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삼표산업 성수공장 이전을 두고 갈등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사진=성동구의회 캡처
삼표산업 성수공장 이전은 2017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현대제철-삼표-성동구 4자 간 ‘삼표레미콘 공장 이전 협약’을 맺으며 구체화됐다. 1970년대부터 운영된 성수공장은 삼표산업이 부지 소유주인 현대제철에서 땅을 임차해 사용하고 있다. 협약에는 현대제철이 성수공장 부지를 서울시에 넘기고, 임차인인 삼표산업이 오는 2022년까지 공장을 철수해 부지를 공원화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서울시와 성동구는 지난 4월 성수공장 용지를 공원화하기 위한 행정 절차에 착수했다. 일단 행정절차에 착수해야 시민들에게 약속한 오는 2024년까지 사업 진행을 완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방자치단체는 성수공장 공원화 작업을 본격화했지만, 정작 현대제철과 삼표는 아직 양자 간 영업권 보상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대체 부지 물색 않은 삼표산업
더욱이 삼표산업은 아직 대체 가능 부지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2022년 공장 철수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일감이 끊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자 성수공장 레미콘 기사들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하고 단체행동에 나섰다. 앞서 성수공장 레미콘 기사로 구성된 비대위는 지난 4월 집회를 열고 성수공장 이전에 반대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성수공장을 이전하면 이전지에서 근무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개인사업자인 레미콘 기사들은 서울을 근거지로 하고 있고 물량 수급 문제가 있어 성수동에서 아예 먼 곳으로 공장이 이전할 경우 근로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성동구 관내에 대체부지가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이들은 협상 테이블에서조차 배제돼 불만이 크다.
성동구 측은 “삼표공장의 영업권 보상 문제는 현대제철과 삼표가 해야 하는데 제대로 진전이 되지 않고 있다”며 “레미콘 기사들은 성동구 관내에 대체부지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대체부지를 마련하고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건 삼표인데 입장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력한 의지를 보인 성동공장 공원화 작업이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왼쪽부터 홍성원 삼표산업 대표, 강학서 현대제철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2017년 4자간 협약을 맺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레미콘 공장은 입지에 따라 일감 수주가 결정된다. 산업 특성상 공장에서 재료를 실은 레미콘은 재료가 굳기 전인 90분 이내에 공사현장에 도착해야 한다. 이 때문에 레미콘 공장은 도로상황을 고려해 도심은 20km 이내 공사 현장, 외곽은 40km 이내 현장까지 물량을 공급할 수 있다. 현재 서울시내에는 4개 레미콘 공장이 운영 중이다. 삼표산업이 운영하는 성수공장은 송파구 풍납공장과 함께 수도권 레미콘 공급량의 30~40%를 소화하고 있다.
#삼표 ‘버티기’ 지적 나오는 까닭
성수공장을 철수할 경우 삼표는 당장 매출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특히 2023년부터 현대차그룹의 서울 삼성동 GBC 공사를 두고 레미콘업계 특수가 예상되는 만큼 성수공장을 철수해야 하는 삼표로서는 손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토지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 삼표그룹이 서울시내에 적절한 대체부지를 찾는 것과 그 비용을 마련하는 일도 쉽지 않다. 공장 이전 시간은 다가오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져 급해야 할 현대제철과 삼표산업은 도리어 느긋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삼표와 현대제철은 공장 이전 협약이 대체부지 마련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며 서울시와 성동구 측에 그 책임을 묻고 있다.
재계에서는 현대제철과 삼표가 고의로 시간을 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삼표의 경우 서울·경기권에 예상되는 건설·재건축 사업이 많아 향후 10년간 레미콘 물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여 서울에 있는 공장에서 ‘철수’가 아닌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시각도 있다. 성수공장보다 앞서 철수가 결정된 송파구 풍납공장이 전례로 꼽힌다.
삼표는 송파구 풍납공장을 두고 송파구와 수년간 소송을 벌인 끝에 대법원에서 철수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삼표는 풍납공장 철수에 따른 보상금 544억 원을 수령하고도, 공장을 이전하지 않고 그대로 운영하고 있으며 레미콘 기사들이 앞장서 공장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 레미콘 기사들의 시위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도 시간을 끌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삼표가 성수공장의 대체부지를 ‘서울시내’에 마련해주지 않으면 어떻게든 버티려 할 것”이라며 “공장부지 주인도 가만히 있다는 게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성수공장 부지 주인인 현대제철은 현대차그룹 계열사며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사위다. 이들의 관계도 지자체 쪽으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7년 맺은 협약이 무산될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지난 4월 이뤄진 성동구의회 회의록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공장부지 땅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 감정평가에 대한 안을 냈고, 삼표는 공장 이전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 삼표 관계자는 “공원화 사업에 반대를 한 적이 없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공장을 철수하면 레미콘 기사분들의 생존권이 크게 위협을 받는다”며 “4자 간 협상을 통해 대체부지가 마련된다면 공장을 이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측은 “4자 간 협약 내용에는 지자체가 대체부지를 마련해준다는 등의 약속은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 토지 소유주는 땅값만 받고 나가면 되는 상황인데 삼표산업이 여전히 공장 이전에 반대하다보니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다”며 “5년이라는 충분한 공장이전 시간을 준 만큼 계획에 차질없이 공원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