 ‘이혼’이라는 수식어를 안고 있다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는 오히려 그들의 삶을 당당히 드러냄으로써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내려 노력한다. 무엇보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이 편견을 딛고 직접 이혼을 드러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는 것은, 관찰 예능에 대한 연예인과 대중의 인식이 크게 변했다는 방증이다.
JTBC ‘1호가 될 순 없어’는 개그맨 부부 가운데 이혼한 사례가 없다는 것에 착안한 관찰 예능이다. SBS ‘동상이몽’과 TV조선 ‘아내의 맛’ 등 실제 부부가 등장하는 관찰 예능에 ‘개그맨 부부’라는 콘셉트를 추가하면서 차별화를 두려한 셈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부부’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를 차용함으로써 보다 표현 수위가 높아졌다. 부부싸움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과격한 언사를 주고받기도 한다. 일부 시청자들은 “불편하다”고 지적하지만, 시청률 상승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제작진은 이런 부분을 편집해 예고편으로 쓰기도 한다.
JTBC ‘1호가 될 순 없어’는 개그맨 부부 가운데 이혼한 사례가 없다는 것에 착안한 관찰 예능이다. ‘부부’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를 차용함으로써 보다 표현 수위가 높아졌다. 사진=JTBC ‘1호가 될 순 없어’ 방송 화면 캡처
각 방송사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일반인들의 삶까지 비추기 시작했다. 실제 커플들의 이야기를 담은 MBC ‘부러우면 지는 거다’는 셰프 이원일을 출연시키며 그의 피앙세인 김 아무개 PD를 집중 조명했다. 채널A ‘하트 시그널’은 아예 일반인 남녀가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 방송 관계자는 “스마트폰과 SNS가 보편화되며 누구든 자신을 대중에게 노출시킬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이에 따라 서로의 사생활을 엿보고 자신 역시 셀러브리티, 즉 유명인이 되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비연예인들을 관찰 예능의 소재로 삼는 사례가 늘게 됐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작용도 있다. 김 PD를 비롯해 ‘하트 시그널’의 몇몇 출연진은 부정적인 주장과 폭로가 이어지며 곤욕을 치렀다. 프로그램의 이미지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관찰 예능의 특성상 ‘리얼’을 전제로 그들의 사생활을 보여주게 되는데, 실제 모습과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되면 그 본질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일각에서 제기된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 볼 수는 없다”면서도 “이런 주장이 제기되는 것만으로도 부정적 인식이 생기게 된다. 이는 사생활 노출을 콘셉트로 삼는 관찰 예능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