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 각종 군 인권 문제로 국방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쓴소리를 해온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도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임 소장은 2004년 군형법의 계간(남성 간 성행위) 처벌 규정과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는 징병검사 규칙에 저항해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해 1년 4개월 동안 복역한 뒤 ‘군인권센터’를 설립했다. 이런 이유로 대체복무 제도와 관련해 상징적인 인물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일요신문은 임태훈 소장을 포함, 대체역 심사위원 29명 전체 명단을 입수해 그들의 면면을 살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소장이 위촉장을 받고 있다. 병무청은 6월 30일부터 대체역 신청 서류를 받는다. 사진=연합뉴스
2020년 10월부터 새로운 군복무의 길이 열린다. 국방부는 6월 23일 육군회관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 주관으로 대체역 심사위원 임명·위촉식을 개최하고, 6월 30일부터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신앙이나 개인 신념 등을 이유로 현역·보충역·예비역 복무를 할 수 없는 사람은 대체역 심사위원회 또는 지방병무청에 신청서, 진술서, 신도 증명서 등을 제출하면 된다. 대체역에 편입된 사람은 군사훈련 없이 36개월 동안 합숙하며 급식·보건위생·시설관리의 업무를 하게 된다.
대체복무의 가부는 대체역 심사위원회에서 판단한다. 심사위원은 법조인·교수·인권활동가·공무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대체역법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법무부·국방부·병무청·대한변호사협회가 각각 5명씩, 국회·국방위원회가 각각 4명씩 추천했다. 29명 가운데 여성은 8명이다. 임기는 3년으로 연임은 1회 가능하다.
수많은 고비를 넘고 어렵게 마련된 제도인 만큼 심사 과정도 공정하고 합리적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3일 공개된 심사위원 명단을 살펴본 결과, 심사위원 다수는 10년 이상 대체복무제도 마련에 힘써 온 연구자들이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진석용 대전대 교수는 2008년부터 국방부 대체복무제 도입 방안을 연구해온 대체역 분야 전문가다.
인권 활동가도 다수 포진됐다. 양여옥 활동가가 소속된 ‘전쟁없는세상’은 평화주의자·반군사주의자로 구성된 단체로 주로 병역거부운동과 무기감시 캠페인, 비폭력 프로그램 등 반전평화운동을 해오고 있다. 이 밖에 김정아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심상돈 전 인권위 정책교육국장도 이름을 올렸다.
특히 군인권 향상에 힘쓰는 전문가가 많았는데 임태훈 소장을 필두로 군인권센터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인숙 변호사, 김은경 젊은여군포럼 대표, 김정민 변호사, 류관석 법무법인 공유 변호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송상교 변호사가 위원으로 임명됐다.
꾸준히 대체복무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해온 법조인과 교수의 위촉도 눈에 띄었다. 오동석 아주대 교수는 2017년 군인권센터가 주최한 병영혁신정책토론회에서 “국방의 의무는 기본권과 대등한 관계에 있지 않다”며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민간대체복무제에 대한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오영중 법무법인 세광 변호사와 오재창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의 변호사는 2018년 국방부 공청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도입을 찬성하는 한편 대체복무 기간을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재승 건국대 교수의 경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촉구하는 한편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적 타협안도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그는 과거 양여옥 활동가와의 대담에서 “대체복무제 도입 초기에는 다소 엄격한 처우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정부가 근무방식, 영역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서 대체복무가 현역보다 수월한 것으로 오해 받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과 제도적 문제도 지속적으로 살펴보겠다는 의지도 엿보였다. 조만형 동신대 경창행정학과 교수, 조태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승범 합동군사대 교수, 고등군사법원장 출신의 최재석 법무법인 한신 변호사, 백인주 법률사무소 백로 변호사와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이다.
이 밖에도 김정란 충남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종철 전 바른미래당 대변인, 김남곤 전 국방위 전문위원, 김태화·박우신 전 병무청 공무원, 유균혜 국방부 공무원(사무국장)이 위원으로 임명됐다.
박형건 전 한국의류시험연구원 원장의 경우 대체복무제와 관련해 두드러진 활동 이력을 찾아볼 순 없었으나 이에 대해 병무청은 25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박 전 원장은 국회 군인복무정책심의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어 이번 심사위원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2018년 당시 국방부가 발표한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정부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선 아쉬움을 제기했다. 현재 병역거부자의 90% 이상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음에도 이와 관련된 전문가는 임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8년 국방부는 대체복무제 정부 구상안을 발표하면서 심사위원 구성에 종교인·법조인·정신과의사 등의 민간 전문가를 넣겠다고 한 바 있으나 이후 검토 과정에서 수정된 것으로 보인다.
한 이단 전문가는 “종교적 신념은 단순히 신도 증명서만으로 구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정량적 판단을 할 경우 특정 종교를 믿지 않으면서 믿는다며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나올 수 있다. 결국 종교적 양심과 신념이 얼마큼 진실한지를 판단해야 할 것인데 이는 이단 전문가인 내게도 늘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제정된 대체역법은 종교적 신념뿐만 아니라 개인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경우도 편입을 신청하도록 허용한다. 특정 교리를 따르지 않더라도 평화를 이유로 집총을 거부할 시 대체복역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에 심사위원회가 어떠한 자료와 기준에 의해 병영의무의 공정성을 해하지 않고 개인의 양심과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합리적인 판단을 할지 주목된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잭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병역거부자가 양심에 의한 대체복무를 주장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 한 사람의 내심을 입증하는 것은 형사사건에서 고의를 입증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동안의 법원 판례와 구체적인 사실관계 등 복합적인 부분을 살펴봐야 하지만 반대로 과도하게 많은 요소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심사 받는 이의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23일 대체역 위촉식 환영사에서 “대내외에서 수용할 수 있는 공정한 심사를 해줄 것을 믿는다”며 “개인의 양심과 신념을 심사하는 어려운 일을 잘 헤쳐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병무청, 서류 접수 코앞에 두고도 심사위원 몰라 대체복무제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국방부와 병무청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무청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대체역 심사위원 위촉식 전날까지도 심사위원 명단에 누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병무청 대체역 심사위원회 심사총괄과는 대체역 심사위원 명단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17일 “대체역 심사위원은 현재 국방부에서 위원장과 상임 및 비상임위원에 대한 채용과 위촉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답변을 했다. 6월 30일 서류 접수를 10일 앞두고도 심사위원 위촉이 마무리되지 않은 셈이다. 국방부와 병무청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았다. 병무청 대체역 심사위원회 심사총괄과는 대체역 편입 및 복무 신청자의 서류 심사를 담당하는 부서다. 대체역 심사위원회 심사총괄과는 22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아직 국방부로부터 심사위원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다. 국방부에서 위촉 절차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접수를 일주일 앞둔 상황인데 아직 심사위원도 정해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서류 접수만 7월에 받는 것이고 정식 소집은 10월쯤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반면 국방부는 하루 뒤인 6월 23일 육군회관에서 대체역 심사위원 임명·위촉식을 개최했다. 국방부가 위촉한 대체역 심사위원은 총 29명이다. |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