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혜는 영화 ‘#살아있다’에서 서바이벌 특화형 생존자 유빈 역을 맡아 남성 배우 이상의 액션신을 선보였다. 사진=솔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실 유빈이도 본인이 처한 상황을 바로 받아들이진 못한 것 같아요. 자신도 죽으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죽지 못한 뒤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굉장히 이성적으로 대비하려고 애쓰는 인물이죠. 집 안에 요새를 만들고 (좀비를 퇴치할) 부비트랩까지 설치한 모습을 보면 그래요. 저도 연기하면서 ‘내가 이 상황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참 대단하다’ 싶었어요(웃음). 작가님께서 이 작품을 쓰실 때 본인의 실제 모습은 ‘준우’에 투영이 됐고, 본인이 되고 싶은 모습이 ‘유빈’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작가님이 원하는 인물에 대한 성격과 상황을 정해 놓으시고 성별만 여자로 설정했다는 느낌이에요(웃음).”
특히 극중 유빈이 손도끼와 아이스 피켈(얼음도끼)을 손에 들고 몰려오는 좀비들을 상대로 일당백 전투를 벌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신이다. 시원하고 통쾌한 액션이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이 더 돋보이기에 인상적이다. 이 장면을 두고 박신혜는 “다들 제가 들고 있는 게 낫이라고 생각하시던데, 아이스 피켈이다”라고 강조했다. 산악 동호회 회원으로 추정되는 유빈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좀비 대적용 무기를 설정하다 보니 손도끼나 아이스 피켈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박신혜는 ‘#살아있다’로 유아인과 첫 호흡을 맞췄다. 그에 대한 박신혜의 평가는 칭찬뿐이었다. 사진=솔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작가가 자신을 투영했다는 ‘준우’ 역의 유아인과 호흡은 어땠을까. 박신혜로서는 이 같은 장르물 영화 출연을 결정한 것도, 유아인과 합을 맞춘 것도 처음이다. 자타공인 다소 독특한 면모가 있는 그와의 촬영이 어렵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박신혜는 “오히려 제가 (유아인에게)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유아인 씨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과연 이걸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유아인 씨가 준우에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가 많이 됐어요. 유아인 씨에 대한 믿음이 있었나 봐요, 저한테. 사실은 처음에 봤을 땐 ‘아, 유니크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웃음). 만나고 나니 오히려 유니크함보다 그를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가 더 많을 것 같더라고요. 똑똑하고, 굉장히 사랑스럽고, 멋있고, 아이디어가 참 많은 사람이에요. 제게 굉장히 좋은 자극을 주기도 했고요.”
복도형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하는 ‘#살아있다’는 고립이라는 단어가 갖는 공포감을 극대화시킨다. 사진=솔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제가 공포 영화를 진짜 못 봐요. 특히 ‘파라노멀 액티비티’처럼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긴장감 같은 거…. 좀비를 맡으신 배우분들 중에 특수렌즈를 끼신 분들이 계시고 안 끼신 분들이 계셨는데, 렌즈 끼신 분들이 제 가까이에 계시면 진짜 너무 무서웠어요(웃음). 영화의 배경이 아파트인데 제가 어렸을 때 복도식 아파트에 있는 친척 집에 놀러 갔다가 엘리베이터가 너무 무서워서 못 탄 기억이 있어요. 하필 그 엘리베이터가 또 문에 조그맣게 창문이 나 있는 형태였는데 그쪽으로 뭐가 보일 것 같아서 무서워하고(웃음). 저랑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 관객분들이 영화 보시면 어렸을 때 가졌던 공포감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 영화계에서 이 같은 ‘좀비물’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2016년 ‘부산행’의 성공부터다.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등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이른바 ‘K(코리아) 좀비’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후발주자인 ‘#살아있다’로서는 K 좀비 팬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차별점이 있지 않고선 성공을 담보하기 어려운 환경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박신혜는 “장르물이지만 장르 그 자체보다는 (좀비를 포함해) 그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가깝다는 것”을 한 가지 차별점으로 꼽았다.
묘하게 시국과 설정이 맞아 떨어진 ‘#살아있다’. 박신혜는 관람 포인트로 ‘새로운 공감대 형성’을 꼽았다. 사진=솔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또 다른 차별점을 찾자면 ‘#살아있다’가 개봉하는 지금 이 시국이 아닐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계속되는 확산 탓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나서야 하는 대중에게 ‘#살아있다’가 보여주는 극중 배경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고립과 생존, 모든 좀비물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키워드이지만 시국을 겹쳐서 본다면 그 의미가 남다를 듯하다.
“시기가 참 희한하게 맞물리긴 했어요. 저희가 작품 준비를 하다 보면 어떤 시점을 노리고 한다기보다 계획 단계부터, 혹은 촬영할 때 시기가 맞물리는 경우가 더러 있긴 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된 건 처음이죠(웃음). 조심스럽긴 하지만 고립된 준우의 모습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지금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리뷰 글을 보면서 ‘이런 점이 새로운 공감대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영화에서 준우와 유빈이 홀로 남겨져 있다가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얻는 것처럼 관객분들도 비록 힘들지만 영화를 보시고 ‘오늘 하루를 내가 잘 살아냈다’ ‘잘 견뎌냈다’는 힘을 얻으셨으면 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