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한편을 둘러싸고 때 아닌 ‘보수의 총공세’가 벌어졌다. 7월 1일 방송을 시작한 KBS 2TV 수목드라마 ‘출사표’를 향해 일어난 공격이다. 미래통합당은 6월 25일 논평을 통해 “정치 편향적인 드라마”라고 주장하면서 제작사와 감독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강경한 입장까지 밝혔다. 드라마나 영화가 작품을 공개한 이후 정치적인 논란에 휘말린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번처럼 방송 시작도 전, 등장인물 설정을 두고 야당이 입장을 내기는 이례적이다.
‘출사표’는 1일 첫 방송에서 시청률 3.5%(닐슨코리아)로 출발했다. 본격적으로 구의회가 등장하지 않아 추후 이야기 전개를 지켜봐야 하지만, 드라마가 공개되기도 전에 불거진 정치 편향 논란으로 인해 더욱 날카로운 시선을 받고 있는 상태다.
‘출사표’는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는 주인공이 불의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구의원에 출마해 겪는 이야기다. 걸그룹 애프터스쿨 출신 연기자 나나가 주연을 맡아 가상의 지역인 마원구 구청과 구의회를 무대로 ‘불량 정치인’을 통쾌하게 응징하는 내용이다.
미래통합당이 문제 삼은 부분은 주인공의 구의원 도전 과정에서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설정이다. 구의회를 구성하는 ‘다같이 진보당’과 ‘애국 보수당’에 각각 소속된 정치인에 대한 설정과 설명이 ‘진보는 선(善) 보수는 악(惡)’의 구도로 나뉘었다는 비판이다. 극 중 진보당 의원들은 기부도 하고 자원봉사에도 적극적인 선한 이미지로, 보수당 의원들은 ‘갑질’을 일삼고 성희롱까지 하는 악한 이미지로 소개하고 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논란이 불거지자 KBS는 “정치 편향성은 없다”고 해명하면서도 등장인물 중 정치인 소개에서 예민한 내용을 일부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통합당 비판 이어 북 선전매체까지 동참
‘출사표’는 1일 첫 방송에서 시청률 3.5%(닐슨코리아)로 출발했다. 본격적으로 구의회가 등장하지 않아 추후 이야기 전개를 지켜봐야 하지만, 드라마가 공개되기도 전에 불거진 정치 편향 논란으로 인해 더욱 날카로운 시선을 받고 있는 상태다.
심지어 북한 대외선전매체까지 거들었다. ‘우리민족끼리’는 6월 30일 ‘조롱거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코로나19 사태로 어수선한 남조선에서 볼 만한 구경거리가 예고돼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며 “이 연속극(출사표)의 예고편을 먼저 본 사람들이 ‘그것 참 신통한 영화’라고 극찬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드라마를 문제 삼은 미래통합당까지 겨냥하고 “미래통합당이 극의 대본을 누가 썼고 누가 연출했는지 책임을 묻겠다고 소동을 피우고 있지만 긁어 부스럼이라고 오히려 저들의 허물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꼴이 되고 말았다”고 비난했다.
방송 전부터 대표 야당을 통해 “KBS가 문재인 정권의 나팔수를 자임하는 것 아니냐”는 노골적인 표현으로 공격을 당한 KBS는 즉각 반박 보도 자료로 맞섰다. “극 중 당적을 가진 인물들은 진보 보수를 떠나 대부분 선한 인물로 설정되지 않았다”고 선을 긋고 “정치적으로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인공을 무소속으로 설정, 진보·보수 양측의 문제를 지적하려는 시도”라고 덧붙였다.
창작의 영역인 드라마를 두고 방송 전부터 나온 이례적인 논란이 일다 보니 이를 둘러싼 각양각색 의견도 잇따르고 있다. ‘창작은 창작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의견은 시작일 뿐이다. 정치 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미래통합당의 ‘출사표’ 제작진 고소 검토 방침에 대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에 충실하다면 재미있는 스토리가 전개될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연출자 “진보·보수 한쪽 치우침 없다” 강조
논란에 대해 제작 당사자들은 어떤 입장일까. 연출을 맡은 황승기 PD는 1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정치 소재이지만 주요 배경은 구청”이라며 “작은 규모의 정치를 소재로 한다”고 강조했다. 주인공이 불의에 맞서 항의하고, 직접 현실 정치에 도전해 세상에 작은 변화를 만들려는 내용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나나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지상파 미니시리즈 첫 주연으로 나선다. 나나는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만큼 적극적이고 저돌적인 성향의 주인공과 실제 내 모습이 닮았다”며 ‘출사표’에 임하는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사진=KBS 제공
하지만 미래통합당의 문제제기 이후 드라마 등장인물 가운데 정치인들을 설명하는 부분을 일부 수정하거나 삭제한 것을 두고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황승기 PD는 “드라마에 나오지 않는 내용도 이해를 돕고자 자세히 설명해 놓은 측면이 있다”며 “극 진행상 나오지 않는 설정이나 이야기는 오해 소지가 없도록 변경했다”고 해명했다.
‘출사표’는 방송 시작 전 전체 16부작 가운데 이미 12부까지 대본이 완성됐다. 대부분 촬영도 마친 상태다. 정치 편향성을 지적하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제작진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판단 아래 대본을 수정하거나 이미 촬영한 내용을 변경하는 등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연출자로서의 소신도 덧붙였다. 황승기 PD는 “개인적으로도 드라마에 연출자의 정파성을 드러내는 건 좋은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생활 가까이 작동하는 정치, 작은 소재로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나나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지상파 미니시리즈 첫 주연으로 나선다. 전도연과 호흡한 ‘굿 와이프’를 시작으로 영화 ‘꾼’, 지난해 방송한 드라마 ‘저스티스’ 등을 통해 가수를 넘어 연기자로도 성장한 끝에 만난 기회다. 나나는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만큼 적극적이고 저돌적인 성향의 주인공과 실제 내 모습이 닮았다”며 ‘출사표’에 임하는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