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차기 통일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이인영,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차기 통일부 장관 유력 주자로 거론된다. 이들은 ‘86그룹’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출신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그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 마음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위기에 빠진 대북관계에서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인사인 까닭이다.
임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 임기 초반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으면서 현 정부 대북 정책을 진두지휘한 경험이 있다. 여권 내에서도 “급격히 경색된 남북관계 실마리를 풀 인물로는 임 전 실장이 제격”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임 전 실장이 차기 통일부 장관 후보로 이름을 오르내리고 있는 것에 대해 정가에선 차기 구도와 연관 지어 바라보기도 한다. 친문계가 임 전 실장을 차기 대권 주자로 키우기 위해 스펙을 쌓아주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현재 여권의 주요 주자들인 이낙연 의원, 이재명 경기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등은 엄밀히 말하면 친문계가 아니다. 친문 진영 고민도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진=박은숙 기자
정권 초반부터 임 전 실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더불어 현 정부의 황태자로 꼽혔다. 임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든든한 지원 사격을 등에 업고 차기 주자로까지 오르내렸다. 2018년 말 임 전 실장이 재직할 당시 친문 핵심 의원들 사이에선 “청와대가 점찍어둔 차기 주자가 지금 당장엔 조국 민정수석처럼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진짜 차기 주자 부상 가능성이 높은 건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란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2019년 하반기 이른바 ‘조국 사태’가 터지면서 청와대가 구상한 포스트 문재인 구도는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조 전 장관은 법무부 장관 타이틀을 다는 데는 성공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자진사퇴했다. 임 전 실장은 조국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 1월 청와대 비서실장 자리를 내려놓은 바 있다.
임 전 실장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종로 출마를 유력하게 검토했다. 2019년 6월 평창동으로 이사를 가자 정가에선 임 전 실장의 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종로 공천은 이낙연 의원 몫이었다. 임 전 실장은 2019년 11월 17일 총선 불출마와 더불어 정계 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임 전 실장은 “민간 분야에서 통일 사업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임 전 실장 정치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임 전 실장은 21대 총선 선거 운동 과정에서 고민정(서울 광진을), 이수진(서울 동작을) 등 친문계 후보들의 유세를 도왔다. 그리고 이번엔 통일부 장관 하마평에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임 전 실장은 통일부 장관 후임자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 남북 관계에서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 청문회 리스크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 등이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친문 핵심 의원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통일부 장관 자리가 독배란 얘기도 나오더라.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면 단숨에 차기 주자로 우뚝 설 수 있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청문회 역시 어차피 대권 도전하려면 검증은 피할 수 없다. 차라리 매 맞을 게 있다면 지금 맞는 게 낫다. 더군다나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현 상황에서 청문회를 치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6월 22일 홍영표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 22명은 인사 청문회 도덕성 검증 부문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차기 통일부 장관 하마평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던 시점이었다. 개정안엔 인사 청문회를 ‘공직윤리청문회’와 ‘공직역량청문회’로 분리하고 공직윤리청문회는 비공개로 진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미래통합당은 “사실상 인사청문회에 대한 프리패스권을 부여해 뚜렷한 검증 없이 장관급 인사를 추진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6월 22일 밤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썩지 않은 사람 찾기가 여의치 않은 모양”이라면서 민주당의 인사청문회법 개정 움직임을 비판했다. 정가에선 인사청문회 법 개정과 더불어 통일부 장관 하마평에 임 전 실장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에 연결고리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 말고도 여권 내부에선 굵직굵직한 이름들이 차기 통일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키워드는 ‘구국의 강철대오’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학생단체 전대협이다. 통일부 장관 하마평에 오른 이인영 의원과 우상호 의원은 모두 ‘86그룹’의 간판이자 전대협 출신이다. 이인영 의원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987년 1기 전대협 의장직을 지냈다. 임 전 실장도 1989년 3기 전대협 의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이 의원은 20대 국회 전·후반기에 걸쳐 외통위 활동을 지속했다. 2018년엔 남북경제협력 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인 우상호 의원은 자신의 이름이 차기 통일부 장관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것과 관련해 “(나는) 적임자도 아니고 생각도 없다”면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적임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 의원은 “다만 본인(임 전 실장)이 그럴 의사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 밖에도 송영길, 설훈, 홍익표 등 현역 여당 의원들이 통일부 장관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학자 출신으로 관료 장악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도 실세 의원들의 발탁 가능성을 높인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청와대에서 차기 통일부 장관 지명을 놓고 저울질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라면서 “인사청문회 리스크를 두고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채 연구위원은 “차기 통일부 장관 인선 작업에서 아무래도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이 유력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전대협 간부 출신들이라는 상징성이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청와대로서는 마음은 굴뚝같은데 행동에 나서는 것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