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이 하위권으로 처지는 부진 속에 염경엽 SK 와이번스 감독은 결국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6월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 하루 전 경기가 비로 취소되는 바람에 SK와 두산 베어스가 더블헤더를 진행하는 날이었다. 1차전은 시작하자마자 난타전 양상으로 흘렀다. 1회초 두산이 먼저 3점을 냈지만 1회말 SK도 즉시 3점을 따라잡아 3-3 동점이 됐다. 문제는 SK가 2회초 곧바로 또 3점을 내줘 3-6으로 뒤지기 시작했다는 것. 염 감독은 2회초 두산의 마지막 타자 오재일이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되기 직전 더그아웃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SK 더그아웃은 순식간에 충격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코치들이 염 감독을 부축하고 의료진을 부르는 동안 선수들은 얼어붙은 채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3루 더그아웃에 있던 김태형 두산 감독과 강석천 두산 수석코치도 1루 쪽으로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그라운드로 나온 의료진은 곧바로 염 감독을 구급차에 싣고 인천 길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이송 직전 의식은 회복했지만 그 후 몇 시간 동안 온 야구계가 염 감독 걱정에 숨을 죽였다.
#감독 잡는 성적 스트레스, 염경엽도 견디지 못했다
염 감독은 응급실에서 X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을 비롯한 정밀검진을 받았다. 그 결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식사와 수면이 부족했고,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SK 관계자는 “병원 측에서 정확한 진단을 위해 입원 후 추가 검사를 받을 것을 권고했다. 감독님도 건강을 위해 입원을 결정했다”며 “SK 선수단은 감독님이 회복할 때까지 박경완 수석코치가 이끌 것”이라고 전했다. 또 염 감독의 상태에 대해선 “원활하게 대화를 하고 또렷하게 의식이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가족과 간단한 의사소통을 했다”며 “답답함과 저림 증세를 호소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성적 부진에 따른 압박감으로 여겨진다. 올 시즌 한 차례 10연패를 겪으면서 9위로 처진 SK는 더블헤더 전까지 다시 7연패 늪에 빠져 반등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하루에 2경기를 치러야 하는 이날, 첫 경기 1회부터 어렵게 동점을 이루고도 2회 다시 리드를 빼앗기자 염 감독이 순간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염 감독은 평소에도 식사량이 많지 않은 데다 최근에는 심한 불면증 증세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19일 고척 키움전에서도 9회말 더그아웃에서 미세하게 손을 떨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포착되기도 했다.
현직 프로야구 감독이 경기 도중 신경쇠약으로 쓰러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연합뉴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투수 문승원은 “감독님이 평상시와 다름없이 선수들을 대해주셨는데 경기 중 갑자기 쓰러지셔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까지 힘드신 상황인 줄 정말 몰랐다”며 “감독님이 의식을 찾으셨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빨리 쾌차하시길 빈다”고 안타까워했다.
SK는 더블헤더 1차전에서 6-14로 져 연패 수를 ‘8’까지 늘렸지만, 더블헤더 2차전에서는 7-0으로 완승해 마침내 9경기 만에 승리를 신고했다. 베테랑 선수들이 전방위로 활약한 덕분이다. 주장 최정은 8회말 공격에서 몸쪽 공을 피하지 않고 몸에 맞아 출루하는 투지를 보였고, 외야수 김강민은 3-0으로 앞선 6회초 1사 1·2루 위기서 두산 허경민의 안타성 타구를 몸을 날려 막아냈다.
선발 투수 문승원도 7이닝 동안 공 87개를 던지면서 승리 투수가 됐다. 문승원은 “반드시 2차전에선 승리를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운드에 올랐다”며 “다른 선수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경기에 임해 좋은 결과를 만든 것 같다”고 했다.
#모두 선망하는 프로야구 감독, 스트레스는 숙명
프로야구 감독은 거의 모든 야구인이 선망하는 자리다. 1년에 단 10명만 프로 지휘봉을 잡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당연히 그 빛 뒤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짙다. 업무는 과중하고 책임감은 막중하다. 늘 스트레스와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 요즘처럼 야구 인기가 높아진 시기라면 더 그렇다. “수억 원대에 이르는 감독 연봉의 절반은 스트레스 값”이라는 속설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그러나 프로 감독 지휘봉을 잡는 순간 스트레스는 숙명이 된다.
일시적인 스트레스도 아니다. 쉬지 않고 이어진다. 시즌 중에는 승패에 따라 일주일에 6일을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다. 매일 자신의 선택과 말에 대해 평가받고 책임도 져야 한다. 감독 10명 모두 함께 웃을 수도 없다. 한 감독이 웃는 순간 반드시 다른 한 감독은 울게 된다. 성공했을 때 얻는 찬사보다 실패했을 때 받는 비난이 훨씬 더 크다. 야구의 인기가 높아진 만큼 감독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더 커졌다. 대부분 감독이 “위장병과 불면증은 기본으로 달고 산다”고 털어 놓는다. 일부 감독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성적 앞에선 장사가 없다. 팀 성적이 안 좋으면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도 ‘영웅’에서 ‘역적’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마음 편히 술을 한잔하며 지인들과 애환을 나누기도 어렵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이라 자칫하면 극성팬들의 레이더에 걸려 괜히 욕만 더 먹는다. 무엇보다 정말 힘들 때는 주변의 위로조차 도움이 안 된다. 감독은 결국 혼자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고독한 자리다.
팀 성적이 좋다고 무조건 행복한 감독이 되는 것도 아니다. 호시탐탐 왕좌를 노리는 추격자들을 항상 신경 써야 한다.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성적에 늘 마음을 졸인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A 감독은 “남들이 들으면 욕할지 몰라도, 우승팀 감독의 스트레스도 엄청나다. 더 올라갈 곳 없이 계속 유지를 해야 하고, 2위만 해도 이전보다 못한 게 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눈앞의 1승에 신경 쓰면서 동시에 멀리 내다보기도 해야 하는 ‘모순’이 늘 따라다닌다. 시즌이 끝나면 전력을 재배치하고 다음 시즌을 구상하다 겨울이 훌쩍 간다. 물론 다음 시즌에도 계속 그 팀 감독을 맡는다는 전제하에만 가능하다. 성적을 내지 못한 감독은 1년 내내 스트레스만 받다 결국 물러나야 한다. 수년 전 팀을 4강으로 이끈 B 감독은 “팀 성적이 좋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 그렇지 않으면 가장 불행한 직업이 바로 프로야구 감독이다”며 “지금은 내가 행복한 감독이지만, 당장 몇 달 후에 얼마나 불행해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자리가 힘들다”고 고백했다.
팬들의 철퇴는 갈수록 과격해진다. 지금은 현장 밖에 있는 C 감독은 부임 직후 팀 성적이 곤두박질치면서 별일을 다 겪었다. 극성팬들이 감독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는 물론이고 집 전화번호까지 알아내 욕을 했다. 한번은 자녀의 이름과 학교, 학년과 반을 적은 문자메시지도 받았다. 아내가 “감독도 좋지만 사람 사는 게 먼저”라며 자진 사퇴를 권유했을 정도다. 다행히 팀이 다시 상승세를 탔고, 팬들의 비난은 환호로 바뀌었다. “그때 욕해서 미안하다”며 찾아와 큰절까지 하는 팬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좋을 때도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팀 성적이 조금만 안 좋아져도 언제 다시 화살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라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적은 팀 밖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감독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 중 하나는 프런트와 알력 싸움을 해야 할 때다. 필요한 부분을 지원해 주고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같은 프런트를 만난다면 감독의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가 줄어드는 셈이다. 반대로 현장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으면서 성적이나 경기 결과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우려는 프런트를 만나면 계약 기간 내내 고달파진다. 같은 팀인데 ‘내 편’은 아닌 상황이니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게 차라리 쉽다. 최근 한국 야구가 프런트 중심으로 바뀌고 있어 더 그렇다.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으로 고향 팀 사령탑을 맡았던 D 감독은 “나는 그래도 한 팀에 오래 있던 사람이라 프런트 직원들과 예전부터 친하고 속마음을 조금은 얘기할 수 있는 사이였다. 그런데 정말 감독이 되니 마음 편히 내 속을 다 털어놓기가 어렵더라”며 “잘될 때는 서로 좋으니까 괜찮지만 안 좋을 때는 팀에서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편하게 위로받을 수 없는 것 같다. 코치들이나 프런트도 감독과 생각이 다를 수 있고, 100% 터놓고 모든 걸 얘기할 수는 없는 위치인 것 같다”고 털어 놓았다. “억장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 같은 걸 받았지만, 겉으로 표현을 못하겠더라. 어딜 가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도 잘 안 되는 느낌이 들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스트레스는 산더미처럼 쌓여 가는데 한 번 덜어 내기가 참 어렵다. 프로야구 감독들은 오늘도 스트레스 사각지대 속에서 위태롭게 서 있다.
천하의 김성근도 못 피한 스트레스와의 전쟁 과거에는 실제로 스트레스와 전쟁에서 결국 패한 감독도 많았다. 롯데 자이언츠 사령탑이던 고 김명성 감독은 순위 싸움이 한창이던 2001년 7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승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연일 폭음과 줄담배가 이어졌고, 결국 급성 심근경색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1997년 6월에는 백인천 당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고혈압과 뇌출혈로 더그아웃을 비웠다.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그해 9월 3일 LG 트윈스와 더블헤더 제1경기를 마친 뒤 제2경기 지휘를 포기하고 자진 사퇴했다. 1999년 한화 이글스를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이희수 감독은 그해 중반부터 귀 뒷부분에 종양이 자라기 시작해 결국 이듬해 수술을 받았다. 건강상의 이유로 재계약도 하지 못했다. 2004년에는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이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원인은 모두 스트레스와 밀접하게 연관된 신경계통의 질병이었다. 김성근 전 한화 감독은 2016년 5월 허리 디스크로 인한 통증이 심해져 시즌 도중 수술대에 올랐다. 15일간 경기를 지휘하지 못하고 김광수 당시 수석코치에게 대행을 맡겼다. 김태형 두산 감독 역시 2017년 8월 게실염(대장벽에 생긴 작은 주머니 안에 장 내용물이 고여 발생하는 염증)으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 입원해 4일간 휴식을 취해야 했다. 이뿐만 아니다. 김경문 국가대표 감독도 NC 다이노스 감독 시절이던 2017년 7월 건강 문제로 더그아웃을 비웠다. KT 위즈와 주말 원정 3연전 첫 경기를 앞두고 구토 증세와 어지럼증이 심해져 병원 신세를 졌다. MRI와 혈액검사 결과 뇌하수체에서 직경 2cm 미만의 작은 선종이 발견됐고, 주치의는 “악성이 아닌 양성 종양이라 당장 외과 시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소견을 내놨다. 하지만 뇌하수체 호르몬 분비 기능에 이상이 생겼는지 여부를 추가 정밀 검진하기 위해 입원해야 했고, 전해질 수치가 저하되면서 구토 증세와 어지럼증이 생긴 것으로 분석됐다. 김 감독은 1주일 정도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면서 정상 수치를 회복한 뒤 퇴원했다. NC가 감독대행 체제로 경기를 치른 것은 창단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 야구계에선 김경문 감독의 건강 문제가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더그아웃에서 항상 그 누구보다 강한 존재감과 묵직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지도자라서다. 하지만 일부는 “그동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김 감독은 2004년 두산에 부임한 뒤 2011년 6월 중도 퇴진할 때까지 7년 반 동안 한 팀 감독을 맡았고, 2008년에는 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 감독까지 겸임하면서 한국의 전승 우승을 이끌었다. 휴식도 길지 않았다. 2개월 후 신생구단 NC의 초대 사령탑이 됐다. 2018년 8월 NC 감독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두 차례 재계약을 거쳐 쭉 1군 감독으로 활약했다. 십수년간 치열한 승부의 세계 한복판에서 버텼던 김 감독은 그때까지 건강 문제로 크게 탈이 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알음알음 누적된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결국 김 감독의 몸에 이상 신호를 보냈다. 국적이 다른 트레이 힐만 당시 SK 감독조차 “아무리 감독이라도 경기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며 그 고충에 공감하고 응원을 보냈다. 평소 구단 관계자에게 김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호감을 표현해 왔기에 더 그랬다. |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