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의 리그 우승에 리버풀 팬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클롭 감독이 “안전하게 축하해달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사진=연합뉴스
#리버풀의 우승이 감동을 준 이유
이번 2019-2020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쟁은 다소 김이 빠진 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승 직전까지 많은 눈길이 쏠렸고 열광적 반응이 이어지는 이유는 그들의 특별한 역사 때문이다. 클롭 감독은 “케니 달글리시와 스티븐 제라드를 위한 우승”이라며 두 사람을 언급했다. 이들은 리버풀의 역사에서 너무도 특별한 인물들이다.
달글리시는 1977년부터 선수로 1985년부터는 감독으로 리버풀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다. 이 기간 동안 들어 올린 리그 우승 트로피가 8개에 달한다. 하지만 달글리시는 단순히 빼어난 성적만으로 리버풀 팬들에게 존경받는 것이 아니다. 그는 리버풀의 상처 ‘힐스버러 참사(경기장 내 사고로 96명의 리버풀 팬이 사망한 사건)’를 겪었다. 당시 그는 팀의 감독직을 수행하면서도 유족들을 직접 찾아 위로를 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결국 사건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며 팀을 떠났다.
1980년대에만 5회 우승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하던 리버풀은 1989년 그 사건 이후 날개가 꺾였다. 달글리시의 마지막 우승(1990년) 이후 더 이상 리그 트로피를 들지 못했다. 오랜 기간 우승에 번번이 실패한 리버풀을 상징하는 인물은 제라드였다. 제라드는 거듭된 우승 실패로 많은 스타들이 팀을 떠나는 와중에도 끝까지 남는 ‘의리’를 보였다. 1989년 유스팀에 입단해 2015년까지 헌신했다. 24세부터는 비교적 어린 나이로 주장에 임명돼 팀을 이끌었다. 컵대회에선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리그에서도 우승을 눈앞에 둔 시기도 있었지만 번번이 불운에 미끄러져 팬들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았다.
직전 시즌(2018-2019)의 상황이 리버풀의 우승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기도 했다. 17경기 무패행진을 이어갔고 마지막 9경기에서는 전승을 거두며 30승 7무 1패의 빼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준우승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시즌 리버풀은 그간의 한을 풀듯 7경기를 남겨둔 시점에 우승을 확정지었다.
리버풀의 30년 만의 우승을 일궈낸 위르겐 클롭 감독은 눈물과 함께 소감을 남겨 화제를 낳았다. 사진=스카이스포츠 유튜브 화면 캡처
#박지성 허탈하게 만든 맨시티 우승
리버풀 외에도 프리미어리그에는 특별한 우승으로 남은 기록들이 있다. 2011-2012시즌 우승팀 맨체스터시티는 극적인 역전승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도 우승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맨시티는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승점에서 동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골득실에서 맨시티가 앞섰다.
리그 최종전 상대는 퀸즈파크레인저스(QPR)였다.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 나갔지만 후반 내리 2골을 내줘 패색이 짙었다. 그 사이 맨유는 1-0 승리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모두 맨유의 우승을 예감한 순간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맨시티 공격수 에딘 제코와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골이 연달아 터지며 경기를 뒤집으며 맨시티가 우승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1968년 이후 44년 만의 리그 우승이었다. 최종전에서 승리했음에도 우승을 빼앗겨 허탈한 표정을 짓던 맨유 소속 박지성의 얼굴 때문에 국내 팬들에게 더욱 기억에 남는 장면이기도 했다.
2012년 맨시티의 우승은 지역 라이벌 맨유를 끌어내렸기에 더욱 극적인 일로 남는다. 사진=연합뉴스
#‘갈락티코’의 아이러니, 해체 후 들어올린 트로피
10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스페인의 명문 구단으로 자리해온 레알 마드리드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계기는 ‘갈락티코 정책’이다. 세계 최고 스타선수들을 끌어 모아 ‘은하수(스페인어로 갈락티코)’를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루이스 피구,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데이비드 베컴이 1년 간격으로 레알 유니폼을 차례로 입었다.
전 세계 눈길이 마드리드로 쏠렸고 구단은 막대한 금전적 수익을 거뒀다. 하지만 경기장에서는 낙제점을 받았다. 게임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선수단에 힘입어 우승이 자연스레 따라올 줄 알았지만 2003년 이후 3년간 ‘무관’에 그쳤다. 성적이 신통치 않자 구단은 조급증을 냈고 3년간 5명의 감독이 잘려 나갔다.
레알이 무관의 종지부를 찍은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타 군단이 해체하면서였다. 2006-2007시즌을 앞두고 갈락티코를 상징하던 지단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시즌 중에는 주전에서 밀린 ‘황제’ 호나우두가 팀을 떠났다. 베컴도 감독의 눈 밖에 나면서 시즌 후 LA 갤럭시로 떠나는 것이 확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긴 인물은 베컴이었다. 한때 ‘한물갔다’는 비판을 받으며 주전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베컴은 결국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마드리드 생활을 리그 우승과 함께 마무리지었다.
#분데스리가 문화 바꾼 ‘4분 챔피언’ 사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극적인 우승은 2000-2001년으로 꼽힌다. 리그 최종전까지 우승을 다툰 팀은 바이에른 뮌헨과 샬케04였다.
최종전 상황은 샬케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이들이 승리하며 시즌을 마무리 짓는 사이 뮌헨은 정규 시간 막판 상대에게 골을 허용하며 0-1로 끌려갔다. 이대로라면 샬케가 리그 우승을 거머쥐는 상황이었다. 샬케 경기장엔 이미 팬들이 잔디 위로 쏟아져 나와 우승을 자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추가시간 4분이 흐른 시점, 반전이 만들어졌다. 뮌헨이 극적인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샬케에 다시 승점을 앞서게 되면서 우승은 뮌헨에 돌아갔다.
이 일로 샬케는 ‘4분 챔피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우승 확정 당시 코너킥 깃발을 뽑아들며 격한 세리머니를 펼친 뮌헨 골키퍼 올리버 칸은 샬케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 중 한 명이 됐다. 한편, 4분 챔피언 사건은 다른 리그에 비해 분데스리가가 비교적 추가 시간을 짧게 적용하는 계기가 됐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