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던 운전석 사이로 보이는 차량 내부는 어지러웠다. 머리카락과 먼지, 양주병과 동그랗게 말린 장갑이 곳곳에 떨어져 있었다. 뒷좌석에서 점처럼 찍힌 혈흔이 보였다. 점은 닫힌 뒷문 틈 사이로 흘렀다. 문을 열어보니 바닥엔 슬리퍼와 노란색 테이프, 그리고 피가 흥건한 모난 돌이 보였다.
돌에서 시작된 혈흔은 낙동강 갈대숲까지 길게 이어졌다. 그 빨간 선을 따라가다 보면 차갑게 식은 여성이 누워있다. 두 팔은 머리 위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웃옷은 목까지 말려 올라갔다. 오른쪽 머리가 심하게 함몰돼 있었다. 누군가 그녀의 머리를 강하게 내려쳤고, 이곳까지 끌고 온 뒤 달아났다(1990년 1월 4일 부산 북부경찰서 ‘엄궁동-낙동강변 살인사건’ 현장검증조서 재구성).
1990년 1월 4일 부산 북부경찰서가 그린 사건 현장 약도. 사진=수사기록
#지워졌던 수사기록 드러나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초동수사는 당시 관할이던 부산 북부경찰서가 담당했다. 사건현장에서 800m 떨어진 엄궁동파출소에 수사본부를 두고 형사계, 부산시경찰국이 함께 수사했으나 용의자를 찾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편철했다. 그런데 1년 10개월 뒤인 1991년 11월, 부산 사하경찰서는 미제사건의 범인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낙동강변 2인조였다.
29년 후인 지난 6월 25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형사1부 이흥구 부장판사) 두 번째 증인신문에는 당시 부산 북부경찰서 경찰관 3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번 재심 과정에서 사하경찰서는 살인사건의 증거를 조작하거나 허위로 작성해 2인조를 범인으로 몰아세웠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북부경찰서의 수사기록은 사하경찰서에서 범인이 ‘만들어지기’ 1년 전 작성됐다. ‘그날’의 진실에 보다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번 북부경찰서 경찰관들의 증인신문은 단순히 초동수사 과정과 결과를 묻고 사하경찰서의 조작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낙동강변 2인조 사건을 대리하는 박준영 변호사는 사하경찰서의 사건 조작에 북부경찰서가 깊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이날 법정에서 처음 제기했다.
당초 2017년 재심 청구 시점은 물론 2년 뒤인 2019년 대검 진상조사단의 재조사 단계까지만 해도 북부경찰서에 대해 제기된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증거 수집과 용의자 확보에 실패한 부실했던 초동수사 △살인사건임에도 사하경찰서로 전달된 사건기록이 129쪽에 불과했던 점이다. 이마저도 북부경찰서의 문제보다는 사하경찰서에서 낙동강변 2인조를 범인으로 짜맞추기 위해 증거와 기록을 고의로 누락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더 실렸다.
북부경찰서의 사건 조작 개입 의혹은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신문기일과 올해 본안 재판 과정에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앞서 사하경찰서 경찰관들이 증인신문을 받는 과정에서 그동안 유지했던 주장과 진술들이 하나둘씩 무너지면서 허점이 발견됐다. 2019년 대검찰청 산하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확보한 수사기록 컬러본에서 흐릿하게 지워졌던 내용들이 드러나면서 이 내용은 더욱 구체화됐다.
#“기억나지 않는다”
북부경찰서에서 초동수사를 담당하고 앞서의 현장검증 조서를 작성한 김 아무개 씨(당시 경장)는 1991년 11월 낙동강변 2인조가 사하경찰서에서 검거된 이후 경찰은 물론 검찰 수사, 이어진 재판에 증인으로도 출석하는 등 여러 차례 협조했다. 특히 “사하경찰서가 진행한 낙동강변 2인조의 현장검증에도 참석해 범인들이 피해자가 누워있던 자리를 정확히 지목하는 것을 봤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낙동강변 2인조가 범인이라는 사하경찰서 수사결과에 힘을 보태는 진술이다.
김 씨는 당시 범행 도구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진술을 했다. 역시 검찰과 법정에서 초동수사 당시 ‘피묻은 부러진 각목’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사하경찰서가 “피해자는 낙동강변 2인조로부터 각목에 맞아 숨졌다”는 수사결과를 내린 이후에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김 씨가 사건 발생 직후 작성한 현장검증 조서를 보면, 각목이란 단어는 한 차례도 나오지 않는다. 그는 현장검증 조서에 차량 내외부 상태부터 혈흔의 개수, 바닥에 떨어진 슬리퍼와 테이프 등 유류품과 그 물품들의 거리까지 꼼꼼히 기재했다.
부산 북부경찰서 초동수사 당시 촬영된 사건 현장의 로얄 프린스. 사진=수사기록
김 씨는 이번 재심 재판 증인신문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대부분의 답변을 대신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사건 자체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박준영 변호사는 “본인이 직접 초동수사한 사건이고, 범인을 잡지 못했던 사건이다. 다른 경찰서에서 검거한 이후 현장검증에 참여해 범행 재연도 지켜봤고, 검찰과 법정에서 증언까지 했는데도 기억이 안 나는가”라고 묻자 그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다만 ‘부러진 각목’에 대해서는 석연치 않은 대답을 했다. 그는 각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크기는 잘 모르겠다. 나무 받침대가 피 묻어 있던 게 확실하다. 현장에서 발견했다. 왜 검증조서나 유류품 목록에 없는지는 기억 안 난다. 사진은 세세하게 찍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가 “현장검증 사진에는 각목 사진이 없다. 돌만 있다. 정확히 진술하는 게 맞느냐”고 되묻자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낙동강변 2인조 검거 이후 현장검증에 참여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오락가락한 대답을 했다. 그는 “다른 경찰서에서 진행하는 수사에 참여한 일도 없고, 할 이유도 없다”고 대답했다가, 변호인이 그가 현장검증에 참여했다는 내용이 담긴 과거 수사기록을 제시하면서 재차 질문하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검찰도 “그런 일 자체가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기억나지 않는 것인지 정확히 말해달라”고 하자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사건에 관계된 경찰 관계자들의 인사기록카드를 종합하면, 사하경찰서 경찰관들과 김 씨는 1982년부터 1989년까지 부산 중부경찰서에서 함께 근무했다. 6월 1일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관과 같은 사례다(관련기사 [낙동강변 살인사건-24] “X팔려서 신고 안해” 당당한 ‘조작 의혹’ 경찰관).
지난해 대검 진상조사단이 김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하경찰서 경찰관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김 씨는 “사하경찰서 관계자들은 아무도 모른다. 형사과장만 상사로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번 재심 법정에서 김 씨는 “사하경찰서의 한 경찰관을 알고 지냈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사하경찰서 경찰관은 낙동강변 2인조를 직접 검거하고 사건 수사를 주도적으로 했던 인물이었다.
한편 증인으로 출석한 다른 두 명의 북부경찰서 경찰관들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한 명은 숨진 피해자와 함께 있던 또 다른 피해자인 남성의 최초 진술을 받았던 경찰관이고, 다른 한 명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 등을 의뢰하고 결과 보고서를 작성했다. 다만 이들은 수사본부가 차려진 이후 본부장의 지시대로 업무 분담을 했고, 2개월가량의 수사를 하고 강력계 형사들에게 인계한 이후에는 사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