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명언이 통하지 않는 정치인이 있다. ‘정치 9단’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이다. 4·15 총선에서 낙선한 그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현역 못지않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지원 민생당 전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특히 남북 관계가 파탄이 난 6월 그의 존재감은 한층 돋보였다. 최근 단국대 석좌교수로 부임한 박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7일 통일부 장관 등 외교·안보 원로를 초청한 청와대 오찬에도 참석했다.
6·15 남북 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은 6월엔 외신은 물론, 국내 언론사 등과 인터뷰를 쉼 없이 했다. 박 전 의원은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돌연 사퇴하자 “통일부 장관을 부총리로 승격해야 한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는 ‘월간 박지원’ 코너까지 생겼다. 박 전 의원 측 관계자는 “하도 찾는 분들이 많아서 낙선했는지, 원내에 있는지 헷갈릴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정치권이 그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는 ‘박지원 킹메이커 역할론’ 때문이다. 영원한 킹메이커인 그는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인 ‘국민의 정부’ 출범의 개국 공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정계 복귀 직후 만든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을 시작으로, 총재 특별보좌역 등을 통해 DJ를 지근거리에서 지켰다. 정권교체 이후엔 제2대 문화관광부 장관과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최근엔 ‘호남 대통령’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 박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언급, “잘하고 있지만, 실수를 안 해야 한다”며 “과거에 고건·이회창 전 총리도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대통령은 다른 사람이 됐다”고 조언했다.
박 전 의원은 민주당 8·29 전당대회 구도가 ‘친이낙연 vs 반이낙연’으로 흐르자, 측근들에게 “당심은 결국 민심을 따라가더라”라고 말했다. 친문(친문재인) 직계인 홍영표 의원 등이 주도한 반이낙연 전선에도 불구하고 대세론을 탄 이 의원이 결국 민주당 당권과 대권을 거머쥘 것으로 예상한 셈이다.
다만 박 전 의원이 킹메이커 자리에 만족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현역 시절에도 종종 ‘킹’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낙선 후에도 측근들에게 “시대가 나를 언제 찾을지는 알 수 없는 게 아니냐”라는 취지의 말을 종종 한다고 한다.
현역 시절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던 박 전 의원은 낙선 후에도 새벽 운동과 조간신문 스크랩 등을 매일 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 전 의원은 낙선했다고 뒷방으로 밀려나 있을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