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 사진=한국공동사진취재단
5월 중순부터 6월 현재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이 사이 미군은 한반도 작전권 내 공군 지휘관을 3명이나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태평양공군사령관, 제7공군사령관, 제8전투비행단장이 모두 폭격 전문가로 교체됐다. 5월 15일 취임한 태평양공군사령관 케네스 윌즈바흐 대장, 6월 12일 취임한 제7공군사령관 스캇 플라우스 중장, 6월 2일 취임한 제8전투비행단장 크리스 해먼드 대령은 한국 근무 경험과 폭격 전문가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6월 4일 김여정의 ‘말폭탄’이 터졌고, 6월 16일엔 한국 정부 예산으로 건설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됐다. 북한은 김여정 후속 담화를 인용해 추후 군사 행동에도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은 6월 17일 ‘1호 전투태세’를 준비했다. 이는 전쟁 직전 단계의 대비태세로 한국의 데프콘-Ⅱ와 같은 수준이다. 여기다 북한은 대남 삐라 1200만 장 살포와 대남 선전 방송 재개를 공언하며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지금까지 ‘남북 평화 기조’를 유지하던 한국 정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정부는 6월 16일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된 지 30여 분 만에 개성공단으로 공급하던 전력을 차단했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준공을 전후로 북한 쪽에 보내기 시작했던 전력 수급을 중단한 것이다. 국군은 고이 접어두었던 대북 방송 카드까지 만지작거렸다. 군은 북한의 대남 확성기 재가동에 대비해 대북 확성기 작동 여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확성기를 통한 대북 방송은 2018년 4월 23일 북한이 핵실험소를 폐기한 뒤 중단된 바 있다.
탈북민 출신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6월 24일 입장문을 통해 “북한엔 대북방송이 특효약”이라면서 “우리 군이 6월 23일 대북 확성기를 복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자마자 김정은이 군사행동을 보류한다고 했다”고 분석했다. 태 의원은 “대북방송이 무섭긴 한 모양”이라면서 “북에게 핵이 있다면 우리에겐 대북방송이 있었다”는 말로 대북방송의 위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과 군사 전문가들 시각은 달랐다. 한국 정부의 대북방송 재개 검토보다 미군 전략자산 총집합이라는 큰 파도가 북한을 물러서게 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군 장성 출신의 군사 전문가는 “미국이 사상 최대 규모 전력을 한반도에 집결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군사 행동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가운데 이뤄진 미군의 조치”라고 귀띔했다.
남중국해를 항행하는 미군 항공모함 레이건호. 사진=연합뉴스
그는 “이번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작전권 전개는 그야말로 북한 수뇌부가 ‘뜨끔’할 만한 움직임이었다”면서 “북한이 서둘러 군사행동 카드를 무른 것도 이런 미군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전문가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6월 4일 김여정 담화문 발표 이후 미군의 움직임은 혹시 모를 북한의 군사 도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6월 12일엔 탄도탄 추적함 로렌젠함이 일본 사세보를 출항해 15일 도쿄에 도착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비한 조치로 읽힌다.
6월 13일엔 전자전을 담당하는 전투기 VAQ-131이 미국 워싱턴주 아일랜드에서 일본 미사와 기지로 충원됐다. 같은 날 특수부대의 적진침투용 작전기인 ‘MC-130J 코만도-Ⅱ’도 오산을 거쳐 일본 규슈로 합류했다. 6월 15일 미군은 미국 루이지애나주 박스데일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제20폭격비행대 소속 폭격기 일부를 알래스카 에일슨 공군기지로 전진 배치했다.
미 해군 전략자산도 속속 한반도 작전권으로 합류했다. 6월 중순 전시 상황에 앞서 먼저 배치되는 사전배치선과 보급함 5척이 제주, 부산, 거제, 남해 등지에 전격 배치됐다. 여기다 미군 항공모함 11척 가운데 7척이 여차하면 한반도에 투입될 수 있는 작전권에 위치해 있다. 6월 16일과 17일엔 CIA(중앙정보국) 비밀 작전 수송기 ‘울프하운드’ 2기가 일본 요코타 기지와 가데나 기지에서 식별됐다.
6월 17일엔 미군이 동해상에서 북한의 전략잠수함을 타격하는 훈련을 공개했다. 이날 미 국방영상정보배포시스템은 ‘그라울러’라 불리는 전자전기 EA-18G와 ‘포세이돈’이라 불리는 해상 초계기 P-8A의 합동 훈련 장면을 공개했다. 미군은 6월 16일과 19일엔 ‘동해 진입 훈련’을 통해 북한 전략잠수함 출격을 원점 타격할 전략 폭격기가 스탠바이 상태라는 점을 부각했다.
중국 현지의 한 북한 소식통은 “미군의 한발 앞선 전략자산 전개가 북한으로선 상당히 곤혹스러웠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김여정 대신 김정은이 직접 나서서 군사 행동을 유보하는 모습은 최대한 피하고 싶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이 군사행동을 하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쪽은 중국”이라면서 “중국 입장에선 코앞에 미국 전략자산들이 전개돼 있는데 북한이 사고를 치는 시나리오는 최악”이라고 전했다. 그는 “김정은이 직접 군사 행동을 유보한 이면엔 중국 측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귀띔했다.
전자전에 특화된 미군 전략자산 그라울러 EA-18G.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북한 소식통은 “북한이 군사 행동을 예고해놓고, 이를 무르려면 명분이 필요하다”면서 “북한 2인자 김여정이 꺼낸 ‘군사행동 예고’ 카드를 무를 인물은 1인자 김정은밖에 없다”고 했다. 소식통은 “김여정을 대남 스피커로 내세운 김정은은 ‘군사행동 예고’ 이후 한국 여론과 미군의 움직임 등 다양한 정세를 면밀히 보고받았을 것”이라면서 “결국 강수를 뒀을 때 얻을 수 있는 정치·경제적 이익보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컸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군사평론가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대중 포위전략을 취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역동적인 전략자산 전개’가 이어지는 가운데 형태가 조금 바뀌었다”고 했다. 김대영 연구위원은 “미국이 좀 더 공격적으로 중국·러시아와의 분쟁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미로 읽히는 조치들”이라면서 “한반도 작전권에 미국 전략자산이 전개하는 것은 사실 80% 정도는 중국을 압박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중국 압박 차원의 전략 자산 전개에 오히려 북한이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면서 “한반도 가까운 곳에 미국 전략 자산이 많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여차하면 미국이 액션을 취할 수 있다’는 위협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군의 대북 압박과 관련해선 “일반적으로 지금까진 북한이 무슨 일을 벌이면 미군이 전략 자산을 전개했다”면서 “이번엔 미군이 미리 사전 조치를 취하면서 북한을 압박한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