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해야 2년을 예상한다.”
고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의 지인 A 씨가 말했다. 그는 최 선수의 억울함을 폭로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가해자들을 법정에 세운다 해도 제대로 된 처벌 없이 끝날 것이라는 점을 A 씨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했다. A 씨를 포함해 주변 지인들은 최 선수를 수줍음이 많고 착한 아이라고 표현했다. 유망주로 주목받아 국가대표 타이틀까지 달았지만 타인을 내려다보지 않고 늘 겸손하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유족은 최 선수가 전 소속팀인 경주시청 감독과 팀 닥터의 상습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 선수가 남긴 녹취록에는 지난해 3월 뉴질랜드 전지훈련에서 김 아무개 감독과 팀 닥터인 안 아무개 씨의 폭행 정황이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이 설명한 당시 상황에 따르면 아침에 복숭아 1개를 먹은 것을 김 감독에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폭행의 이유였다.
#무자격자가 “다 잘되라고 하는 거다”라며 폭행
2일 오후 경북 경주시 황성동에 있는 경주시체육회 사무실에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감독(왼쪽)이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이 입수한 22분짜리 녹취록 내용에 따르면 폭행은 그야말로 무차별적이었다. 팀 닥터 안 씨는 최 선수에게 “나는 너를 좋아한다”면서 폭행을 이어갔다. “감독님도 너를 좋아한다” “다 잘되라고 하는 거다”라는 말 뒤로 ‘퍽’ ‘퍽’ 하는 마찰음이 쉼 없이 들렸다. 안 씨는 “나는 네가 좋다” 등의 말을 하고 때리기를 반복했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폭력은 합리화됐다. 안 씨는 폭행 과정에서 최 선수에게 “감독님과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 판단한다” “몸이(실력) 이만큼 올라왔으면 응?” “너는 선생님 마음을 이해를 못 한다”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너를 응원하고 있다” 등의 말을 했다. 이처럼 두 사람은 계속해서 ‘너를 어린 시절부터 봐왔기에 더욱 각별히 생각한다’는 이유를 들어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다.
“OOO 불러와” 최 선수 폭행이 끝나자 안 씨는 다른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일부러 최 선수 앞에서 다른 선수들을 폭행해 죄책감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안 씨가 선배 및 동료 선수를 방으로 부르려고 하자 이내 김 감독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선수들 몇 명이 들어왔다.
안 씨가 선수들에게 “얘(최 선수)가 못 맞아서 네가 대신 맞는 것”이라고 하자 놀란 최 선수가 “제가 맞겠습니다”라며 울먹거렸다. 안 씨는 곧바로 “너는 맞을 자격도 없다”고 윽박질렀다. 뒤이어 “이빨 깨물어”라는 말과 함께 “짝” “탁” 소리가 이어졌다. “너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방에 불려온 선수는 최소 3명이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동안 김 감독은 뒤에서 훈수를 두거나 “얘네들은 맞아도 된다” 등의 말로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설사 직접적인 폭행을 가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폭행을 종용하거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안 씨가 동료 선수들에게 폭언을 내뱉는 동안 김 감독은 최 선수를 따로 불렀다. 김 감독은 나지막이 “숙현아! 진짜 죽고 싶어서 그러냐?”고 물었다. 김 감독은 “죽고 싶냐?” “죽을래” 등의 협박성 발언을 속삭이듯 되물었다. 겁에 질린 최 선수는 “아닙니다”만 반복했다. 김 감독이 최 선수에게 ‘짜지마(울지마)’라고 하자 안 씨가 그 말에 힘을 보태듯 큰소리로 “그치라! 안 그치나!”라고 윽박질렀다.
안 씨는 다른 지역 감독과 코치의 실력을 깎아내리는 한편 김 감독에 대한 칭찬은 반복했다. 안 씨는 훌쩍이는 최 선수에게 “너 칠곡에 있는 XXX 코치 밑에 있다가 이제 제대로 된 감독님 밑에 왔으면…”이라며 폭행을 이어갔다. 동료 선수들을 모아두고는 “선수들의 실력을 만들어 준 것은 모두 김 감독”이라는 취지의 말을 수차례 했다. 선수들은 “네”라는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끔찍한 폭행이 이어지는 사이 김 감독과 안 씨는 아무렇지 않게 술과 식사를 했다. 최 선수가 뺨을 20대 이상 맞는 동안 한쪽에서는 숟가락과 그릇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의 폭행은 “일요일까지 굶어라. 먹을 자격도 없다” “체중을 만들어 놓으라”는 두 사람의 명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계속해서 본인을 선생님이라고 지칭했던 안 씨는 사실 최 선수를 가르칠 수 있는 어떠한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다. 경주시체육회에 따르면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에는 공식적인 팀 닥터가 없었다. 안 씨는 의사나 물리치료사 면허도 없었다. 주변 증언에 따르면 안 씨는 어느 날 김 감독이 데려온 인물로 주로 선수들의 마사지를 해줬다고 한다. 경주시청 소속 선수들이 사비를 털어 안 씨의 월급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한편 그는 선수단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번 경주시체육회 청문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설거지 안 했다고 “국가대표면 다야?”
미래통합당 이용 의원은 경주시청이 팀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밝힌 최숙현 선수 부친에게 “신고하라”는 등의 대응을 했다고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최 선수의 선배 혹은 팀 관계자로 추정되는 가해자의 폭언도 있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9분가량의 녹취록 내용에 따르면 이 가해자는 최 선수에게 “띨띨한 척을 하는 거냐? 뭐하는 거냐? 말을 끝까지 하라” “내가 너보고 이거 치우라고 했지” “국가대표면 다야? XX 같은 X” “네가 뭔데?”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연이어 했다. 정황상 설거지를 제때 하지 않았다는 것이 폭언의 이유로 보였다.
주눅이 든 최 선수는 이번에도 “네” “죄송합니다” 등의 말만 반복했다. 가해자는 5분가량 쉼 없이 욕설을 퍼부은 후에야 자리를 떴다. 곧 최 선수가 혼자 남아 설거지를 하는 듯 덜그럭 거리는 소리와 물소리만이 이어졌다.
경주시청에서의 선수 생활은 매일이 고통이었다. 최 선수 동료들은 최 선수의 표정이 늘 어두웠다고 증언했다. 최 선수는 용기를 내 지난 2월 가해자들을 경찰에 신고했다. 4월에는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경기협회, 경북체육회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어느 곳 하나 최 선수의 어려움을 제대로 살펴봐주지 않았다. 대한체육회 진상조사 결과도 불명확하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결국 트라이애슬론 유망주이자 전 국가대표는 6월 26일 부산에 위치한 숙소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상습적인 폭행과 가혹행위에 맞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지만 모두가 외면한 고통의 세월이 4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우리도 당했다” 동료 선수들 잇단 추가 고소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최숙현 선수가 소속팀 감독과 팀 닥터, 선배들로부터 폭행‧폭언 등 가혹행위를 당해왔다고 밝힌 뒤 극단적 선택을 하자 동료 선수들도 추가 증언 및 고소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전·현직 경주시청 소속 선수의 지인 A 씨는 2일 일요신문과 만나 “선수와 선수 가족들이 변호사를 선임하고 2일 폭행에 관여한 경주시청 감독을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움츠렸던 선수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많은 용기를 낸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증언을 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피해 선수들은 팀 관계자에게 각목 등으로 구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동료 선수들끼리 서로 때리게 하는 등의 가학행위도 있었다고 A 씨는 전했다. 이들은 폭력행위를 신고한다고 해도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이 받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신고조차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최 선수 역시 지난 2월 경주시청 소속 감독, 팀 닥터, 일부 선수들을 폭행 및 폭언 등으로 경찰에 고소한 뒤 대한체육회 인권센터에도 이 사실을 알렸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