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청년 캐릭터는 번듯한 직장도, 그렇다고 뒤를 밀어줄 부모님도 없다. 이런 남자 주인공이 있다.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도 졸업했는데 아직도 취업을 못해 하루 종일 식당에서 고생하는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 학원비를 내고 고시원비를 충당한다. 게다가 이제 서른 살도 넘었는데 아직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자기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미워한다.
여자 주인공도 있다. 그녀 대학 동기의 인스타그램엔 매일 멋진 식당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여행지에서 낭만적으로 석양을 바라보며 와인 잔을 기울이는 사진이 올라온다. 그 가운데 여자 주인공은 노량진에서 컵밥을 먹으며 자신을 한탄한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그들은 도시락을 먹으면서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먼저 취업한 친구들의 일상을 본다. 직접 소개받지 못한 동창의 여자친구를 스마트폰 안에서 대면(?)하고 몇 번 손가락을 움직이면 지난달 새롭게 구매한 다른 친구의 멋진 자동차를 보게 된다. 주인공들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자신과 다른 친구들의 일상을 매일매일 만난다.
직접 본 지 몇 년은 된 친구지만 매일매일 소셜미디어에서 그들을 만나고 그들이 무엇을 먹고 어디를 여행했으며 어떻게 사는지를 다 알게 된다. 안 보려고 해도 안 볼 수가 없고 마음을 안 쓰려고 해도 안 쓸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이 미워지고 또 미워진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맛없고 고통스러운 식사를 마친 주인공은 남은 반찬을 플라스틱 통에 정성스레 담아 자기 이름을 붙이곤 공용냉장고에 보관한다.
그리곤 다음날 아침 주인공은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어제 남겨놓은 편의점 도시락 반찬을 꺼내 아침을 허겁지겁 때우고 학원으로 향한다. 그리곤 독백처럼 말한다.
“이 지긋지긋한 고시원을 떠나고 싶다.”
이게 2020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수많은 청춘들이다. 난 386세대다. 우리시대 청춘들도 아픔이 있었다. 많은 친구들이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또 투쟁하다 투옥당하기도 했고 군대에 끌려가기도 했고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어학연수를 다녀와야 했고 각종 자격증에 자원봉사, 인턴 등 하루하루 취업을 위해 노심초사, 고군분투하며 살지는 않았다. 우리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고성장시대에 입학을 했고 졸업을 했으며 나름 경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치열하고 고통스럽고 막막한 시대를 살아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 청춘들이 안타깝고 마음 아프고 미안하고 안쓰럽다. 요즘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라는 것이 연일 보도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되는 것은 환영하고 또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각고의 시간을 보내고 어렵게 입사한 정규직 사원들이 불공정하다고 하는 것을 이기적인 젊은이라고 비난할 일도 아니다.
고시원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편의점 도시락으로 아침 저녁을 때운 청춘들이 역차별이라고 분개하는 것을 배려심 없는 행동이라고 치부할 일도 아니다. 차이를 강조하는 것을 차별이라고 매도할 일도 아니고 공평이 공정보다 더 우월한 가치라고 할 수도 없다. 다만 이 땅의 젊은 청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그들끼리 반목하게 만들고 서로 원망하게 만든 우리 기성세대들이 훨씬 더 비난받아 마땅하고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될 일이다.
작년 여름 가장 흥행을 한, 영리한 기획이 돋보인 재난영화 ‘엑시트’가 있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나이 서른이 넘어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취업준비생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의 어머니의 칠순잔치에 오신 친지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하며 술을 따라드린다.
“장가도 못 갔고요. 아직도 취업 준비 중입니다. 한잔 따라드릴게요.”
영화에서 취업을 준비 중인 주인공에게 역시 취업준비생인 친구가 말한다.
“우리는 그냥 개 쓰레기야…. 우린 이미 재난 속에 있어.”
우리 기성세대가 하루하루 재난 속에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청춘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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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