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가 6월 29일 강서구 본사에서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 관련 기자회견 후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유상 경영본부장, 최 대표, 근로자대표. 이스타항공의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자신의 가족이 이스타홀딩스를 통해 소유한 이스타항공의 지분을 모두 회사 측에 헌납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이스타항공 ‘깜짝 발표’ 효과는?
인수 계약 종료일이던 지난 6월 29일 이스타항공은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편법 증여 의혹이 증폭된 데다, 임금체불 문제 등으로 제주항공의 인수 작업이 사실상 중단된 시점이었다. 이상직 의원은 김유상 이스타항공 전무가 대독한 입장문을 통해 “창업자로서 제 가족들이 이스타홀딩스를 통해 소유하고 있는 이스타항공 지분 모두를 회사 측에 헌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고 김 전무는 “이스타홀딩스가 보유한 이스타항공 지분 38.6%를 헌납해 매각 차액을 회사가 가져가게 돌리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스타항공 경영진은 “협상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며 제주항공의 변화를 촉구했다.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이사는 성명서를 통해 “현재 이스타항공 어려움의 일차적 책임은 저희에게 있지만, 제주항공 역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며 “M&A 진행에 따라 이스타항공은 정부 지원을 받을 자격도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타항공이 M&A를 선택하며 놓치게 된 정부의 금융지원 기회에 대해 언급하며 제주항공 책임론을 꺼내든 셈이다.
KDB산업은행은 지난 2월 저비용항공사(LCC)들에 최대 3000억 원의 긴급융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재무상태를 놓고 봤을 때 1순위로 꼽혔던 이스타항공은 자금지원 대출 심사에서 탈락했다. 대신 산은이 수출입은행과 함께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는 제주항공에 신디케이트론 형식으로 인수자금 170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스타항공은 인수 계약이 성사돼야 정부 지원을 받을 길이 열리는 것.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6월 29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M&A가 종결되지 않으면 정책금융을 지원할 일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 최종구 대표는 질의응답에서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의 셧다운(전면 운항중단)을 종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관련 내용은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딜이 마무리된 상황이 아니라 조심스럽다”고 답변했다. 앞서 이스타항공은 “구조조정을 해야 기업결합승인이 쉬울 것이라며 제주항공이 셧다운을 종용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이스타항공 노조 역시 이스타항공이 정부가 휴업‧휴직급여의 최대 90%를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지 않고 셧다운과 구조조정을 단행한 배경에 제주항공의 요구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제주항공은 “계약 완료 전에는 경영에 관여할 권리가 없다”는 답변만을 반복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이번 기자회견으로 제주항공에 딜 클로징을 직접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6월 임시주총을 소집했던 것보다 압박 강도를 높였다. 이스타항공은 6월 26일 임시주총을 소집하며 제주항공 측에 이사 후보자 명단 등을 요청했다. 계약상 의무사항으로 계약 종결 전 임시주총을 소집하고, 제주항공 측이 추천하는 후보자를 신임 이사‧감사로 선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제주항공 측은 “딜 클로징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후보자 명단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스타항공은 7월 초 임시주총을 재소집할 계획이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의 긴급기자회견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기자회견을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들었고, 현재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 이스타항공 경영진의 딜 클로징 촉구에 대해서는 “체불임금 문제는 선결 조건이 아니라 당연히 이스타항공에서 이행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이 요구한 타이이스타젯에 대한 지급 보증건을 비롯한 선결 조건 이행에 대해 “문제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제주항공 측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관련기사 ‘연결고리’ 불쑥불쑥…이스타항공과 타이이스타젯 수상한 관계).
이스타항공은 앞으로 제주항공의 책임론을 더욱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스타항공 고위 관계자는 “일각에서 오너일가가 얻는다고 주장하는 매각 대금도 딜 완료 이후의 이야기”라며 “재무상태가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계약이 엎어질 경우 이스타항공은 파산을 피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 “그간 제기된 여러 의혹에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이유는 딜에 악영향을 끼칠까 우려했기 때문”이라며 “제주항공 측이 가격을 또 낮추거나 빠져나갈 수 있는 명분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이종현 기자
#직접 등판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시계제로 상태인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지연 사태를 두고는 채권단 대표인 산업은행이 직접 나섰다. 시장에서는 6월 25일 이동걸 산은 회장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회동으로 인수 협상이 새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동걸 회장은 6월 17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60년대 연애도 아니고 무슨 편지를 하느냐”며 현산 측의 재협상 서면 논의 제안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또 기자간담회 직후 배포한 ‘HDC현산 보도자료 관련 참고자료’를 통해 현산의 재협상 요구 근거를 구체적으로 반박했다. 이 회장과 산은의 강력한 대응은 두 수장의 회동으로 이어졌다.
현산은 그간 시장의 다양한 관측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현산은 거래 완료 시점까지 인수 의사를 표명하라는 산은의 공문을 받은 뒤 일주일이 지나서야 보도자료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현산은 6월 9일 입장문을 통해 “민감한 사안인 만큼 서면을 통해 각자의 의견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등 혼선을 막고 논란 여지는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향후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산은은 현산이 입장문을 낸 다음날 즉시 입장을 내고 진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 서면 협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어 “현산 측이 먼저 구체적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향후 공문발송이나 보도자료 배포가 아닌 협상 테이블로 직접 나와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해 달라”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산은은 현산을 재협상 테이블에 앉히며 최악의 경우를 피했다. 딜이 중단될 경우 매각을 주도해온 산은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은 이제 다시 현산으로 넘어갔다. 현산은 사실상 딜에서 발 뺄 명분을 잃었다. 앞서 지난 4월 산은과 수출입은행은 특혜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추가 지원안을 내놓으며 현산의 인수 부담을 덜어줬다. 이번에 현산이 재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면 인수대금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동걸 회장 또한 정몽규 회장과의 회동에서 인수를 확실히 결정해준다면 매각조건을 완화해줄 수 있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현산의 인수 포기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계약 해지 사유를 주장하고 이행보증금 일부를 보전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
재계 고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예전에는 산업은행이나 정부의 뜻에 반하는 결정에 부담을 느꼈으나 최근의 분위기는 다르다”며 “현산과 산은간의 채권관계나 계약관계가 없는 이상 산은이 현산을 압박할 카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딜이 무산되면 이행보증금을 둘러싼 법적다툼이 이어질 수 있지만, 아시아나항공이나 채권단이 이행보증금을 온전히 가져가는 것도 어렵다”고 전망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