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7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 랜드마크 타워에서 열린 시그니엘 부산 그랜드 오픈 행사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가운데)이 참석해 내빈들과 호텔의 마스터키를 상징하는 골드카드를 단상에 마련된 홈에 꽂는 ‘골든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7일 호텔롯데의 프리미엄 브랜드 호텔 ‘시그니엘 부산’ 개관식에는 신동빈 회장과 그룹 핵심 임원진이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신 회장의 첫 공식행보다. 그간 대외활동을 자제하던 신 회장이 개관식에 참석하면서, 재계에서는 그룹 내 달라진 호텔사업 위상에 주목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신 회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호텔사업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며 “호텔사업을 그룹의 주요한 축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신동빈 회장은 지난 3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한국 중심이던 호텔사업을 세계로 확대하고, 1만 5000여 개 객실 수를 5년 뒤 3만 개로 늘리겠다”며 “오는 6월 미국 시애틀에 고급 호텔을 오픈할 계획이고 영국에도 검토 중이다. 일본에서도 적극적으로 호텔을 늘리겠다”고 언급했다.
신동빈 회장이 호텔사업 확대 계획을 밝힌 당시는 코로나19 사태로 이미 호텔업계 업황 악화가 현실화된 시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호텔업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63.5%, 숙박업은 55.8% 감소했다. 호텔롯데는 지난 2월 사실상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호텔롯데 임원진들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임금의 10%를 반납하기로 결정하고, 희망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가를 권장했다. ‘시그니엘 부산’ 개관식 이틀 뒤인 지난 6월 19일에도 호텔롯데의 명예퇴직제도 시행 소식이 전해졌다. 호텔롯데가 명예퇴직을 시행한 것은 2004년 이후 16년 만이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호텔롯데는 지난 1분기 영업손실 308억 7700만 원을 기록해 적자 전환했다. 사업부문별로 살펴보면 면세부문이 영업이익 42억 4800만 원으로 유일하게 적자를 면했고 호텔부문(영업손실 638억 2600만 원)과 월드부문(영업손실 166억 7900만 원), 리조트부문(영업손실 28억 7700만 원)은 모두 적자를 봤다. 특히 호텔부문의 경우 2015년 영업손실 349억 1800만 원으로 적자 전환한 이후 5년째 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호텔 계열사 지원이 본격화되고 있다. 롯데지주는 지난 6월 11일 555억 원을 투입해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이 보유한 롯데푸드 주식 15만 주를 매입했다. 호텔 계열사들의 지분을 매입해 유동성 확보를 지원한 셈이다.
신 회장이 이처럼 호텔부문에 힘을 싣는 배경은 ‘원 롯데’ 구상의 핵심인 호텔롯데 상장을 위해서다. 호텔롯데를 상장해 구주 지분을 희석하고 롯데지주와 합병하면 현재 롯데지주 위에 호텔롯데가 있는 옥상옥 구조를 탈피할 수 있다. 롯데지주 지분 11.04%를 보유 중인 호텔롯데는 이외에도 롯데물산과 롯데건설 등 다수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는 지분 19.07%를 보유한 일본롯데홀딩스다. 나머지 77%가량의 지분도 L투자회사 등 일본롯데 계열사가 차지하고 있다.
그간 호텔롯데 상장은 내외부의 변수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비자금 조성 의혹 검찰 수사와 신동빈 회장 구속, 중국의 사드 보복 등 악재로 상장 일정은 계속 미뤄졌다. 사회적 이슈 이외에도 호텔롯데 상장의 발목을 잡은 것은 또 있다. 매출의 편중화다. 호텔롯데 내부에 4개 사업부문이 있지만, 전체 매출 가운데 80% 이상이 면세사업부를 통해 발생한다. 이 때문에 2018년 인천공항점 부분 철수와 2019년 월드타워점 특허권 취소를 두고 논란이 일 때마다 호텔롯데 전체가 흔들렸다.
이 같은 매출 편중화를 탈피하고 호텔롯데 상장을 시도하기 위해 신동빈 회장이 호텔부문에 힘을 싣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호텔롯데 상장 이슈를 꾸준히 안고 왔다”며 “상장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없는 것도 있는 척 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업황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호텔사업을 강조해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호텔롯데 또한 내부적으로 호텔 사업 확대와 수익증대를 위한 자산경량화 전략을 진행해오고 있다. 소유주는 따로 두고 호텔은 경영만 맡는 위탁경영 방식으로 호텔사업을 확장 중이다. 호텔롯데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자산경량화 위주의 성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며 “호텔 개발 단계부터 참여하는 직접투자가 아니라 위탁경영 방식으로 운영해 부채를 줄이고 수익성을 증대하는 한편, 양적 확대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부산 엘시티에 오픈한 ‘시그니엘 부산’ 또한 엘시티PFV에 임차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엘시티PFV 내부 문건에 따르면 롯데호텔은 2013년 1월 엘시티PFV와 임차확약을 체결했다. 임대차기간은 20년, 최소임대료는 최초 3년간 연 110억 원이다. 문건에는 호텔 객실 예상매출액은 229억 7500만 원, 부대시설 매출액은 414억 5100만 원으로 기록됐다.
업계에서는 호텔롯데가 시그니엘 부산 개관을 통해 호텔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어볼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한다. 호텔업계 다른 관계자는 “시그니엘 부산의 경우 엘시티에 위치한 만큼, 거주자를 대상으로 식음 영업만 잘해도 이익을 낼 수 있다”며 “롯데월드타워 내 시그니엘 서울을 운영하며 거주자들의 소비패턴을 파악해 자신감이 붙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