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현 체제를 유지한다면 최원호 감독대행은 역대 최장기 감독대행이 될 전망이다. 사진=연합뉴스
올해도 KBO리그 역사에는 감독대행이 두 명 추가됐다. 최원호 한화 이글스 감독대행과 박경완 SK 와이번스 감독대행이다. 한화는 한용덕 전 감독 사퇴 다음날인 지난 6월 8일 최원호 당시 퓨처스(2군) 감독을 잔여 시즌 감독대행으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한화가 144경기 중 고작 30경기만 소화했던 시점이라 최 감독대행은 올 시즌의 80%에 가까운 114경기를 이끌게 됐다. 새 감독 선임 없이 이대로 시즌이 종료된다면 역대 감독대행 단일 시즌 최다 경기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최 감독대행 이전에 100경기 이상 감독대행을 맡았던 인물은 단 3명밖에 없었다. 1995년 쌍방울 레이더스 김우열 감독대행이 102경기, 2017년 한화 이상군 감독대행이 101경기, 지난해 KIA 타이거즈 박흥식 감독대행이 100경기를 각각 지휘했다. 2001년 LG 트윈스 김성근 감독대행이 100경기에 단 2게임 모자란 98경기로 그 뒤를 잇고 있다.
#100경기 안팎 지휘한 ‘장기 감독대행’ 성적은?
사실 감독대행만큼 어렵고 부담스러운 자리도 없다. 잘해야 본전. 성공 확률도 높지 않다. 대부분 전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팀을 떠난 뒤 지휘봉을 이어 받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감독대행 최다 경기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김우열 감독대행이 그랬다.
1994년을 최하위로 마친 쌍방울은 1995년에도 5월 들어 10연패 늪에 빠지면서 2년 연속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 끝내 시즌 도중 사장, 단장, 감독을 한꺼번에 교체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한동화 감독도 그렇게 물러났다. 그러나 김우열 감독대행 역시 잔여 102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당시 쌍방울의 전력이 그 정도로 약했다. 36승 3무 63패(승률 0.368)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시즌 종료 후 김성근 당시 해태 타이거즈 2군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왔다.
101경기를 소화한 이상군 감독대행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5월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뒤 구단 레전드 투수 출신인 이 감독대행이 남은 시즌을 끝까지 책임졌다. 성적은 43승 2무 56패. 한화는 2018년 새 감독으로 또 다른 레전드 투수 한용덕 감독을 선택했다.
박흥식 감독대행은 지난해 김기태 전 감독이 물러난 뒤 최하위로 처진 KIA에서 100경기를 이끌었다. 리빌딩을 염두에 두고 팀을 운영하면서도 49승 1무 50패(승률 0.495)로 5할에 가까운 성적을 남겼다. 그러나 KIA는 시즌 종료 후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인 맷 윌리엄스 감독을 영입했다. 박 감독대행은 다시 원래 자리였던 2군 감독으로 돌아갔다. 올 시즌 한화를 맡은 최원호 감독대행 역시 시즌 종료 후 새 감독이 부임하면 다시 2군 감독을 맡기로 구단과 약속해 놓은 상태다.
김성근 감독대행은 장기 감독대행들 가운데 유일하게 승률 5할을 넘겼다. 2001년 이광은 감독으로부터 LG 지휘봉을 넘겨받은 뒤 잔여 98경기에서 승률 0.538(49승 7무 42패)을 올려 2002년 LG의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다. 사진=일요신문DB
#감독대행에 얽힌 다양한 역사들
사실 62차례에 달하는 감독대행 사례 가운데 약 31%(19회)는 감독의 개인 사정에 따른 ‘한시적 대행’이었다. 역대 62번째 감독대행으로 기록된 박경완 SK 수석코치가 그렇다. 염경엽 SK 감독은 6월 25일 두산 베어스와 더블헤더 1차전을 지휘하다 스트레스로 쓰러졌고, 병원 검진 결과 신경 쇠약이 심해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박 코치는 바로 그 경기부터 임시로 SK 지휘봉을 잡았다. 염 감독은 박 감독대행을 믿고 병원 권고에 따라 추가 정밀 검진을 받으면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이외에도 백인천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 김명성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김성근 전 한화 감독, 김경문 전 NC 다이노스 감독, 김태형 두산 감독 등이 크고 작은 건강 문제로 더그아웃을 지키지 못한 경험이 있다.
역대 최초로 감독대행을 맡았던 인물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이선덕 투수코치였다. 삼미 초대 사령탑 박현식 감독이 13경기 만에 3승 10패(승률 0.231)라는 저조한 성적을 남긴 채 물러나자 대신 지휘봉을 잡았다. 실업야구를 주름잡은 명투수 출신으로 1990년대까지 삼미, 태평양 돌핀스, 쌍방울 등에서 투수코치로 많은 후진을 양성했다. 다만 KBO리그 1호 감독대행이라는 명예(?)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좋지 않았다. 팀당 80경기를 소화하던 1982년 잔여 67경기에서 12승 55패(승률 0.179)를 기록했다. 삼미가 역대 한 시즌 최저승률 0.188(15승 65패)을 찍던 해다.
가장 많은 감독대행이 거쳐 간 팀은 롯데다. 지난 시즌 양상문 전 감독의 빈자리를 채웠던 공필성 감독대행까지 총 아홉 번의 사례를 남겼다. 그 다음이 8명의 감독대행을 뒀던 LG(전신 MBC 청룡 포함)와 현대(전신 삼미-청보 핀토스-태평양 포함)다.
특히 LG는 MBC 시절 팀을 이끌었던 고 김동엽 감독의 영향으로 감독대행 체제가 잦았다. 해태 타이거즈 초대 사령탑이던 김 감독은 1983년 MBC 지휘봉을 잡고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지만, 구단이나 선수단과 불화로 세 차례나 팀을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애꿎은 유백만 코치와 한동화 코치가 전임 백인천 감독 시절부터 김동엽 감독 시절까지 각각 세 차례, 두 차례씩 감독대행을 맡아야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반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감독대행을 두지 않은 팀은 가장 늦게 창단한 막내구단 KT밖에 없다. KT는 1대 조범현 감독이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난 뒤 2대 김진욱 감독이 부임했고, 김 감독도 2018시즌을 모두 마친 뒤 사퇴해 3대 이강철 감독이 지난해부터 지휘봉을 이어 받았다.
제9구단 NC는 2017년 6월 초대 사령탑인 김경문 감독이 중도 퇴진한 뒤 수석코치나 2군 감독이 아닌 유영준 당시 단장에게 감독대행을 맡겨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철저히 프런트가 주도하는 야구를 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시즌 종료 후 무명 선수 출신인 이동욱 코치를 새 감독으로 선임해 구단의 지향점을 확실하게 표현했다.
그런가 하면 유남호 전 KIA 감독은 무려 다섯 번이나 감독대행을 맡아 역대 최다 경험자로 남아 있다. 주로 ‘코끼리’ 김응용 감독을 대신해 감독석을 지키곤 했는데, 다혈질인 김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하다 퇴장당한 뒤 그 자리를 메울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998년 9월 4일, 1999년 5월 1일, 2000년 9월 1~3일, 2000년 10월 5일처럼 ‘하루 천하’ 혹은 ‘사흘 천하’로 기록된 날이 네 차례나 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감독대행에서 감독으로 승격한 인물은?
감독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사례는 많지 않다. 시즌 도중 사령탑이 물러날 정도로 바닥으로 처진 팀들이 감독대행의 지휘 아래 극적인 반등을 이뤄낼 가능성이 크지 않아서다. 감독이 아닌 ‘대행’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만한 환경과 권한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한 전임 감독은 “감독대행 체제에서 팀 성적이 이전보다 상승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감독대행의 역량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며 “전임 감독이 떠나면서 일시적으로 분위기가 전환된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감독대행을 거친 34명 가운데 ‘대행’ 꼬리표를 떼고 감독으로 정식 계약한 인물은 총 14명이다. 이재우 윤동균(이상 OB 베어스) 이희수(한화) 유남호 서정환(이상 KIA) 유백만 천보성 김성근(이상 LG) 이만수(SK) 강병철 김명성 우용득(이상 롯데) 강태정(청보) 김준환(쌍방울)이다.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2006년 LG에서 이순철 전 감독을 대행해 잔여 시즌을 치른 뒤 2012년 롯데에서 프로야구 감독이 됐다.
최초의 사례는 강병철 전 롯데 감독이 남겼다. 강 감독은 1983년 7월 박영길 초대감독이 사임하자 대신 지휘봉을 잡았다. 그리고 1984년 롯데 2대 감독으로 정식 취임해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다. 롯데에서는 이후 같은 사례가 두 번 더 나왔다. 1998년 6월 김용희 감독이 떠나면서 김명성 감독대행이 바통을 이어 받았고, 1999시즌에 앞서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다. 다만 건강 악화로 2001년 7월 퇴진했다. 이때 빈자리를 채운 우용득 감독대행은 남은 시즌을 무사히 마치고 이듬해 감독이 됐지만, 한 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2002년 6월 중도 퇴진했다.
두산에서는 이재우 전 감독이 처음으로 대행 출신 감독에 올랐다. 1990년 5월 이광환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면서 이재우 감독대행 체제로 잔여 시즌을 치렀고, 시즌 종료 후 이 감독대행이 정식 사령탑으로 계약했다. 그러나 이 감독 역시 한 시즌을 못 넘기고 1991년 7월 다시 시즌 도중 물러났다. 그 시점에 감독대행을 이어받은 윤동균 코치는 한 달 뒤 차기 감독으로 임명됐고, 이후 두 시즌을 무사히 이끌었다. 다만 1994년 9월 선수단 항명 파동에 휘말리면서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주억 감독대행이 남은 14일을 대신 지휘했다.
한화에서는 이희수 전 감독이 유일한 대행 출신 감독이다. 이 감독은 1998년 7월 건강 문제로 물러난 강병철 감독 대신 지휘봉을 잡았고, 이듬해 정식 감독에 올랐다. 감독 첫해인 1999년 한화를 창단 후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면서 박수도 받았다. 그러나 역시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나빠져 2000년을 끝으로 물러났다.
2004년 7월 김성한 감독의 대행으로 나선 유남호 감독대행은 후반기 26승 18패라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하위권에 처졌던 KIA를 준플레이오프까지 이끌면서 이듬해인 2005년 감독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2005년 7월 25일까지 팀을 이끌다 1년도 안 돼 지휘봉을 서정환 감독대행에게 넘겼다. 서 감독대행도 그해 10월 KIA 차기 감독으로 선임됐다. 이후 2007년까지 2년간 팀을 이끌었다.
LG의 전신 MBC는 1987년 7월 김동엽 감독과 끝내 결별한 뒤 유백만 코치에게 세 번째 감독대행을 맡겼다. 유 감독대행은 그 시즌을 마치고 정식 감독으로 올라섰다. 다만 임기는 1988년 한 시즌이 전부였다. 1996년에는 천보성 감독대행이 7월부터 이광환 감독 대신 팀 지휘를 맡았고, 이듬해부터 1999년까지 3년간 LG 감독을 맡았다. 2002년 정식 사령탑이 됐던 김성근 감독은 그해 팀을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이끌었지만, 구단과 불화로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SK는 2011년 8월 김성근 감독 퇴진 후 이만수 수석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겨 시즌을 마쳤다. 이 감독대행은 이듬해 정식 감독이 돼 3년간 SK를 이끌었다.
삼성은 유일하게 단 한 번도 감독대행을 이후 감독 자리에 앉힌 적이 없다. 1983년 5월 재일교포 이충남에게 서영무 감독의 대행을 맡긴 뒤 차기 감독으로도 고려했던 게 전부다. 그러나 국민 정서상 대구팬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1997년 백인천 감독 대신 포스트시즌까지 치렀던 조창수 감독대행 역시 차기 사령탑으로 서정환 감독이 선임돼 승격하지 못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