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6월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연구원 주최로 열린 초선의원 혁신포럼 ‘슬기로운 의원생활’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번엔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여권의 원로 인사는 검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총장이 거취를 결단해야 할 때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최측근인 한동훈을 지키려고 지금 검찰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다. 내부에서도 윤 총장을 지지하는 검사들은 별로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임기가 남아있긴 하지만 조직을 수습하기 위해선 도의적 책임을 지고 윤 총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검-언 유착 의혹 수사를 놓고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갈등을 빚기 시작할 무렵부터 여권 내에선 윤 총장 사퇴론이 빠르게 확산됐다.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은 공개적으로 “나라면 그만둘 것”이라면서 여권의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앞서의 원로 인사는 “검-언 유착 수사에서 드러난 윤 총장 측 행태에 쌓여있던 여권의 감정이 폭발한 상황”이라면서 “검찰 중립성을 침해하는 게 아닌, 특정 세력으로부터 검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윤 총장 측도 부글부글 끓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중앙지검장이 대놓고 검찰총장을 ‘패싱’하는 초유의 사례가 연이어 발생한 것에 대해 상당수 검사들이 분개해 하고 있다는 게 윤 총장 측 판단이다. 한 부장검사는 “이제 검사들이 툭하면 장관에게 달려가는 것 아니냐.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고 했다. 말을 아끼고 있는 윤 총장은 법조계 원로들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윤 총장과 함께 일했던 특수통 출신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서초동에선 정권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곧 검찰총장이 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일부 검사들은 벌써 이 지검장에게 줄을 섰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총장 ‘영’이 서겠느냐. 검-언 유착 수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검찰과 정치권력의 유착이 진짜 이유다. 정치권과 결탁한 실세 검사들이 검찰 조직을 무너트리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일요신문이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검찰 인사들 역시 이성윤 지검장 입지가 최근 들어 부쩍 강화됐다고 입을 모았다. 더불어민주당 총선 대승 후 문재인 정부와 껄끄러운 윤 총장 대신, 이 지검장에게로 힘이 쏠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존재감도 한몫을 했다는 평가다. 대검찰청을 지휘, 감독할 권한을 가진 법무부의 전폭적인 지원사격으로 이 지검장이 사실상 ‘검찰총장급’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1월 7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추미애 장관은 검-언 유착 의혹 수사를 두고 윤 총장을 향해 연일 강경 발언과 조치들을 쏟아냈다. 특히 민주당 초선의원 강연에서 “장관의 말을 겸허히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제 지시를 절반을 잘라 먹었다”고 한 발언은 많은 화제를 모았다. 이를 놓고 논란이 불거지자 추 장관은 자신의 SNS에 “장관의 언어 품격을 지적한다면 번지수가 틀렸다”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7월 2일 추 장관은 검찰청법 8조에 규정된 수사지휘권을 발동, 검-언 유착 수사와 관련해 사실상 윤 총장 관여를 막았다. 최종 결과만을 윤 총장에게 보고하도록 한 것인데,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발동은 2005년 천정배 전 장관 이후 두 번째다. 당시 검찰 내에서 수사 외압 비판이 거셌고, 김종빈 검찰총장은 결국 사직서를 냈다. 이번 추 장관의 지휘권 발동 역시 윤 총장에 대한 사퇴 압력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를 두고 여권 내에서조차 추 장관이 지나치게 ‘오버’하고 있다는 부정적 시선이 감지된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윤석열 몸값만 높였다. 검찰 내부에서도 윤 총장 동정론이 퍼지고 있다. 윤 총장이 이대로 사퇴해버리면 역풍이 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초선 역시 “지금 시국에서 검-언 유착 사건에 이렇게까지 매달려야 하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 윤 총장을 찍어내려는 시도로 비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추 장관을 향한 공개 비판은 금기에 가깝다는 전언이다. 비문계로 통하는 조응천 의원이 “추 장관 언행은 당혹스럽기까지 해서 말문을 잃었다”라고 꼬집을 정도다. 앞서의 초선 의원 중 한 명은 ‘사실상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귀띔했다. 이는 지난해 조국 전 장관 일가를 향한 검찰 수사 때 여권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추 장관의 강경 드라이브도 이러한 여권 기류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하다는 반응이다.
사실 추 장관은 친문계와는 다소 껄끄러운 사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찬성표를 던졌던 일은 줄곧 추 장관을 따라다녔다. 그런데 최근 추 장관이 친문 진영 ‘공공의 적’인 윤 총장을 향해 맹공을 퍼붓자 양측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추 장관이 향후 정치 행보를 염두에 두고 윤 총장 공격의 ‘총대’를 멨다는 얘기다. 친문계 대표 전략가로 꼽히는 한 전직 의원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친문 진영 내부적으론 총선 전부터 윤 총장과 도저히 함께 갈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 구체적인 방안들이 검토됐고, 법무부 감찰 등이 나왔다. 윤 총장이 하차할 경우 후임으론 이성윤 지검장이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즉, 윤 총장 대신 이 지검장을 발탁하는 시나리오가 논의됐던 것이다. 이를 위해선 추 장관 도움이 필요하다고 봤다. 추 장관도 우리 쪽의 이러한 생각들에 적극 동의했다.”
여권 내부에선 이 과정에 특정인들 이름까지 오르내린다. 문재인 정부 법조실세로 평가받는 공공기관장과 대학교수, 친문 핵심 몇몇이 ‘윤석열 찍어내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게 그 골자다. 이들과 추 장관 측이 물밑에서 접촉하며 이성윤 지검장을 돕고 있다는 뒷말도 무성하다. 여권 핵심부 인사들은 ‘검찰 개혁 완수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임기가 정해져 있는 검찰총장을 정치권력이 흔드는 모양새는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높다.
추 장관이 여권의 차기 주자군으로 급부상한 것도 윤 총장에 대한 맹공을 퍼붓기 시작한 직후다. 그동안 추 장관은 2022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할 것이란 예상이 주를 이뤘다. 걸림돌은 여권 주류이자 최대 계파인 친문 진영의 ‘추미애 비토 기류’가 꼽혔다. 친문계가 또 다른 후보를 서울시장으로 밀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었다. 추 장관으로선 친문 진영과의 관계 개선이 서울시장 도전을 위한 충분조건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검-언 유착 수사를 계기로 추 장관은 친문과 사실상 한 배를 탔다. 그리고 이젠 서울시장을 넘어 ‘포스트 문재인’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추 장관이 윤 총장 공격의 선봉에 나선 것을 놓고 정치적 노림수가 담겨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자유한국당 중진 의원은 “추 장관이 이른바 친문 진영의 ‘충성심’ 시험대에 오른 것 같다”면서 “못 해도 서울시장인데, 손해 보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친문 의원들은 추 장관과 차기와의 연관성에 대해 “소설 같은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한 친문 재선 의원은 “검찰 개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윤 총장 행태를 그냥 넘어가는 것은 추 장관의 직무유기”라고 했다. 친문계 초선 의원도 “추 장관은 당 대표까지 지냈던 정치인이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추진력과 결단력은 익히 유명하다. 다음 정치 행보 때문에 이번에 특별히 ‘오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