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뱅크는 일단 고비를 넘긴 상태다. 우리은행은 지난 6월 말 이사회를 열고 케이뱅크 유상증자 안건을 결의했다. 증자금액은 보통주 750억 원, 전환주 881억 원 등 총 1631억 원 규모다. 이번 증자로 우리은행의 케이뱅크 지분율은 13.79%에서 26.2%로 올랐다.
케이뱅크가 자금 수혈로 숨통이 트였지만 곳곳에 붋안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자금 수혈로 숨통이 트인 케이뱅크는 본격적으로 경영 정상화에 돌입했다. 최근 8개 분야에 걸친 채용 공고를 내고 인재 확보에 나섰다. 오프라인 지점이 없는 인터넷은행이라 상대적으로 인력 수요가 적은 것을 고려해도 케이뱅크의 직원은 경쟁사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케이뱅크의 총 직원 수는 1분기 기준 366명으로, 811명인 카카오뱅크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자본확충이 늦어지면서 악순환에 빠진 결과다. ‘실탄’ 부족으로 주력사업인 신용대출 등이 중단됐고, 이로 인해 자금난이 더욱 악화되면서 인력 채용에 나설 형편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케이뱅크는 7월을 기점으로 하루만 맡겨도 이자가 쌓이는 ‘플러스박스’ 서비스와 ‘MY입출금통장’을 동시에 출시하면서 이를 담당할 인력 수급이 시급해졌다.
신규 고객 확보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케이뱅크는 6월 말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원화 입출금 실명계좌 개설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간 업비트는 정부의 ‘가상화폐 거래실명제’ 시행으로 기존 가입자에 대해서만 IBK기업은행 실명계좌를 운영해왔다. 이번에 케이뱅크와 손잡으면서 신규 가입자에 대한 실명계좌 기반 원화거래를 지원할 수 있게 됐고, 케이뱅크도 새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채널을 새롭게 추가했다.
케이뱅크가 지난 1년간의 부진을 털고 다시 돛을 높이 올린 듯 보이지만 케이뱅크의 속사정을 잘 아는 금융권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잘 새겨보라고 말한다. 케이뱅크 관련 호재의 이면에 오히려 불안요소가 가려 있다는 것이다.
우선 증자에 최대주주인 BC카드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케이뱅크는 당초 KT 주도로 설립됐지만, KT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대주주 적격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자본확충 길이 막히자 자회사인 BC카드가 증자에 참여해 케이뱅크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번 우리은행의 유상증자 참여도 BC카드와 우리은행, NH투자증권 등 3대 주주 중심으로 4000억 원 규모의 자본확충에 나선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이 계획대로 2대 주주인 우리은행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며 지분을 늘렸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작 최대주주인 BC카드의 움직임은 다소 굼떠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BC카드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BC카드는 케이뱅크 최대주주 자격을 얻기 위해 회사채를 발행하는가 하면, 보유 자산도 내다팔며 현금확보에 나서고 있다. BC카드는 오는 8월 3년 만기 회사채 1000억 원도 발행한다. BC카드가 회사채를 발행하는 건 2003년 1월 이후 17년 만이다. 마스터카드 지분 145만 4000주도 전량 매각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케이뱅크 최대주주 등극에 필요한 자금 3000억 원은 충분히 조달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BC카드는 KT의 케이뱅크 지분 10%를 인수하고 유상증자 참여로 지분을 34%까지 늘리기로 한 상태다.
문제는 자금 투입이 이번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케이뱅크가 완전 정상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1조 원에 달하는 추가 자금수혈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에 우리은행 외에 BC카드와 NH투자증권 등이 모두 증자에 참여한다고 가정해도 6000억 원을 더 투입해야 겨우 정상 단계에 진입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BC카드가 케이뱅크의 최대주주 역할을 계속 수행할 수 있을지에 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경쟁사인 카카오뱅크의 자본금이 1조 8000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1조 원은 충분한 금액이 아니다. 이미 시장을 장악한 카카오뱅크와 제대로 붙어보려면 추가로 1조 원 정도는 더 있어야 하는 셈” 이라면서 “기본적으로 BC카드가 조 단위의 자금을 투입할 여력이 있는지가 첫째 의문이고, 그 정도 자금이 있다 해도 그럴 의지가 있는지가 두 번째 의문”이라고 전했다.
금융당국 내에서도 BC카드가 케이뱅크 대주주 역할 맡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역시 지속 가능성이 의심된다는 이유에서다. 한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당국 입장에서는 안정성과 건전성이 최대 관심사”라면서 “지금 시점의 상황만 기준으로 말한다면 BC카드가 대주주 역할 수행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실제로 BC카드의 경영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BC카드의 1분기 당기순이익은 27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4% 줄었다. 같은 기간 현금 및 현금성 자산도 3546억 원에서 2107억 원으로 40.6%나 쪼그라들었다.
케이뱅크 내부 악재도 불거지고 있다. 신규 대출이 중단된 동안 기존 대출의 연체율이 크게 오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뱅크의 1분기 가계대출 연체율은 1.97%로 전년 동기(0.87%) 대비 2배로 폭증했다. 통상 위험 수준이라고 평가하는 2%에 거의 육박한 수치다. 경쟁사인 카카오뱅크의 0.2%, 4대 시중은행 평균인 0.25%와 비교하면 케이뱅크의 연체율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특히 올해 들어 연체율 상승세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고정이하여신(부실 채권) 비율도 높다. 케이뱅크의 1분기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1.91%로 카카오뱅크(0.23%)의 7배, 4대 시중은행 평균(0.4%)의 4배에 달한다. 금융권의 다른 고위 관계자는 “BC카드가 최대주주 역할을 하든, 최악의 경우 우리은행 혹은 NH투자증권으로 넘기든 다 똑같은 기존 대형 금융사들인 만큼 현재 진행 중인 케이뱅크 정상화는 사실 제대로 된 방향이 아니다”라면서 “편법 운영에서 벗어나 인터넷 은행이라는 취지를 살리는 방법은 KT로 되돌아가는 것뿐인데, 현재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