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사태는 관련 시스템의 붕괴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강남구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무실 입구.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라임 사태…판매사도 피해자?
라임 펀드와 마찬가지로 옵티머스 펀드도 철저히 투자자를 농락했고, 판매사는 물론 수탁사와 증권예탁결제원, 금융당국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투자자 자산을 멋대로 운용한 것을 넘어 옵티머스 펀드는 문서 위조까지 이뤄졌다. 작정하고 사기를 친 셈이다.
라임 사태를 겪는 판매사 등은 자신들도 사기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투자자를 위해 양질의 상품을 공급해야 할 판매사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보다 충분히 의심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라임 펀드는 메자닌, 무역펀드의 위험 요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사채(BW)에 투자하는 메자닌 펀드는 무엇보다 유동성 위험을 따져야 한다. 대부분 자금사정이 어려운 회사가 발행하는 만큼 원리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주식으로 투자금을 상환받는다. 기업 가치가 높아져 주식으로 바꾸는 경우는 괜찮지만, 원리금 상환 능력이 없어 어쩔 수없이 주식을 받는 경우에는 위험할 수 있다. 메자닌은 만기가 길어 투자금이 묶일 가능성도 크다.
무역금융 펀드도 국내에 출시됐던 펀드들은 애초에 재간접 형태로 투자돼 투자대상 매출채권을 발행하는 기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무엇보다 메자닌 펀드와 무역금융 펀드 모두 조 단위에 가까운 규모로 단기간에 커질 정도의 시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
#라임에서 더욱 진화한 옵티머스
옵티머스 펀드 역시 마찬가지다. 민간기업이 공공기관에서 받은 매출채권을 할인 매입해서 나오는 수익률을 추구하는 것이 애초 구조였다. 발행사가 공공기관인 만큼 원칙적으로 부도 위험은 거의 없다. 하지만 실제 시장 상황을 이해했다면 충분히 의심을 가질 부분이 있었다.
최근 공공기관들은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을 막기 위해 대부분 익월 결제를 한다. 게다가 공공기관 채권은 부도 확률이 거의 없어 기업들이 은행에서 싼 값에 할인할 수 있다. 굳이 사모펀드에 비싼 값을 지불하고 할인할 필요가 없다. 달리 말하면 수천억 원 규모의 사모펀드가 투자할 정도의 매출채권 확보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결국 옵티머스는 부도 위험이 낮은 매출채권 대신 대부업체에 투자금을 전용한다. 근거를 만들기 위해 법무법인을 동원한 위조도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펀드 사이즈가 커지는 과정에서 판매사들이 의심을 했다면 이상 징후를 발견할 수도 있었던 셈이다.
#‘눈뜬 장님’ 된 예탁원·수탁사
사무관리사인 한국예탁결제원과 수탁은행도 전혀 제기능을 못했다. 자산운용사의 운용지시는 수탁은행과 사무관리사에 동시에 전달된다. 수탁은행은 자산을 사고팔며, 사무관리사는 해당 지시 등에 따라 펀드 재산을 계산해 펀드자산명세를 작성한다. 즉 예탁결제원은 펀드가 어떤 자산을 편입하고 있는지를 기록한다. 옵티머스운용은 증권예탁원에 비상장 A, B사 채권을 공기업 C, D사 매출채권으로 등록해줄 것을 요구했고, 실제 그렇게 기재됐다. 판매사들은 사무관리사, 그것도 금융위원회 산하 기타 공공기관인 예탁결제원에서 작성한 펀드명세서를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항변하다.
이와 관련, 판매사의 한 관계자는 “예탁결제원에 펀드명세서를 직접 보여 달라고 해도 ‘자기네들은 운용사 지시만 따라야 하기 때문에 운용사에 관련 정보를 요청하라’는 답변을 받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탁결제원 입장은 다르다. 운용사가 실제 어떤 자산을 인수하기로 했는지 등의 인수계약서를 제출받을 의무는 없으며 인수한 채권의 할인율이나 만기 등 펀드 기준가 산정에 필요한 정보만 필요로 한다는 입장이다. 주는대로 받아 적을 뿐이라는 뜻이다.
수탁은행 역시 비슷하다. 옵티머스 펀드를 보면 고객 자금은 대부업체로 흘러갔다. 투자설명서에 밝힌 ‘공공기관 매출채권 투자’와 전혀 다르게 운용됐지만 수탁사는 이를 문제 삼지 못했다. 현행 자본시장법 247조에서는 펀드의 재산을 보관·관리하는 신탁업자의 역할을 감시 의무까지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수탁은행은 운용사의 행위가 법령, 집합투자규약, 투자설명서 등을 위반했을 경우 운용지시나 운용행위의 철회·변경·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2015년 사모펀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며 사모펀드에 한해서는 수탁사 의무를 특례 조항으로 면제했다. 수탁은행이 감시 기능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