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 왼쪽부터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문재인 대통령,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사진=청와대 제공
21대 국회 개원 이틀 전인 5월 28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청와대에서 회동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는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협치를 약속하며 함께 웃었다. 그러나 그 뒤로 여야 원내대표가 함께 웃는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6월 5일 공식 개원한 뒤부터 21대 국회는 원구성과 정부가 제출한 3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심의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다. 개원 전 그들이 다짐했던 협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번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던 여야는 이전 국회의 구태를 답습하기 시작했다.
먼저 21대 국회 임기 시작 한 달이 다 돼서야 원구성 이슈가 일단락됐다. 6월 초부터 정가에서 제기되던 ‘민주당 상임위원장 싹쓸이 가능성’은 현실이 됐다. 6월 26일부터 29일까지 여야는 마라톤 회의를 이어갔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원구성 협상은 최종 결렬됐고, 더불어민주당은 정보위원회를 제외한 17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가는 방안으로 원구성을 마무리 지었다. 당 하나가 단독으로 상임위원장 직을 독식한 건 제12대 국회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원구성을 마무리한 21대 국회는 또 다른 산을 앞두고 있었다. 바로 3차 추경이다. 3차 추경은 정부가 6월 4일 국회에 제출한 안이다. 정부 제출안 규모는 35조 3000억 원 수준으로 단일 추경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민주당은 원구성이 완료되자마자 추경안 심의에 박차를 가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비롯한 16개 상임위는 6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전체 회의를 통해 소관 부처별 3차 추경안을 의결했다. 상임위 회의에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주축으로 심의받은 상임위 의결안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어갔다.
그 결과 35조 원 규모 기존 정부 추경안은 38조 4300억 원 규모로 증액됐다. 국회 예비 심의 과정서 추경안 몸집이 3조 원가량 불어난 것이다. 대부분 상임위는 1~2시간 만에 추경안 심사를 마쳤다. 이를 두고 ‘추경안 졸속 심사 논란’이 불거졌다.
국회 본회의장.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미래통합당을 제외한 군소야당 일각에서도 여당의 단독 드라이브에 불만을 공공연히 제기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6월 29일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본회의 직후 ‘기재위를 개의하고 즉시 3차 추경안을 처리한다’고 문자로 통보받았다”면서 “예산안 보냈으니 알아서 살펴보고 오고 정부 여당은 밀어붙일 테니 따라 오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장 의원은 “예산 심의가 아닌 통과 목적의 상임위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면서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원구성을 단독으로 마친 더불어민주당의 강력한 ‘국정 운영 드라이브’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추경안 조정소위원회가 열리기 시작한 7월 1일, 공룡여당을 ‘폭주기관차’에 비유하며 작심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집권 세력은 지난 월요일(6월 29일) 17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하고 원구성 완료를 선언했다”면서 “어제(6월 30일) 하루 각 상임위별로 부처 예산 심사를 1~2시간 안에 뚝딱 끝냈다”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예산 심사는 여당 단독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주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예결위 심사 기한을 1주일 이상 늘려 35조 원 예산을 야당과 함께 검토하자’는 우리 제안을 거부했다”면서 “국회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얘기한 ‘통제받지 않은 폭주기관차’가 돼 버렸다”고 꼬집었다.
국회의사당. 사진=박은숙 기자
여야 극한 대립으로 21대 초선 의원들은 존재감을 발휘할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 초선은 총 151명으로 국회의원 전체의 과반이 넘는다. 초선 의원들은 국회 개원 전부터 스터디그룹 등을 통해 정책 및 입법 활동을 준비해 왔다. 하지만 상임위 운영이 차질을 빚음에 따라 초선들이 목소리를 내기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들은 당의 연이은 보이콧으로 얼굴을 비추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원구성이 여당 단독으로 이뤄지면서 초선들의 상임위 배치가 적재적소에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에선 “원구성에 있어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초선 의원들이 자신의 전문분야와 거리가 먼 상임위에 배치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초선들의 활약이 기대됐던 21대 국회였지만,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셈이다.
21대 국회에서 법안 발의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는 점도 눈길을 모은다. 6월 30일 기준 21대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수는 총 1247건이다. 의원 1인당 평균 4건 이상을 발의한 것이다. 20대 국회 임기 시작 이후 한 달(5월 30일~6월 30일) 동안 발의한 법안은 632건이었고, 19대 국회는 409건이었다. 18대 국회는 120건, 17대 국회 113건, 16대 국회 57건이었다.
한 베테랑 보좌진은 “최대한 많은 법안을 발의해 성과를 낸 것처럼 보여주는 ‘전시행정’이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점점 유행이 되어가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한 의원도 “법안을 일단 많이 발의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본다”면서도 “법을 내기만 하면 뭐하느냐. 통과가 돼야지. 좋은 법안, 민생에 시급한 법안 등이 통과가 불발돼 폐기된 사례가 너무나 많다”고 꼬집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21대 국회가 ‘일하는 국회’를 표방하며 출범했지만,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혼란스러워 하며 표류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했다. 채 연구위원은 “국회가 일을 하려면 토론이 필요하다”면서 “여야 의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해 협의안을 도출해야 하는데, 토론보다 당론이 앞서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채 연구위원은 “원외에 있는 ‘원로 출신’ 당 대표들이 당론으로 현역 의원들을 옥죄고 있는데, 당론의 색이 짙어지면 토론은 이뤄질 수 없다”면서 “자유로운 토론, 교차 투표 등 의사결정이 의원총회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원외 당 조직이 당론으로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놓고 일사불란하게 일처리를 하려는 경우가 잦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태껏 거의 모든 국회가 ‘일하는 국회’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지만, 결과는 미미했다”면서 “원인 진단이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론보다 토론이 활성화 돼야 여야가 균형을 맞춰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