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비정규직 해고의 시발점이 된 중부농축산물류센터. 사진=최훈민 기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2017년 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채용을 진행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5월 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방문 때 남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지시에서 비롯된 채용이었다.
2016년 11월부터 계약직으로 연구원에서 일했던 정 아무개 씨(여·37)는 채용시험에 합격해 사업운영 담당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정 씨는 2016년 11월 최초 입사 때 두 달 계약, 2017년에는 1~3월, 4월, 5월, 6월, 7~12월까지 등 무한 쪼개기 계약으로 연구원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정 씨에게 이상한 일이 시작된 건 2019년 11월이었다. 연구원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행정안전부, 충청남도, 천안시가 주최한 ‘지역의 힘’ 행사를 충남 천안시 성거읍 송남리 중부농축산물류센터에서 11월 28일부터 29일까지 이틀간 주관했다. 전국 곳곳의 문화재단 직원과 지역인사 400여 명이 1박 2일 동안 이 행사에 참여했다.
40여 명은 피부와 안구의 고통을 호소했다. 사진=한국문화관광연구원 내부 보고 자료
사고가 벌어진 중부농축산물류센터는 1999년 지어진 곳이었다. 국비 278억 원 등 519억 원이 투입됐지만 적자 운영, 사업성 부족 등에 따라 2011년부터 매각이 추진됐다. 참여자에게 알 수 없는 증상이 있었던 곳은 다른 장소와 달리 바닥이 고무 재질로 돼 있었고 천장을 이루는 텍스는 여러 곳이 부서져 있었다. 2층 한 구석은 과거 동물 질병 관련 바이오 업체가 동물 약품 창고로 쓰던 공간이기도 했다.
연구원은 역학조사와 피해보상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행사에 쓰인 등유 난로가 사고의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사고 발생 한 달도 더 지난 시점인 올 1월 한국환경안전연구소는 사고 장소의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포름알데히드 등 실내 공기질을 측정했다. 정상치가 나왔다. 조사 의뢰와 조사비용 93만 원가량은 연구원이 아니라 담당자와 참여 업체 등이 지불했다. 현재 이곳에선 난방기로 등유 난로 대신 라디에이터가 사용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연구원은 돌연 ‘지역문화전문인력양성사업’ 진행을 포기했다. 연구원은 문화체육관광부에 1월 23일 사업자 지정 해제를 요청했다. 연구원은 지역문화전문인력양성사업 총괄기관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정을 받은 상태였다. 그런 뒤 양성사업 실무자였던 정 씨에 대한 계약 해지가 통보됐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연구원이 기타 보조 사업을 모두 그만두겠다고 했다. 연구에만 치중하기로 기조를 정했다”며 “지역문화전문인력양성사업뿐만 아니라 그 외 이제까지 했던 사업도 다 안 한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문화전문인력양성사업은 타 기관으로 이관될 예정이다. 연구원이 사업을 타 기관에 이관하며 관련 인력 일부는 타 기관으로 옮겨갔고, 일부는 사실상 해고를 당했다. 핀셋 인력 이동이 무기계약직 해고 방법으로 떠오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규직 전환’ 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는 지적이다.
사건이 발생한 물류센터 2층은 동물약품 창고가 있었던 곳이었다. 사진=최훈민 기자
정 씨는 연구원에서 노조 조합원, 원우회 회원, 미래청년위원으로 활동했다. 2018년 사업성과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정 씨는 연구원에서 편재에도 포함되지 않은 ‘유령’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대해 연구원 관계자는 “사업 자체를 이관했으니 무기계약직과 계약 해지를 하는 게 맞다. 인력이 이동하는 건 사업을 이관 받는 조직이 결정할 사안이지 우리가 이관 받는 조직에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판단할 사항”이라며 “정 씨의 계약 해지와 물류센터 행사 사건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우리는 연구원은 애초 연구원이지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 과정에서 연구원이 과거 동료의 성추행 피해를 공론화한 정 씨를 ‘찍어낸’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정 씨는 2017년 연구원에서 함께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던 김 아무개 씨(여·31)의 지속적인 성추행 피해를 대신 알린 바 있었다.
정 씨와 김 씨 고소장 등에 따르면 김 씨의 정규직 상사는 동반 출장 때 KTX에서 김 씨의 손을 잡거나 허리를 감싸려 했다. 또한 행사가 끝난 뒤 밤늦은 시각 입을 맞추려는 시도를 한 뒤 숙소로 들어오려 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이를 전해들은 정 씨는 내부에서 이를 공론화했지만 되레 피해자와 가해자 면담이 이뤄졌고 별도의 보호조치 없이 사건은 그대로 묻혔다고 한다. 피해자 김 씨는 연구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연구원의 다른 관계자는 “가해로 의심받는 상사가 김 씨 어깨에 닿았다는 내용과 방문을 열려고 한 건 맞았다. 하지만 피해자가 ‘연구원을 그만둘 예정’이라며 ‘조용히 일을 마무리하길 원한다’고 해서 사과로 조용히 처리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 김 씨는 “명백한 거짓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난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성추행 사건이 없었다면 혹은 피해자 보호조치가 즉시 이뤄졌다면 회사생활을 지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폭로 이후에도 회사에서는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실장이 오히려 내게 가해자 징계 여부를 결정하라고 했다. 가해자 징계는 을인 피해자가 결정해야 하는 게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 해야 할 당연한 일이다. 계약관계에서 을의 입장에 있었던 터라 일자리 잃을 걱정에 단호하게 징계를 요구하기 매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던 상황에서 갑의 징계 여부 결정을 내리는 건 매우 어려웠다. 실장에게 가해자 사과를 먼저 받아야겠다고 말했다. 가해자와 다시 1대1로 대면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직접 사과를 받았다. 그리고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며 “하지만 이전과 같은 환경이 지속돼 계약 만료 시점에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조용히 덮였다. 징계는 없었다. 가해자는 현재 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피해자는 그만뒀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