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이희호 여사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2남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왼쪽)과 3남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종현 기자
지난 5월 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생전 머물던 서울 동교동 사저(감정가액 32억여 원)와 노벨평화상 상금 8억여 원을 두고 김홍업 이사장과 김홍걸 의원이 법적분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관련기사 형제간 아닌 재단과의 갈등? 한발 더 들어가본 DJ 아들들 유산 다툼).
김홍걸 의원은 6월 3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내막에 대해 속시원하게 해명하면 제가 잘못한 부분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겠지만 결국 집안에 누가 된다”며 “형제끼리 다투는 모습이 집안과 두 어른의 명예를 실추시킬까봐 구체적 입장문을 낼 생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도 “조만간 변호사를 통해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만 해명할지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6월 10일 열린 고 이희호 여사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서도 추도식 내내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 후 양측은 언론과 기자회견 등을 통해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김 의원 법률대리인인 조순열 변호사(법무법인 문무)는 6월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홍걸 의원은 이희호 여사가 남긴 모든 재산을 상속받을 유일한 합법적 상속인 지위가 있다”며 그간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히면서 이 여사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장에는 ‘동교동 자택을 김대중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소유권은 상속인인 김홍걸 의원에게 귀속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인출해간 노벨평화상 상금 8억 원의 행방에 대해서 조 변호사는 “상금 중 (상속세로) 1회분 세금으로 나갔다고 알고 있다”며 “상속세가 50%까지 가는데, 김홍걸 의원이 상속세 낼 돈이 다 없지 않느냐. 국세청과 얘기해 5회 분납을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고, 5회 분납 중 1회를 납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 의원 측 핵심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김 의원은 동교동 사저 등을 상속 받으며 상속세만 15억 원을 넘게 내야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8억 원이 사용됐을 수 있다”고 설명한 것과 비슷한 취지다. 김홍걸 의원은 지난 2월 유산에 대한 상속세로 추정되는 납세 담보로 동교동 사저 및 토지에 대해 근저당권을 설정하기도 했다. 채권최고액은 18억여 원에 달한다.
조순열 변호사는 “유언장은 이 여사 서거 3년 전 작성됐으나 후속절차를 밟지 않아 법적으로 무효가 됐다”면서도 “법적 효력을 떠나 여사님의 유지가 담겼다고 판단해 김 의원은 그 유지를 받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홍업 이사장 측은 즉각 반박했다. 김 이사장은 이틀 후인 6월 25일 입장문을 통해 “김홍걸이 자기 대리인들을 앞세워 거짓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보고 진실을 분명하게 밝혀야겠다는 마음에 입장문을 내게 됐다”며 “이희호 여사가 유언장에 ‘동교동 자택을 소유권 상속인인 김홍걸에게 귀속하도록 했다’는 문구는 유언장 내용에 없는 것을 조작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2017년 2월 1일 작성된 이희호 여사의 유언장. 사진=김홍업 이사장
김 이사장이 공개한 2017년 2월 1일자 유언장에는 “동교동 사저는 김대중·이희호기념관으로 사용한다”고만 적혀있다. 이어 “지자체 및 후원자가 매입해 기념관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매매대금 중 3분의 1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부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김홍일·홍업·홍걸에 균등하게 상속토록 한다”고 작성됐다.
노벨평화상 상금에 대해서도 김 이사장은 “노벨평화상 상금은 상속세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8억 원은 민주주의, 평화, 빈곤퇴치를 위한 목적사업 기금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노벨평화상 상금 통장과 도장은 내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이희호 여사 장례식 후 김홍걸이 은행에 가서 자신이 상속인이라고 주장하고 몰래 이 돈을 인출해 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유언장에는 “동교동 사저는 김대중·이희호기념관으로 사용한다”고만 명시돼 있다. 이희호 여사가 유언장에 동교동 사저 명의 소유권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김홍업 이사장은 통화에서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며 “(유언장을 작성한) 최재천 변호사가 당사자들 모두 잘 아는 사이니 쉽게 생각하고 간과한 것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김 이사장은 이번 분쟁이 형제간 문제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 말이다.
“이번 문제가 형제간 분쟁으로 그려져 김대중 전 대통령 명예가 실추돼 안타깝게 생각한다. 엄밀히 따지면 유증을 받는 당사자는 내가 아니라 김대중기념사업회다. 김대중기념사업회가 받아야 할 유산을 김홍걸 의원이 가로챈 것이다. (본인 명의의 입장문을 낸 것은) 김대중기념사업회가 직접 나서려하지 않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에 내가 직접 입장문을 낸 것이다.”
결국 김홍걸 의원과 재단법인 김대중기념사업회의 문제라는 게 김 이사장 생각이다.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권노갑 전 의원이고 김홍업 이사장은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 의원 측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사저와 돈을 맡긴다 해도 과연 이를 가지고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 의심스럽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뉴시스 인터뷰에서 “기념사업회를 2011년 권노갑 전 의원과 형 김홍업이 주도해 만들었는데 당시 어머니도 반대했다”며 “2012년 대선 당시 토론회 한 이후 아무런 활동이 없고, 정식 사무실도 없고, 유급 직원도 없고, 지난 3년간 이사회 했다는 말도 들은 적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김대중기념사업회는 동교동 사저에 주소지를 두고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매년 추모행사 2건과 장학사업인 전국대학생프리젠테이션 대회 등 총 3건의 사업만을 진행했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은 7123만 원에 당기순손실은 853만 원을 기록했다.
김홍업 이사장도 “김대중기념사업회가 재정적으로 열악해 활발한 활동을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사들이 십시일반 모아 운영 중”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양한 활동을 기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역시 재정상황이 풍족한 편은 아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이희호 여사 유언장 작성 당시 증인으로 참석한 김성재 전 장관이 이사장을 맡고 있어 이번 사건과 간접적으로 관련됐다 볼 수 있다. 지난해 말 자산총계는 9억 4815만 원이다. 당기순손실은 3157만 원이었다. 올해 예산계획에 따르면 수입이 11억 원인데, 전남과 목포 지자체의 출자출연금이 8억 5231만 원으로 76%에 달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사업에 대한 김홍걸 의원과 동교동계 인사들과의 이견이 이번 갈등으로 번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조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노벨평화상 상금은 김대중·이희호 기념사업을 위해서만 사용할 것이며, 동교동 자택을 김홍걸 명의로 상속 등기를 마친 뒤 김대중·이희호기념관으로 영구 보존하기 위해 기부를 포함한 여러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홍걸 의원은 김대중평화센터 및 김대중기념사업회와 별도로 또 하나의 법인 설립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5월 17일 김 의원은 언론을 통해 “사단법인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발족을 준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새 사업회의 이사장은 김 의원이 직접 맡을 예정이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측 인사 및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이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 측은 이 여사의 유언장 작성 과정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제기했다. 김 의원 측 관계자는 “당시 이희호 여사를 모셨던 사람은 이 여사가 유언장 내용에 대해 정확히 파악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성재 이사장 등이 알아서 했고, 이 여사는 잘 모르고 서명을 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 의원 역시 뉴시스 인터뷰에서 “(유언장 작성 후) 어머니에게 ‘유언장 봤어요?’라고 물어보니 그냥 ‘알았어요’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반면, 김홍업 이사장은 “김홍일(부인 윤 아무개 씨 대신 참석), 홍업, 홍걸 세 아들과 김성재 이사장, 최재천 변호사가 유언장에 이희호 여사가 직접 서명 날인하고 인감도장 찍은 것을 확인하고 합의서에 서명을 했다. 이제 와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