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9일 한국투자증권 자비스팝펀딩·헤이스팅스팝펀딩 환매연체 피해자 대책위는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투자증권과 자비스자산운용·헤이스팅스자산운용, 팝펀딩 관계자 등 6명을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사진=허일권 기자
#금감원에 이어 형사고소까지
지난 6월 29일 한국투자증권 자비스팝펀딩·헤이스팅스팝펀딩 환매연체 피해자 대책위원회는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투자증권과 자비스자산운용·헤이스팅스자산운용, 팝펀딩 관계자 등을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한누리가 피해 투자자 89명을 대리해 재판에 나선다. 앞서 지난 5월 20일 대책위가 금감원에 펀드를 판매한 한국투자증권의 불완전 판매 및 운용사와의 공모 여부 등을 조사해달라고 진정서를 제출한 지 한 달여 만에 법정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피해자들은 2019년 6월부터 11월까지 한국투자증권을 통해 펀드에 가입했으나 총 500억여 원에 달하는 손실을 떠안게 됐다고 호소했다.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한 자비스팝펀딩·헤이스팅스팝펀딩의 만기일이 몇 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환매가 중단된 상황이다. 자비스팝펀딩홈쇼핑벤더 제5~6호는 각각 올해 1월 21일, 2월 24일 만기였다. 헤이스팅스더드림팝펀딩 4호는 3월이 만기였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총 1072억 원의 팝펀딩 관련 상품을 판매해 640억 원을 상환됐으며 350여억 원이 환매 중단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날 시위에 나선 피해자들은 “투자제안서 등에 설명한 대출채권의 일부 차주 명단과 차주의 대출상환 이력이 허위였고 홈쇼핑 방송과 계약하지 않은 업체들이 차주에 포함됐다”며 “담보 확보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 것과 달리 부실 대출, 담보물 횡령 등으로 인해 가입 당시 제시한 수준의 담보가 확보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5월 기준 팝펀딩의 대출액 연체율이 1.09%라고 설명했으나 이는 조작된 수치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투자증권 프라이빗뱅커(PB)들이 피해자들에게 2018년 3월부터 많은 검토와 시뮬레이션을 거쳐 팝펀딩을 만들었고 본사 상품·리스크 부서로부터 4번의 걸친 혹독한 점검을 받았다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금융위원장이 혁신 사례로 소개한 팝펀딩
팝펀딩은 홈쇼핑·오픈마켓 등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상품 등을 담보로 투자자들이 모은 돈을 빌릴 수 있는 동산 담보 대출 상품이다. 기존의 금융 대출이나 투자와 달리 금융기관 등을 거치지 않고 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것이다. 팝펀딩을 개인과 개인 간의 거래 P2P(Peer to Peer)라 부르는 이유다.
정부는 팝펀딩을 극찬했다. 지난해 11월 26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파주에 있는 팝펀딩 물류창고를 방문해 팝펀딩과 같은 동산금융 혁신 사례가 탄생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팝펀딩이 기존 금융권의 부동산 담보 중심 기업 대출 틀을 벗어나 정부의 정책 방향과 일맥상통한다고 봤기 때문이다(관련기사 ‘칭찬할 땐 언제고…’ 10조 시장 P2P 업계 ‘온투법’ 공포 까닭).
앞서 지난해 3월 금융위는 팝펀딩을 ‘지정 대리인’으로 선정했다. 지정 대리인 제도는 금융회사의 핵심 금융 서비스를 신생 핀테크(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 기업이 최장 2년간 위탁받아 대신 수행하는 것이다. 같은 해 11월 기업은행은 팝펀딩과 손잡고 ‘이커머스 전용 동산 담보 연계 대출’ 상품을 출시했다. 이는 팝펀딩이 온라인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중소기업의 재고 자산을 평가하고 보관하는 업무를 맡고 기업은행이 총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1곳당 최대 5억 원씩 500억 원을 지원하는 정책 대출 상품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금감원은 팝펀딩의 대출 취급 실태를 검사해 사기 혐의를 포착했고 올해 2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조사 결과, 만기 때마다 다른 펀드의 투자금으로 돌려막고 펀드 자금을 유용한 정황을 포착했다.
금감원 조사 이후 일부 업체의 대출이 연체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3.08%이었던 팝펀딩 연체율이 12월에는 16.91%로 증가했다. 이는 관련 펀드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환매중단이 계속 발생했다. 결국 올해 6월 기준 대출 잔액이 1289억 원에 연체율은 96.58%에 달한다. 금감원의 조사로 인해 자금 돌려막기가 어려워지자 지금껏 감춰온 부실이 드러난 셈이다.
실제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팝펀딩소셜대부(주)의 재무건전성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지난해 당기순손실이 1006만 원으로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부분 자본잠식 상태로 지난해 말 기준 보유 현금은 84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외부 회계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 길인은 팝펀딩이 작성한 재무제표의 근거 자료가 부실해 이를 믿을 수 없다며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한투 팝펀딩 부실 정말 몰랐을까?
대책위 측은 펀드의 설계와 발행, 운용까지 한국투자증권과 자비스자산운용·헤이스팅스자산운용, 팝펀딩이 범죄 행위를 공모하고 방조했다고 주장했다. 즉 한국투자증권이 팝펀딩의 부실 가능성을 미리 알고서 판매했다는 것이다. 이날 시위에 나선 피해자들은 “상품·리스크 부서 직원이 파주·용인에 있는 팝펀딩 동산담보물 보관 자체 창고 등을 직접 방문해 검사했다고 했지만, 담보물 확보와 관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며 “전 지점장이 팝펀딩과 NH투자증권과 함께 상품을 만들고 검토했다고 문자를 보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실제로 한국투자증권과 자비스자산운용·헤이스팅스자산운용, 팝펀딩의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헤이스팅스자산운용은 한국투자증권의 전 직원들이 2017년 5월 만든 회사다. 2018년 3월 팝펀딩과 함께 동산 대출 채권펀드를 선보이면서 사모펀드 시장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헤이스팅스대출채권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제1호’를 100억 원 규모로 설정해 판매했다. 이후 ‘헤이스팅스더드림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제1호’, ‘헤이스팅스대출채권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제2호’ 등 5개 펀드를 330억 원에 판매했다.
팝펀딩은 헤이스팅스자산운용과의 협업이 성공하자 규모를 확대했다. 아이리스자산운용, 자비스자산운용, 하이자산운용 등과 함께 동산 대출 채권펀드를 선보였다. 이후 한국투자증권이 지난해 3월부터 자비스자산운용과 헤이스팅스자산운용의 팝펀딩을 판매했고 현재 대부분 환매 중단돼 대규모 손실로 이어질 상황이다.
구현주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한국투자증권이 투자자들에게 펀드를 속여서 판매한 것뿐만 아니라 자산운용사, 팝펀딩과 함께 공모했을 가능성이 있어서 검찰의 힘을 빌려 진실을 밝히고 사기와 계약 착오를 입증하기 위해서 고소에 이르게 됐다”며 “증거인멸을 막고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빠른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사실관계가 나오기 전까지 기다려봐야 될 것 같다”며 “고객들의 투자자금 회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