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3철이 지금 공개적으로 NY(이낙연 의원)를 지지하겠느냐.” 여권 한 관계자가 던진 말이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NY 지원설이 부상한 것은 4월께다. 여의도 안팎에선 양 전 원장이 이호철 전 민정수석 등 부산 친노·친문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NY를 지지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특히 부산·울산·경남(PK) 친문인 최인호 의원이 공개적으로 NY를 지지하면서 양 전 원장의 ‘NY 지원설’ 불씨는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최인호 의원은 NY가 ‘7개월짜리 당 대표’ 비판에 시달리자, “내년 전당대회를 다시 열어야 한다는 이유로 특정 정치인에게 전당대회에 나서지 말라는 것은 무책임한 배제”라고 반박했다. 이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 대통령의 임기도 10개월에 불과했다는 점을 언급,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안정된 리더십을 형성해야 한다”며 “대선주자는 대표 임기를 다 채울 수 없다는 페널티를 안고 당원과 국민의 평가를 받으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당권 도전에 나선 NY 뒷배에 ‘양정철·이호철·최인호’ 삼각편대가 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당 복수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4·15 총선 압승 주역인 양 전 원장은 ‘전당대회 불개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양 전 원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양 전 원장은) 민주당 8·29 전당대회에서 ‘무조건 중립’ 입장을 취할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양 전 원장이 섣불리 나설 경우 민주당 8·29 전당대회가 각 계파의 권력암투의 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민주당 차기 당권 구도는 이미 ‘친낙(친이낙연) vs 반낙(반이낙연)’으로 재편됐다. 반낙의 물꼬는 친문 직계 홍영표 의원 등이 텄다. 이런 상황에서 양 전 원장이 NY에 힘을 실을 땐 ‘문심=NY’ 프레임이 여권을 휘감을 수밖에 없다. 친노계 관계자는 “양 전 원장은 차기 대선 국면이 도래할 때까지 계속 야인으로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양 전 원장은 21대 총선 다음 날인 4월 16일 “이제 다시 뒤안길로 가서 저녁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조용히 지내려 한다”며 민주연구원장직에서 전격적으로 물러났다. 총선 후 미국으로 떠나려던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애초 계획을 변경, 현재 국내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여의도 정치판이 양 전 원장을 계속 야인으로 둘지는 미지수다. 그는 총선 이후 정치판에서 손을 뗐지만, 민주당 5·7 원내대표 경선 때도 양 전 원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양 전 원장은 총선 압승 이유로 ‘당·청의 혼연일체’를 꼽으면서 “그런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 “문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등의 말을 주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권파 친문계가 지지한 김태년 원내사령탑 출범에 ‘양심(양 전 원장의 의중)’도 한몫했다는 얘기다.
당시 김 원내대표는 예상을 뒤엎고 1차 투표에서 과반(163표 중 82표)을 획득했다. 양 전 원장의 ‘김태년 지원설’이 사실이라면, 당권파 친문계 역시 8·29 전당대회에서 NY를 지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권파 친문계와 부산 친노계 등의 지지는 NY으로선 천군만마다.
전해철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하지만 당의 다른 관계자는 “양 전 원장은 철저히 중립이었다”고 원내대표 경선 개입설을 일축했다. 여권 인사들은 양 전 원장이 차기 대선 때 다시 복귀, 민주정부 4기 출범을 위한 판을 그릴 것으로 봤다. 양 전 원장이 문 대통령의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전격 복귀할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있다. 지난해부터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의 후임은 ‘양정철’이란 설이 끊이지 않았다.
3철의 한 축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도 정치적 갈림길에 섰다. 이 전 수석은 지난해 정치권을 강타한 이른바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다시 정치권으로 소환됐다. 금융권의 친문계 실세였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뒷배에 ‘이호철이 있다’는 게 의혹의 골자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김미리) 심리로 6월 5일 열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공판에서 청와대 전 특감반원인 이 아무개 씨는 이 전 수석을 비롯해 윤건영 민주당 의원, 천경득 전 청와대 총무비서실 선임행정관,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과 텔레그램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고 진술했다.
친문 게이트 의혹에 연루된 이 전 수석은 당 PK 인사들의 ‘4·15 총선 출마’ 요청에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뒤로 미룬 셈이다. 이 전 수석이 향후 민주당 당권 구도의 변곡점에서 존재감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정치적 재기는 상당 기간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5·7 원내대표 경선에서 상처를 입은 전해철 의원 행보도 관심사다.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예상 밖의 일격을 당한 그는 민주당 8·9 전당대회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애초 전 의원이 친문 직계인 홍영표 의원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지만, 당 주변 인사들은 “전 의원이 홍 의원 당선을 위해 뛰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 의원이 차기 당권과 거리 두기에 나선 것은 홍 의원을 지지해도 ‘NY 대세론’을 뚫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김부겸 전 의원. 사진=박정훈 기자
당 주류인 전 의원은 2년 전 경기도지사 경선 당시 득표율 36.80%에 그쳐 이재명 경기도지사(59.96%)에게 20%포인트 이상 패하는 등 당내 선거에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친문 직계의 핵심이라는 전 의원의 영향력이 과대 포장됐다”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전 의원은 지난해 10월 차기 법무부 장관 하마평에도 올랐지만, 결국 최종 낙점을 받지 못했다. 대신 ‘조국보다 더 세다는’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가 법무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 친문 직계 핵심이라는 평가가 무색할 만큼, 전 의원은 내부 권력구도에서 잇따라 밀려났다.
전 의원이 차기 당권과 거리를 둔 사이, 친문 직계가 주축이 된 ‘부엉이 모임’은 분화의 길을 걷고 있다. 부엉이 모임 주축인 박광온·최인호 의원 등이 일찌감치 NY 돕기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전 의원의 구심점 약화가 친문계 분화로 이어진 셈이다. 만에 하나 민주당 8·29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친문계 일부가 NY계로 넘어갈 경우 전 의원의 구심력도 한층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친문계 다수가 NY에 대한 공개적 지지 표명을 주저하는 사이, 민주당 당권·대권 주자들은 속속 세 규합에 나서는 모양새다. NY 진영엔 복심인 남평오 전 국무총리실 민정실장을 필두로 현역인 설훈 이개호 오영훈 의원 등이 함께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의 이니셜을 딴 계파인 SK계는 이원욱 의원을 비롯해 김영주 의원과 고병국 서울시의원 등이 포진했다. 박원순계는 박홍근 의원과 함께 기동민 남인순 진성준 천준호 의원 등이, 이재명계는 정성호 김영진 의원 등이 핵심 멤버로 자리 잡았다.
NY 대세론 최대 맞수로 평가받는 김부겸 전 의원은 범친노 원로그룹인 원혜영 유인태 전 의원을 비롯해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등과 공조 행보를 펼치고 있다. 이들을 아우르는 교집합은 ‘꼬마 민주당’이다. 꼬마 민주당은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에 반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다.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해 유인태 제정구 전 의원 등은 1996년 총선 때도 3김 청산을 기치로 꼬마 민주당 간판을 달고 출마했지만, 일제히 낙선했다. 이강철 전 수석은 꼬마 민주당의 대구시지부장을 지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NY 등이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 친문계 의원들의 움직임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