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저기 있는 사람들이 업장을 찾아와서 자기네 술을 납품받으라고 협박을 한 사실이 있지요?”
피고인석에 앉은 조폭 세 명이 증인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 순간 증인으로 나온 여성은 마치 독사의 눈길 앞에서 겁을 먹고 몸이 얼어붙은 다람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혀, 협박이요? 그런 사실 없는데요.”
증인으로 나온 여성이 겁먹은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검사가 순진한 학생 같은 표정으로 다음 질문을 했다.
“증인이 경찰에 가서 저기 피고인들 몰래 진술을 한 조서를 보면 저 사람들이 업소를 찾아와 도끼 형님을 모르느냐고 협박을 하면서 겁을 주고 자기네들 술을 납품받으라고 했다고 적혀있는데 그런 말 한 게 사실이 아닌가요?”
증인의 얼굴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검사의 생각이 얕은 것 같았다. 조폭들이 없는 데서 그런 질문을 해야 했다. 진실을 위해서도 그렇고 증인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렇다. 전에 그 법원에서 증인이 법원 문을 나서자마자 칼에 맞아 죽은 사건도 있었다. 검찰이나 법원은 증인에 대해 특히 배려를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저, 저 협박은 받지 않았어요. 형사가 자기 마음대로 그렇게 쓴 것 같아요.”
증인으로 나온 여인은 법정 안에서도 무언의 협박을 받고 떨고 있었다. 뒷모습이 애처로웠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검사는 질문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당시 저 사람들한테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거예요?”
검사가 왜 그걸 묻는지 알 것 같았다. 법조문의 요건을 채우기 위해 증인에게서 ‘두려웠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싶은 것이다. 모범생으로 일등을 해왔던 검사나 판사들에게는 배당된 사건기록은 완벽한 정답을 써내야 할 하나의 문제로 생각될 수 있다. 피해자의 입장이나 그 심정은 그 다음이었다. 아니 기록만 보일 뿐 인간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두려움에 떠는 증인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한다.
“저는 두려움이 없었어요.”
그녀는 조폭들 쪽으로는 시선조차 돌리지 못했다. 증인은 자신이 살기 위해 조폭의 입맛에 맞는 거짓말을 해 주고 있었다. 검사의 질문이 끝나고 그 다음은 젊은 단독 판사가 증인에게 물었다.
“피고인들이 와서 한 말은 협박이 아니었고 그 말에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증인은 계속 피고인석에 앉은 조폭들 쪽 눈치를 보았다. 법에 걸리지 않도록 잘 말해 줬으니 해코지하지 말라고 사정하는 표정이었다. 그건 진실을 규명하는 법정이 아니었다. 선량한 국민을 보호하는 법치도 아니었다. 밑바닥 생활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나약한 검사와 그를 은근히 비웃는 조폭들의 법정 싸움이었다.
고통을 받아봐야 공감하고 용기를 수반하는 정의감이 나올 수 있다. 피해자인 증인에 대한 배려도 그렇다. 검사나 판사가 좀 더 여물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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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